계절을 버리다

[10. 스티커 ]

by 시우경희

3천 원을 내고 버린 물건은, 파란 하늘을 닮았다.




사망 선고를 내린 하늘을 닮은 파란 대형 분무통을 보내주기 위해 군청에 들렀다. 먼저 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업무를 보는 사람들을 가만히 구경하며 대기 의자에 앉았다.


대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스티커 발부를 하는 직원의 업무처리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자 주민들의 불만 섞인 말들이 들렸다.


"이거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나 크기를 모르겠어. 잘 좀 찾아봐요."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


라며 이곳저곳에서 한 마디씩 하는 중이었다. 담당 직원은 상기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옆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본인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리곤 대기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나름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선임으로 보이는 직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대신해 스티커 배출 업무를 도와주었다. 그는 표정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했다.


앞선 몇 명의 순서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어 스티커 접수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모니터에 고정된 시선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직원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다.


눈길도 마주하지 않고 직원은 커다란 모니터만 응시한 채 나에게 물었다.


"어떤 거 버리실 건가요?"


"플라스틱 선반하고, 대용량 분무통이랑 또 작은 분무기 두 개요"


"분무기 크기가 얼만해요? 선반 크기는요?"


직원은 여전히 모니터만 바라본 채 약간은 짜증이 묻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기 의자에 앉아 이전의 상황을 지켜봤기에 최대한 빠르게 스티커만 구입하고 일어나려 했지만, 안내받은 스티커 가격을 확인하고는 나도 모르게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군청에 들어오기 직전에 잡화점에 들러 사망한 분무통 대신 급한 대로 사용할 작은 분무기를 3천 원 남짓에 샀다. 그런데 버리는 스티커 한 장 값이 3천 원이라니. 세상에 새로 들이는 값이나 내보내는 값이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게다가 지난겨울에 추위로 금이 가버린 작은 분무통이 두 개나 더 있으니, 플라스틱 몇 개를 배출하는 데 드는 비용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아 직원에게 쓸데없는 질문만 많아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체되었다.

눈썹을 살짝 치켜뜨곤 자리에서 일어나 억지웃음을 지으며 총 네 장의 스티커를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부는 바람이 차가웠다.



집으로 돌아와 스티커를 한 장 떼어내 분무통의 매끄러운 몸체에 '척'하고 붙였다. 떨어지지 않도록 손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 단단히 고정시켰다. 문득 3천 원짜리 비싼 새 옷을 입혀주는 듯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하늘을 닮은 파란 몸통에 선명하게 달라붙은 스티커가 그동안 잘 지냈노라며 마치 작별을 고하는 완장처럼 보였다.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일찍 떠나는구나. 미안해'


작은 실수로 능력 있는 물건이 활약할 기회를 날려버린 건 아까웠다.

새로운 물건을 손에 쥐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책임지고 돌려보내는 데는 이토록 현실적이고도 고단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실감했다.


비움의 통행료를 치르는 과정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내 공간을 떠나는 물건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동안 창고의 한쪽 구석에는 버리지도, 챙기지도 못하던 작은 선반과 세 개의 분무통이 있었다. 그 자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제 일주일 뒤면 그곳에는 새로 올 분무통 하나만 자리를 잡을 것이다.


세 개가 무질서하게 자리만 차지하던 곳에 이제는 필요한 딱 한 개를 위한 공간이 생겼다.


창고의 한쪽도 여백이 생길 것을 생각하니 비움에 지불한 값은 계절을 정리하는 통행료가 되었다.


쓸모를 다 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건 사물만의 일이 아닌 것 같다.



군청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에는 묵직한 다짐 하나가 생겼다.


'플라스틱은 되도록 들이지 말자.'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존재인가.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