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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이 Nov 01. 2021

우리 집에는 다른 집 강아지가 산다.

시바견 시월이는 우리 집에 살지만 우리 집 강아지는 아니다.


우리 집은 구조가 특이한데 마당을 가운데 두고, 현관 밖에 작은 방 두 칸이 있다. 그 방을 오래전부터 사무실로 쓰고 있는 아저씨가 어느 날 데려온 강아지가 시월이다. 시월에 데려왔다고 붙여준 이름이라고 했다.  아저씨도 시골에서 개 좋아한다고 해서 한 마리 그냥 보냈다고 들었다.


여하튼 시월이는 낮에는 우리 집 마당과 아저씨 사무실을 오가며 놀고, 밤에는 그 사무실과 연결된 방에서 잠을 잔다. 솔직히 시월이가 왔을 때 우리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럼 강아지를 밤에 혼자 두고 간단 말이야?"


아저씨네 집에서도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시골로 다시 보내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다시 돌아간들 행복하게 살지도 의문이었다.


시월이는 긴 우산이나 막대기 같은 것만 보면 벌벌 떨었다. 발랄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우리를 보면 난리가 나다가도 우산만 들었다 하면 아주 무서워하는 테가 역력했다. 시골에서 맞았거나 아님 맞는 걸 본 것 같았다. 평생 목줄에 묶여 있거나 어디 팔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래 저래 이 강아지의 행복을 위해서 고민을 해보아도 한계가 있었다. 주인이 따로 있으니 산책을 시켜주고 싶어도 그래도 되는지, 먹을걸 주고 싶어도 원치 않는 걸 주는 것인지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다 개를 모르는 '개 알못' 가족이다. 개를 키울 생각도 없고 제대로 키운 적도 없으니 알 필요가 없었다.


엄마는 개를 무서워한다. 지금도 시월이가 갑자기 엄마에게 달려들면 엄마는 "에구" 하면서 뒤로 물러선다.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마당으로 나오는 우리 가족이 너무 좋아서 점프를 한다.


혼을 내면 자기랑 놀자는 줄 알고 무시하면 뒤로 따라와서 한번 더 점프한다. 굉장히 힘이 세고 단단한 녀석이라 딱 발자국 사이즈로 내 허벅지에 멍까지 만들었다. "안돼!" 하고 명령도 내려보고, 바디 블로킹이라고 힘껏 밀어 보기도 했는데 일단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강아지도 adhd가 있다 들었는데 시월이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사실 개를 무서워한다. 특히 흰색 작은 강아지가 젤 무서운데 멀리서 산책을 오면 가능한 벽에 붙어서 가거나 돌아가기도 했다. 어릴 때 딱 그만한 강아지에게 발목을 물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리트리버 같이 큰 강아지는 무섭지 않다. 물지 않을 거라는 나만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저 대형견이 무는 개라면 대낮에 인도로 활보하진 못하리라.


그런 내가 시월이는 무섭지 않다. 여하튼 내가 보기에 시월이의 성격은 소심하고, 겁이 많고 굉장히 순하다. 강아지 하면 떠오르는 건 물지도 모른다였는데 입질이 없고 크게 짖는 법도 없으니 한결 그런 공포가 덜하다. 한 번도 우리 집 식구 누구도 물지 않았다.  


어느 날은 산책을 시키다가 일층 빌라 베란다에서 우리를 보고 마구 사납게 짖는 강아지가 있었다 시월이는 그래도 조용히 있었다. 난 그걸 보고 "잘했어 시월아. 저건 아주 나쁜 강아지야." 하고 말해줬다.   


시월이는 내 가족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집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자기 식구로 여기고 재빨리 공을 물어온다  컹컹 짖지 않고 딸랑 거리는 작은 방울소리가 들리면 그건 우리가 아는 사람이 온다는 뜻이다.


시월이와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이주에 한번 정도 주말에만 만난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내가 나가 살아도 시월은 내 목소리만 듣고도 쏜살같이 대문으로 와서 난리가 난다. 보통은 계단 밑으로 오는 법이 없는데 이제는 아래까지 내려와서 낑낑거리면서 컹컹 짖는다 이렇게 눈물 나게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시간이 지나면서 시월은 우리 가족과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니 우리 개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이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 반기는 존재가 있다는 게 이런 기쁨이구나를 알게 해 줬다.


엄마는 마당에서 시월이가 더 놀고 싶어서 낑낑대면 창문 밖으로 "시월아, 이제 가서 자" 하고 말해준다. 한밤중에 갑자기 짖으면 아빠는 무슨 일이 있나 나가보고 수시로 마당에 무더기로 놓은 대변도 치워주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집 개도 아닌걸" 하면서 하고 계신다.


엄마도 아직도 개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개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맞고, 모든 개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엄마에게 "오늘은 뭐했어?"라고 물으면 혼자서 산책을 시키고 오거나 길에서 강아지용 간식을 사 오는 날이 늘었다.


재미있는 건 시월이는 산책하러 하네스를 끼우려고 하면 싫다고 난리를 친다. 대체 어떤 강아지가 산책하러 가는 목줄을 싫어한담. 아저씨는 자주 산에 시월이를 데려가신다 들었다. 한번 가면 오래 걷다 오시는 것 같았다. 나도 가끔 시월이를 동네 산 앞까지 데려가 보는데 안 올라가겠다고 완강히 버티는 날이 있다.


"그래 그럼, 가지 말자" 하고선 동네 길만 걷다 온다.  왜 시월이는 산을 싫어하나? 일요일에 부장님과의 등산 같은 느낌인가 보다 싶다.


내가 유튜브를 보고 배운 얕은 지식으로 개집에 안 들어가려는 녀석을 간식으로 유인해 들어가게도 해보고, "코!"라고 외치면 동그랗게 말은 내 손에 코를 넣는 훈련을 시켰보았다. 훈련을 제법 잘 따라 해 줬는데 그걸 보는 우리 부모님은 천방지축였던 시월이가 뭔가를 배우자 매우 뿌듯해했다.


강아지가 이리 사랑스러운 존재였다니! 나는 그동안 개랑 뭔가 진솔한 소통을 안 해보았던 거 같다.


나의 강아지 트라우마를 시월이 덕에 많이 없앴다. 내 친구네 강아지는 내가 집에 들어설 때부터 죽일 듯이 짖더니, 소파에서 가만히 있으면 얌전하게 공을 물고와 자기에게 던지라 했다가 다시 내가 화장실만 가려해도 다시 미친 듯이 으르렁거렸다. 오만방자한 강아지랑 함께 있으니 너무 진이 다 빠졌다. 그런 예민한 강아지는 입질을 무서워하는 나와는 상극이다. 어떨 때 무는 건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시월이랑 더 많은걸 해보고 싶은데 진짜 우리 개가 아니라서 너무 아쉽다. 혹시 다른 개를 물거나 물릴까 봐서도 두렵고, 차를 태워 어딘갈 가다가 다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당이랑 집 근처만 오가고 있다.


내가 강아지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시월이 자랑이 마치 자식 자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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