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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Nov 22. 2021

내 집 마련과 우울

나는 우울을 겪으며 내가 머무는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 우울을 가속화시키는 데 주거 환경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줄곧 같이 살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독립 후의 나의 주거 환경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버렸다.


전, 월세살이를 하는 사람에겐 자유 의지가 없었다. 세탁실에서 물이 새기도 하고, 벽지 안이 곰팡이가 핀 것을 발견해도 바로 고칠 수 없었다. 이 집에 관한 모든 건 '집주인과 협의하'에 수리해줄 수 있는지 의견을 물어야 한다. 은행에서는 나에게 대출 이자를 가져갈 때마다 내 집임을 인지시켜주지만, 이런 순간들을 맞닿을 때면 이건 온전한 내 집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공간에 대해 큰 애착도 없고 만족하는 것도 아닌데도, 재택근무가 시작된 이후 그 공간에서 거의 하루 종일 보내야 했다. 내 집에 대한 만족과 삶의 만족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행복을 위해 오롯한 주거 공간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을 사기로 마음을 먹으려면, 내가 이 지역에 오래 머물 것이라고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출을 받으려면 내가 앞으로도 근로를 계속하면서 이자를 갚을 것이라는 약속을 은행과 하기 이전에 나 자신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나는 꽤 오래 직장생활을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매일 같이 버거운 이 회사를 언제든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까짓 게 무슨 용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큰 용기였다.


다행히 우울증이 나가지면서 지금 하는 일에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고, 이 방향으로 계속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 집을 마련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주거가 안정되면 내 정서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고 그 에너지가 내가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여하튼 나에게   마련은 우울로 인해 미뤄졌다가, 점차  자신과의 약속이 가능해지면서 가능해지게  것이다.


결심을 하고 난 뒤에는 굉장히 간단하게 선택을 했다. 일단 내가 가진 예산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으로 검색을 했다. 회사를 중심으로 강남 방향과 가까워질수록 어느 시점부터는 단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아슬아슬하면 고려라도 할 텐데 깔끔하게 포기가 되었다.


여기에 계단식과 복도식을 검색 조건에 추가했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 때 나는 낮 동안 내내 코딩을 하고 있는데도 옆집 사람은 벽간 소음이 난다며, 밤새 보복 망치질을 해댔다. 집이 바로 붙어 있으니 망치로 치는 파열음이 집 전체에 퍼졌다. 잠을 한숨도 못 잤고, 이웃들의 증언으로는 10년째 윗 집 아랫집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일로 나는 급하게 이사를 가야 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검색 조건에 계단식을 추가했다.


이미 이 조건만으로도 돌아볼 곳이 별로 없었다. 검색 결과 중 몇 곳을 쭉 보다 보니 뷰가 굉장히 좋고 햇빛이 굉장히 잘 드는 아파트를 발견했다. 평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나는 주저 없이 여길 가야겠다고 직감적으로 판단했다. 이곳이 조금 저렴한 이유는 초등학교가 멀어서 저학년 아이들은 부모가 직접 픽업을 해야 하고, 근처에 빌라와 모텔 촌이 있다는 이유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보면 혀를 찰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당장 키울 아이도 없으니 조금 주변 환경이 좋지 않아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 환경이 아이를 교육하기에 나은 환경보다는 뚜벅이인 내겐 대중교통이 좀 더 편리한 곳이 현실적으로 더 좋았다. 집값을 생각하거나 미래를 고려하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닐지라도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현재의 나에게 힘이 되어줄 집이 필요했다.


예전의 나라면 미래의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우울을 겪고 나니 현재 지금의 삶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집 마련을 할 용기도 냈으니 그 기준으로 선택을 밀고 나갔다.


사실 앞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집 값이 많이 오르지 않으면 살짝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현재 삶에 내게 많은 에너지를 주고 있다면 미련을 크게 두지 않으려고 한다. 우울의 터널을 지나 돌아보니 그때보다 더 암울한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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