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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Nov 15. 2021

난 무엇을 위해  청춘을 아프게 보낸 걸까?

웹툰 '흙수저를 위한 나라는 없다' 를 읽고.

웹툰 '흙수저를 위한 나라는 없다'를 읽어보았다. 작가는 기독교, 불교 같은 종교도 있지만,


'좋은 대학 가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
'결혼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처럼 사회적인 통념이나 믿음 역시 사람들에게 일종의 종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믿는 종교는 무엇일까?

나 역시 보편적으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에 대한 많은 고정관념들을 종교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바르게 사는 삶이 무엇일까?', '행복이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경제적인 안정, 사람들의 평판 등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였다. 아마 앞으로도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으면 이 믿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내가 느낀 우울감은 세상에 대한 배신감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가 믿어온 '종교'에 대한 배신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고 성공을 바라는 것은 요행이라 주입당했고, 정말로 그래 보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성장기를 거의 다 입시 공부로 날려버렸다.  사회로 나와서도 회사 생활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는데 그게 내가 문송한(문과라서 죄송한) 문과생이어서, 혹은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밖에 없는 부족한 내 스펙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나는 다시 한번 노력을 해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정공법이라 생각했고 20대 후반 30대 초반까지 전공을 완전히 바꾸어 이직에 성공했다. 그 와중에 코인 열풍은 크게 두세 번 왔다 갔고, 부동산 시장도 과열되었다. 그러니 내가 성공이라 여긴 내 근로소득은 한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지금 이 시기에 나와 같이 심리적으로 무너져 내린 청년들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 고통은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 이때 내가 그동안 믿어왔던 현실 체계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젊은 시절을 다 보낸 것일까?
왜 그렇게 청춘을 아프게 보냈고, 보내야만 할까?

자문해봤다. 마치 그동안 이상 속에 살다가 현재 상황에 대해 새롭게 자각하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이정표를 보고 올라온 등산로인데 아무리 가도 정상에 도달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정상에 있던 한 정치인이자 사회 지도자는 말했었다. 누구나 정상에 올라오려고 하지 말라고, 중턱에 서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나도 정상을 꼭 올라가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중턱에서 만족하고 산다고 해서 편안한 것도 아닌 게 문제였다. 정규직으로 회사를 다닌다는 것을 마치 어느 정도 중턱에 올라서서 쉬다 걷다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 일 년에 딱 보름만 쉴 수 있을 뿐 매일 같이 근로에 시달려야 하는 삶이다.


이 보다 더 쉼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삶, 찬란히 빛나는 미래가 있을 거라고 10대를 온전히 갈아 넣은 것이 너무 분하다.


게다가 정년이 보장된다고 해도 나만 정년이 보장된 것이 아니다. 직장 내 불화가 생기면 더더욱 견디기도 어렵고 그만두기도 힘들다. 정년이 보장이 안 된다고 하면 그 자체만으로 여기서 낙오하면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디 가서 보상받을 길도 딱히 없다.


그래서 '그래야만 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믿어왔던 신념을 한번 깨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있었지만, 성격 탓도 있어서 이제까지 그 어떤 SNS도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나를 알 수 없는 익명의 게시판에서도 댓글 조차 잘 달지 않았는데 주목을 받으면 그만큼 구설수에 휘말리고, 피곤해진다는 사실을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브런치에 이렇게 줄줄 자기 생각을 써대는 것은 엄청난 도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기존 계정은 수년간 게시물 두어 개로 있으나마나 했는데, 오프라인들에서 마주하는 지인들이 고스란히 온라인에서도 이어지니 또다시 '종교적 믿음'들이 나를 얽매이게 하는  느껴졌었다.


지인에게는 계정을 알려주더라도 당분간 팔로워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겪는 여러 새로운 역동을 고스란히 느껴보기 위해서이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돼.' '오해받으면 미움받을지도 몰라.' 하는 마음은 여전히 있지만 정말 그게 맞는지 보는 중이다. 신기하게도 계정은 내 걱정과 다르게 사람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무럭무럭 받고 있다.


우울을 마주하면서 나는 종교인지도 몰랐던 내 신념들에 대해 관찰하고, 의심하고, 검증하는 중이다. 그래서 이 신념이 강요하는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하나씩 바꿔보고 있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삶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출근하고 일하고 대출을 갚으면서 산다. 그래서 삶의 무게는 같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 양손 가득 무겁게 들고 가는지는 알고 가고 싶다.



https://m.comic.naver.com/bestChallenge/list?titleId=756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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