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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Nov 08. 2021

그게 나는 우울인지 모르고.

내 성격인 줄 알았지

내가 우울한지도 몰랐었다. 그냥 삶이 힘들고 지친다고 생각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나의 우울증 극복 과정에 대해 고백해본다.


'누구나 직장 생활은 힘든 거지?'
'원래 인생은 팍팍하고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잘 없는 것 아녔던가?'


힘들 때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되는 걸 느꼈다. 참는 상태를 스스로 잘 인지 하지 못하는 편이라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었다.


나는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하다. 그래서 남에게 그 민감성이 발현되어 상대에겐 잘 맞춰주는 편인지만, 정작 내 감정을 헤아리는 것은 참 무디다. 신체 중 어딘가가 크게 아프게 되면 그제야 나를 돌보곤 했다.


나보다는 늘 회사 일정, 해야 할 일, 약속 등이 먼저였고 그걸 어기면 스스로 양심에 어긋나는 듯한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 회의 중에 감정이 폭발해버렸다. 팀원들에게 들어보니 원래 성격이 그렇다고 했다. 내가 여태 몰랐던 이유는 상사가 그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나와 단둘이 팀을 짜지 않는 일종의 배려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원래 팀원들 사이에서는 그 사람의 결과물에 대해 어떤 조언이나 제안을 하지 않는 것이 무언의 약속이었다. 나는 그것을 몰랐으니 아이디어 회의에서 같이 토론해도 되는 분위기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사회생활이니 더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어려웠다. 상사는 공론화하는 걸 원치 않았다. 자꾸 삼자대면을 해서 풀어보자고 했다. 나는 이미 내가 찾아가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사과를 했는데 굉장히 건성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또 한 번 크게 실망했고, 일말의 여지도 없애버렸다.


직장 내 스트레스는 내 안에 무엇인가를 간신히 붙들고 있던 끈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그것이 이성의 끈인지, 감정의 한계선이었지는 모르지만 그 상태가 되어서야 많이 지쳤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쉬고 싶었다.


그러나 휴직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단 내가 휴직을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건지 자꾸 검열을 하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걱정이 되었다.


이전의 나라면 혼자서 어떤 방법이든 찾아보며 이겨내려 했겠지만 이번에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병원에 대한 선입견도 덜했고, 정말로 내가 어느 수준인지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많은 질문이 담긴 진단 검사와 면담을 통해 나에게 '경미한 우울'이라 진단해주었다. 분명히 '경미한'이라는 말이 붙었음에도 우울 진단을 인정하기가 사실 어려웠다.


 진단을 받고 나서도 
스스로 나는 내가 만들어낸 
가짜(fake) 우울이라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

왜냐하면 직장에는 휴직 신청 시 진단서가 필요하다. 가짜로 꾸민다고 검사 결과지가 순순히 나올 일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쉬고 싶으니 어떻게든 만들어낸 병가용 진단서가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마음만 잘 먹고, 평소처럼 내 감정과 상관없이 뭔가 정상상태를 얻어내겠다는 목표지향적인 자세로 정답만을 골라냈다면 진단서는 나오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경미한 우울이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는 분명 아니었다. 직장의 상황은 억울했고, 분노의 씨앗들이 발화 시점만 맞으면 언제든지 불타올랐다. 무엇을 하든 무의미하다고 느끼니 사소한 행동부터 출근길, 취미생활, 앞으로의 모두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미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내 안에 쌓일 때로 쌓여서 꽉 막혀있는 상태였고, 나는 너무도 지쳐있는 상태였다. 다만 극단적인 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미한 우울이라고 진단이 나온 것이고, 우울은 맞았다.


 지점에서 나는 몹시 헷갈렸다. 돌이켜보니 살면서 지금과 비슷한 상황은 여러  겪어 보았다.  심하게 심리적으로 고통을 느껴본 적도 많았다. 지금 우울이 맞다면 그때도 역시 병원을 갔다면 우울로 진단을 받았을까?


 나는 그동안 그게 우울 인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일이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시작이 되었으니 1 11개월 전의  상황이고, 지금의 나는 우울을 인정하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우울로부터 거의 자유로워졌다.


단번에 극복은 어려웠지만 평안을 찾은 것은 확신한다.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기존의  삶의 방식대로 산다면 언제든지 우울은 다시 찾아올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휴직 기간 동안 우울의 원인을 파악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끝에 타인이 아닌 오직 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내 인지구조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 결과 나는 이제 좀 더 나의 감정과 상태에 민감해졌고,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점차 그 방향대로 살고 있다.


예전에 내가 주로 느꼈던 감정 중에 하나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굉장히 공허하고, 갑자기 이해할  없는 무력감이 있었다. 그러면 야식을 먹거나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며 늦게 잠이 들곤 했다. 평소에는 해야  일에 치여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가 시간이  뜨면 그제야 느꼈던 우울감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게 우울감인지 모르고 그냥 일만 했으니, 하루 동안 일만 하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서 내가 공허하다고 생각을   같다. 그런데 이제 그런 감정은 들지 않는다. 그런 감정이 혹여나 느껴지면  감정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는 내가 파악한 우울의 원인들에 대해 하나씩 풀어가 보는 중이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우울의 원인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혹은 '잊었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같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심하게 겪었던 '가스라이팅' 대한 글도 작성해두었다. 설령 나의 우울의 시작은 나만의 특수한 이유라고 할지라도 내가 변화하는  과정과 흔적들을 남겨두는 것도 만약을 위해 도움이  것이다.


혹시라도 관성을 따라 내가 우울 인지도 모르던 때로 다시 돌아가려다가도, 흔적을 따라 다시  자리로 되돌아올  있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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