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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발적 무급노동자 Sep 30. 2024

[에필로그] 떠난 자와 남은 자, 모두 승자입니다.

회사 밖은 지옥이 아닙니다.

이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은 지금 시간은 오후 한 시 삼십오 분. 노트북 모니터 너머에 보이는 창 밖으로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와 함께, 번개가 가끔씩(정말로 가끔이다. 말레이시아에 온 이후로 번개를 정말 자주 본다.) '번쩍'하고 떨어져 내리고 있다. 눈이 호강하는 와중에 '투둑투둑' 빗소리와 '쾅쾅' 천둥소리가 한데 섞여 내 귀에 들어온다. 귀도 덩달아 호강 중이다.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못 누릴 호사다. 점심 먹고 한창 일할 시간에 보고서가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을 쓰고 있다니!

 



어느덧 마지막 글이다. 몇 편 되지 않는 글을 연재하는 동안, 여럿 분들이 많이 공감하고 응원해 주셨다. 철밥통을, 40대의 나이에 차버리는 게 어려운 일인 걸 알기 때문에 응원해 주신 거라 생각한다. 반면 공직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힌 글에 우려를 표하는 댓글도 있었다. 사실, 이곳 브런치에 공직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쓰는 동안,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공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좋지 않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지만, 18년 동안 공무원으로서 받은 혜택도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내가 받은 혜택도 함께 사람들에게 알렸어야 옳다. 마음 편히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는 문화 덕분에,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다른 직장인보다는 오래 지켜볼 수 있었다. 복직 후에도 국가가 허락해 준 '육아 시간' 제도를 활용해서, 남들보다 일찍 퇴근해 아이를 유치원에 늦게까지 있지 않게 한 것도 내가 받은 혜택 중의 하나이다.


* 육아시간 제도: 만 5세 이하의 자녀를 둔 공무원은 24개월 동안 하루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다.


이것 외에도, 자질구레하게, 또는 크게, 공무원으로서 나라에서 받은 혜택이 많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나라가 제공하고 허락한,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가능한 많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했고, 누리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몸 담았던 조직에 침을 뱉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남들보다 국가의 혜택을 조금 더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금 꼬박꼬박 잘 내고 투표도 제대로 하며) 나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내가 그동안 올렸던 글이 공무원 조직에 대해 부정적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예쁜 자식 매로 키운다'는 속담처럼, 더 나은 조직이 되기를 바라며 회초리를 든 글이었다면 변명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이상을 쫓아 공직을 떠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상을 쫓으며 살지 못한다. 특히 중년의 가장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공직을 그만둔 후 감수해야 할 '불편'이, 공무원으로 계속 일하며 감수해야 하는 '불편'보다 더 적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뿐이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회사는 전쟁터인데, 나와도 전쟁터다.'

내 또래, 중년에 접어든 분들은 살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데 모두 동의하실 것이다. 회사에서도 힘들지만, 회사 밖에서도 힘들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는 곳(혹은 살아가야 할 곳)을 '지옥'이라고 까지 말하면 우리 인생이 너무 황폐하지 않은가?  회사 밖이든 안이든, 사는 건 '빈도'와 '정도'의 차이로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 풍진세상을 살아가는 데 좋은 방법이다.


직장은 그만두었지만, 나는 여전히 삶이 가끔 불편하다. 하지만 예전 전쟁터에서 미사일이 오갔던 거에 비하면, 지금은 작은 주먹 정도가 나에게 가끔 타격을 줄 뿐이다.  

우리는 불편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생'의 존재이다. 회사를 그만둔 나도, 여전히 회사에 남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분들도 이런 불편을 느끼며, 자신만의 전쟁(또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나는 큰 전쟁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철수했지만, 여전히 그곳에 남아 큰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분들을 응원하며, 짧았던 연재를 마친다.




연재를 마치며,

덧붙이는 글 1: 공직 생활을 하며 겪은, 아직 밝히지 못한 웃픈 사건들이 제법 많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고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너무 저격성(?) 글만 쓰면, 아직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분들이 아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은 나름 장점도 많이 가지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런 장점과 함께 '웃픈 사건'들을 담은 '나름 균형 있는 저격성 글'을 써볼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2: 안정적인 직장을 중간에 박차고 나온 40대 아빠도 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말레이시아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며, 내 '본캐'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도 틈틈이 써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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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끝.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하고 댓글로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 배경 이미지 출처: pick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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