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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발적 무급노동자 Sep 23. 2024

영알못 9살이 국제학교에 다니면 생기는 일

'살아남기'위한 혼자만의 투쟁 중

아들이 말레이시아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지 반년이 훌쩍 넘었다. 제목에도 이미 적었지만, 내 아들은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에는 알파벳 정도만 학원에서 떼고 온, 말 그대로 ABC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이렇게 외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게 될 줄 미리 알았다면, 한국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빨리 영어학원을 다니게 했을 테지만, 가능성 1%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국제학교 생활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오늘 짧게 적을 이야기는, 부모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영어는 '마이 네임 이즈~' 정도만 말할 수 있던 아이가 국제학교에 처음 다니게 되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학기를 무사히 넘기고, 지금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는 처지라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일단 큰 위기(?)는 넘긴 것 같아, 지난 일들을 한 번 돌이켜 보려 한다.


먼저, 아들의 성향에 대해 말해 보겠다. 아들은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낯을 무척 가리는 성격이다. '낯은 가리면서 새로운 환경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왠지 모순되는 말 같지만, 정말 그렇다. 이런 기질 때문에 영어 한 두 마디 정도밖에 못하는 아이가 스스로 국제학교를 다니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첫 주는 이상하게도(?) 무사히 잘 지나갔다. 수업을 마치고 아빠 차에 타는 아이의 표정은 좋았고, 학교는 어땠냐는 아빠의 질문에 거짓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을 띠며 재미있었다고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두 번째 주를 앞둔 일요일 저녁이 되자, 아들은 내일 학교 가기 싫다며 흐느꼈고, 침대에 누워서도 눈물을 보였다. 이런 상황은 안타깝게도 한 학기 내내 지속되었던 것 같다.


이런 아들이 안타까워서 담임 선생님에게 메일도 보내보고, 직접 찾아가서 면담도 해보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불행하게도, 아이의 첫 담임 선생님은 무뚝뚝한 뉴질랜드 아저씨였고 영어가 서툰 아이를 특별히 더 잘 챙겨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사교성이라도 좋고, 낯이라도 두꺼우면 조금 더 수월하게 학교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2학년까지 다녔던 한국 초등학교에서도 친구를 만들지 못하던 아이가 말도 통하지 않는 국제학교에서 그럴리는 만무했다.


아들은 하루 걸러 한 번씩,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빠, 나는 왜 국제학교를 다녀야 돼?"

"글쎄, 한국에서 다니던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잖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도 사귀면서 여러 나라의 문화도 배울 수 있지. 그리고, 너 영어 잘하고 싶다며? 영어로 수업도 들으면서 영어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고."

"그런데, 내가 정말 영어를 잘하게 되어서 친구들도 사귀고, 수업도 잘 들을 수 있을까? 수업 시간에 선생님 하는 말도 잘 안 들리고, 친구들하고 말하고 싶어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몰라서 말을 못 걸겠어."

"00야, 그게 당연한 건지. 당연히 지금은 힘들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선생님 말씀도 들리고, 친구들하고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게 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열심히 했는데도 힘들면 그때는 한국에 돌아가도 되니,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자."


이런 대화는 한 한기 내내 계속되었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운 좋게(?) 외국 학교에 가서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면 꾹 참고 다닐 수 있었을까?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내 피를 물려받은 내 아들이 꿋꿋하게 다녔으니, 나도 힘들었겠지만 어떻게든 다녔을 것 같다. 하지만 힘들어는 했겠지.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해 줄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영어 과외도 시키고, 같은 반 아이 학부모와도 연락해 같이 놀게 해 보는 등 여러 수를 내보았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빠의 노력에도 큰 도움을 받지 못한 아들은 학교는 가기 싫어하면서도 꾸역꾸역(?) 열심히는 갔다. 다행히 중간에 아프지도 않았고, 결석은 엄마가 와서 여행 가느라 빠진 하루가 전부였다.  


첫 학기 마지막 주, 아이 담임 선생님과 면담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풀었던 기말고사 문제지를 보여주며 00가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하며, 다른 건 다 좋은 데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다음에 덧붙인 말이 아빠인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00가 좋은 방법(strategy)으로 수업에 임했어요.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 주변 친구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친구들을 따라 했답니다."

물론 선생님은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지만, 순간 내 머릿속에는 아들이 수업 시간 내내 여기저기 눈치 보며 긴장한 채로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은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생존 전략을 세우고 살아나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빠는 그것도 모르고 '배고프면 밥 먹으면 된다' 같은 '뻔한' 이야기나 조언이라고 해주고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긴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지내고 다시 말레이시아에 돌아온 아들은 전 학기와는 다른 새로운 생존 전략을 세우고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다행인 건, 새로워진 전략은 지난번처럼 눈물겹지는(?) 않은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아빠 차에 타는 아이의 표정은 더 밝아졌고, 이제는 수업 시간에 주변 동정을 살피지도 않는다고 한다. 어느 날은 같은 반 친구가 주말에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주소를 적어주었다고 나에게 보여줬는데 암호 같은 말과 그림으로 채워져 있어 그 친구집에 데려다주지 못한 적도 있다.


아이가 받아온 친구 집 주소


이제는 '영알못'까지는 아닌 아들 입에서 더는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빠가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뻔한' 대답만 주었는데도, 스스로 잘 헤쳐나가는 아이가 대견하다. 멀지 않은 시간에, 아이가 더는 '생존 전략' 같은 건 가방에 넣지 않고도 학교에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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