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발적 무급노동자 Aug 30. 2024

40대 공무원 퇴직,  왜 했냐고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아래 글은 제가 며칠 전 브런치에 처음 발행했던 글입니다. 변명과도 같은 제 글을,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셔서 용기를 내서 제 이야기를 더 풀어내고 싶어 졌습니다. 


새로운 글로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습니다만, 제가 왜 공무원을 그만두었는지 이야기하는 글로 첫 발을 떼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 묵은 글을 다시 소환합니다. 


일기 같은 제 글을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에 적는 것은 처음입니다. 누군가(그중에는 아마도 저를 아는 사람도 있겠지요) 읽는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냥 저에게 혼잣말하듯이 솔직하고 꾸밈없이, 어깨에 힘 빼고 앞으로 이야기를 적어갈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2005년 7월의 어느 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모 정부부처 홈페이지의 신규 공무원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모니터 속의 크지 않은 네모난 표 안에는 세 자리 수의 응시 번호가 줄 맞춰 나열되어 있었고, 그 몇 안 되는 숫자 중에 내가 찾던 번호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호성을 질렀었다. 


이렇게 불붙었던 마음속 열망은 18년을 근무하는 동안 점차 사그라들었고, 그 마지막 불씨가 꺼지던 어느 날 나는 의원면직(사직)을 신청하고 2023년 10월 자연인 신분이 되었다. 지난 공직 생활 18년을 돌이켜 보면 너무 늦은 결심이었다. 나는 공무원 1년 차부터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마냥 어딘가 항상 불편함을 느꼈고, 공직을 떠나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곳을 찾고 있었다. 이런 갈구는 결혼과 함께 거짓말처럼 몇 년 동안 모습을 감췄다가, 비 온 뒤 올라오는 대나무의 새순처럼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서 계속 커지고 있었다. 


퇴직을 결심할 즈음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18년 동안이나 같은 일을 처리하며 새로움과 발전이 보이지 않는 일상에 지쳐 있었고, 때마침 불거졌던 바로 위 상사와의 불화는 그나마 내 마음을 잡아 주고 있던 한 가닥 줄 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마음의 병이 커지니 얼굴과 혀에 그 증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만사가 귀찮고 짜증이 나니 미간에는 그간 보이지 않던 주름이 잡혀가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아내와 아들과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 더 이상 하면 안 되겠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불행해지겠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자.' 

이렇게 공무원 생활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고 자연인의 신분으로, 지금 말레이시아의 어느 한 도시에서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들은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나는 여기서 아들을 돌보며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를 말렸다. 그들이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모두 비슷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 그만두고 뭐 하려고 그래?"

"지금 열심히 돈을 모아둬야 나중에 고생하지 않는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는데 모아둔 돈은 있어?"

"직장이 주는 안정감도 무시 못해.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어."

이들이 하는 말, 하나같이 다 맞는 말이다.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걱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돈'과 '사회적 지위'의 상실. 


혼자서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려본 결과 퇴직을 하더라도 밥을 굶고 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예전처럼 자주 가지는 못하고, 가족들과 근사한 식당에서 외식을 자주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래!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나는 행복한 시간 부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다음 걱정은 공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지위'. 그렇다. 공무원이 주는 안정감은 제법 안락하다. 큰 사고를 치지만 않으면 직장에서 쫓겨날 위험도 없고, 급히 돈이 필요하면 은행에서 남들 보다는 낮은 이율로 쉽고 빠르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여전히 자랑스러운 공직자 아들로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싫은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평양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이런 '자기중심적'이고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가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변명이었다. 


반 백수가 된 지도 10개월이 넘었다. 스스로를 반 백수라고 칭한 이유는 나는 나 자신을 '자발적 무급 노동자'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돈을 버는 노동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내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을 하며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외국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위해 맛있는 밥을 해주고 숙제를 도와준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집안일(청소, 빨래 등)에 할애하고 남는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글 쓰기, 번역 등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유형의 자산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지만, 소중한 무형의 가치를 일구어내고 있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공무원 그만둔 거 후회하지 않으시나요?"라고 묻는다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10년 후에도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으로는 'Yes'이지만, 모든 일을 100% 확신할 수는 없는 법. 100%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