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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발적 무급노동자 Sep 20. 2024

퇴직 후, 하필 왜 말레이시아?

공무원 그만두고,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이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가 박동훈 부장(배우 故 이선균 분)이라도 된 것처럼 함께 울고 웃었는데, 드라마 마지막 화에 가족을 모두 해외로 보내고 한국에 혼자 남은 박동훈이 쓸쓸히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이 나온다.  내 분신과도 같은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절대 가족과 떨어져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다짐과 달리 우리 가족은 현재, 아빠와 아들은 말레이시아에, 엄마는 한국에 살며 떨어져 지내고 있다. 그럼 왜 나는 나의 다짐을 안 지키고 한 입으로 두말하는 몹쓸 사람이 된 걸까? 그리고 많고 많은 좋은 나라 중에 왜 하필 말레이시아에 살게 된 걸까? 하나하나씩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나의 시점: 내 사주에 역마살이 강하게 끼어있다는 사실을 안 건 20대 중반이었다. 이때쯤부터 외국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하나의 '숙명'처럼 여기고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녔다. 여행으로 가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일 년 이상 거주 하기도 했었다. 마침 공직을 그만두고 하려고 하는 일이 외국에 살아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눌러 놓았던 역마살이 다시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사주는 운명인지라(사실 사주를 믿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 이곳 말레이시아에 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들의 시점: 아빠의 DNA를 반 정도 물려받아서 아빠의 역마살이 나에게도 좀 있는 걸까? 아니면 첫 돌이 지나기 전부터 비행기 타고 엄마 아빠를 따라다닌 가락(?)이 있어서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지금도 어리지만) 해외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초등 2학년 여름방학에 말레이시아 조호바루란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할 때 국제학교를 견학 간 적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같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나도 거기에 끼어서 놀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국제학교에서 공부하면, 영어도 잘할 수 있고, 많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사귈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한 번쯤 다녀보고 싶다. 


아내의 시점: 내가 결혼을 잘못한 건가? 남편이 저리도 역마살이 있는 줄 결혼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남편 쫓아다니느라 휴직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더는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금쪽같은 아들을 데리고 해외에 간단다. 그것도 잠깐 갔다 오는 게 아니라, 여차하면 아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있겠단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남편이 어떻게 꼬신 건지 아들도 덩달아 같이 가고 싶단다. 나도 따라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정말 해외에서 아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지도 확실하지 않고. 일단은 둘만 먼저 보내보는 게 좋겠지?




이렇게 우리 가족은 한 번 떨어져 살아보기로 '큰' 결정을 하고야 만다. 그럼 이제 나라를 결정할 차례다. 사실 이때쯤 우리의 마음은 말레이시아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법. 말레이시아말고 여러 나라들을 후보로 놓고 이리저리 고민해 봤지만, '언더독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아들은 말레이시아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로 결정하게 된 요인들은 과연 뭐였을까? 이것 또한 가족 각자의 시점으로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아내의 시점: 남편은 그렇다 치고(?), 아들은 최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봐야 해. 그러려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도 자주 뜨고, 그렇게 멀지도 않아야 해. 어디 보자, 말레이시아 말고도 싱가포르, 태국하고 베트남 정도가 적당한데 태국, 베트남은 학교 밖에서 영어 사용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싱가포르는 물가가 너무 비싸고, 말레이시아가 영국 식민지 영향이 있어서 영어를 잘 쓸 수 있다던데, 말레이시아가 역시 괜찮은 것 같네. 그런데 이왕이면 비행기 자주 뜨는 싱가포르에서 가까운 조호바루가 좋겠지?  


아들의 시점: 엄마 아빠가 국제학교에 보내준다는데 어디로 갈까? 지난번 한달살기 할 때 가봤던 학교가 좋아 보이던데, 거기로 가자고 해야겠다. 


나의 시점: 태국 방콕은 너무 복잡하고, 치앙마이가 국제학교도 많고 물가도 저렴해서 좋긴 한데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가 자주 없는 게 문제야. 베트남은 오토바이 때문에 너무 복잡하고 매연도 심해서 아이 데리고 살기에는 별로고. 말레이시아가 사회 인프라도 괜찮고, 물가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좋긴 한데, 내가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그래! 뭐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아들 교육 때문에 가는 건데 말레이시아로 가자. 




이런 고민 끝에, 우리 세 가족이 합의하여 내린 결정은 아주 탁월했다(아직까지는). 가장 걱정했던 아들은, 말레이시아가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도 된 것 마냥 아프지도 않고 학교도 잘 다니며,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제2 고향의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게 문제 이긴 하지만!). 나야 말할 필요 없이 잘 살고 있고, (난 외국에 나오면 앓던 병도 사라지는 이상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아내 겸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말레이시아 별장(?)을 방문하며 예전보다 더 돈독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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