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 지각은 욕을 먹는데 2시간 지각은 욕을 안 먹네?
어릴 적부터 미친 듯이 고치고 싶었던 나의 단점 중 하나는 지각이었다. 게으르고 지각을 잘하는 아버지를 닮은 내가 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걸 고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지각을 많이 고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정신을 못 차렸던 것이긴 하다.
지각 때문에 살면서 손해도 많이 봤기에 나이가 들수록 정말 고치고 싶어서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며 부지런한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배워보려 노력을 했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물론 타고난 성질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리기는 했다.
20대 때까지는 30분 이상 늦는 일도 많았고 1시간 이상 늦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정말 욕을 많이 먹고 미안해서 밥도 자주 사곤 했다. 지금도 상대방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를 반성한다.
학창 시절부터 30살까지 베프로 지내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지각이 아주 심했다. 나는 주로 30분~1시간 정도 늦는 편이었고 걔는 1시간~2시간 정도 늦는 편이었다. 내 생각에는 걔가 더 심했지만 걔는 반대로 내가 더 심하다 하고, 뭐 1초 지각도 지각이니 쌤쌤이었다.
30살 이후 그 친구가 나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상처를 줬던 일이 있었고 그 이후 멀어지다 못해 남이 되었다. 솔직히 글을 쓰면서 딱히 지칭할 단어가 없어 ‘친구’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도 싫을 정도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X’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으니.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멀어졌지만 다 같이 보던 무리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봐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지각을 하게 되면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는 성격이었다. “늦잠 잤어, 늦게 나왔어, 미안해, 최대한 빨리 갈게. 지금 지하철인데 oo역이야.” 그리고 자주 택시를 타고 가곤 했었다.
그렇게 보통 15분 정도 늦곤 했었는데 그럴 때면 이미 카톡에서부터 욕이 한 바가지고, 도착해서도 구박을 받았고 나는 계속 사과를 했다. 그런데 ‘그 X’이라 부르고 싶은 그녀는 1시간이 지나도 안 오고 2~3시간쯤 지나서야 오곤 했다. 한 번이 아니라 매번. 심지어 아예 잠적하기도 일쑤였다.
늦을 때도 바로 연락을 주는 게 아니라 1시간 정도 지나서야 친구들이 계속 연락을 하면 ‘지하철이야, 금방 가’라고 한다. 무슨 역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하거나 되려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아니면 2~3시간이 넘도록 아예 연락을 안 하거나 마치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자세히는 말을 안 하고 두리뭉실하게 ‘일이 생겨서 늦을 것 같아. 연락할게’라는 말만 하고 또 연락두절이다. 미안해라는 말은 없다.
그러면 다른 친구들은 “어머, 무슨 일이 있나?”하며 욕이 아닌 걱정을 해준다. 하지만 결론은 거짓말이다. 아무 일 없다.
지하철이라고 하지만 집에서 출발도 안 했거나 심지어 이중 약속을 잡아서 다른 모임에 있거나, 연락두절됐다가 몇 시간 만에 나타나서는 왜 늦었는지는 절대 말 안 하고 대충 넘어간다. 하지만 그녀의 눈치 없는 남편 덕에 이유가 들통나곤 했다.
한 번은 전날 그 무리에 있던 한 친구네 부부(A부부)와 밤새 술을 마시고 숙취에 집에서 쉬다가 나왔단다. 그런데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A가 다른 친구들이 왜 그녀가 오지 않고 연락도 없는지 궁금해하고 심지어 걱정을 하는데도 가식 떨며 “그러게~ 모르겠네” 하고 있던 거다.
나도 그녀와 친하던 시절이 있었기에 바로 눈치를 챈다. 그녀의 특기는 친한 친구에게 같이 거짓말하자고 시키는 것이었다. 거짓말하는 게 성격에 맞지 않던 나는 왜 그런 거짓말을 하냐며 그녀에게 한 번씩 뭐라고 했었지만 친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입 다물고 넘어가주는 불편한 상황이 자주 있었는데, 여우과인 A는 거짓말에 능숙한 성격이라 둘이서 짝짜꿍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거였다.
눈치 없는 그녀의 남편덕에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황당하고 화가 나는데, 그녀와 A 당사자들은 거짓말에 대해 사과할 생각도 없고 어제 재밌었다며 깔깔 거리며 수다를 떨고, 그 둘은 친구들 모임에 항상 남편을 대동하기에 그 둘의 남편들이 있는 앞에서 따지기가 애매해서 넘어가게 되는 식이었다.
지각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거나, 지각을 했으면 잘못을 했으니 욕먹는 것을 감수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데 잘못은 했지만 욕먹기는 싫고 사과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매번 거짓말을 한다. 이 패턴이 30대 내내 나이가 들어가도 변하지 않는 걸 보며 얼마 남아있지 않던 정조차 탈탈 털어 없어졌었다.
모자란 부분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게 성숙함일 텐데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고 키워도,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그녀와 멀어지게 된 계기도 그녀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진실됨은 없고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거짓말을 많이 하고 변명을 많이 한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인정하지 않고 모른 척하는 모습에 큰 상처를 받았었고 오만정이 뚝 떨어졌었다.
그녀의 욕먹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스킬, 거짓말. 하고 싶은 대로만 살며 행복해하는 그녀를 볼 때면 진실되지 않아도 행복하면 그만인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역시 그런 인생은 살고 싶지 않고 내 성격으로는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껴 이불킥을 연발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왕이면 세상을 살아가는 좋은 스킬을 가지자. 인생은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과 진심이 꽤 중요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