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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발적 무급노동자 Sep 02. 2024

공무원 퇴직 후, 말레이시아 생활은 이렇습니다.

더 많이 늘어난 임무(?)를 소화 중입니다. 하지만 행복합니다.  

2023년 10월 사직을 하고, 같은 해 12월에 말레이시아에 왔다. 아들을 말레이시아에 있는 국제학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럼 아이 조기 유학을 위해 공무원을 그만둔 게 아니냐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 분들에게 대답합니다. 

"그건 아닙니다.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을 뿐이랍니다!"


공직을 그만두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주로 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꼭 한국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여름방학 때 말레이시아 생활을 경험했던 아이는, '한 달 살기' 할 때 방문했던 '국제학교'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어 했다. 

이렇게 '두 손바닥이 마주치는 순간'이 왔고, 그 '타이밍'을 빌어 우리 부자(父子)는 말레이시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 엄마는 어쩌고 우리 두 부자만 이렇게 와 있냐고요? 

엄마는 기러기 신분(?)으로 한국에서 생활 중이다. 내가 퇴직하기 전에 경제적 자유를 완벽히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부 둘 다 그만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내가 항공사에 근무하고 있어, 비행기 삯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가 사는 말레이시아 집에 온다. 기러기 가족을 굳이 계층으로 나눈다면, 매달 상봉하는 우리는 귀족(?) 기러기 가족 정도 되지 않을까? 


나는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이었다. 특히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내가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그간의 견해는 잊은 채 어느덧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자꾸 글이 옆길로 샌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자연인, 반 백수의 신분이 된 나의 말레이시아 생활은 직장을 다닐 때에 비하면 아주 평온하다. 아이 등교 시키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는 온전히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그 중간에 청소, 장보기 등 사소한 집안일 정도는 해야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때부터 약간의 힘든 노동(?)이 시작된다.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숙제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죄다 영어로 쓰여있고, 답도 영어로 해야 하니 토종 한국인인 우리 부자는 종이를 채워나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아이 가정교사 역할을 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다. 외국 생활이 가장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끼니 해결. 여기도 '**의 민족' 같은 앱은 있지만, 배달 가능한 음식들은 대부분 말레이 현지식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아들은 국이 없으면 밥을 안 먹는 '지독한' 한식파. 가끔 한식이 보여 배달시켜 봤지만, 몇 번 먹어본 후부터는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일주일에 여섯 번(!) 정도는 집에서 저녁을 준비해서 먹는다. 


허겁지겁 저녁을 치우고, 간식으로 과일까지 먹이고 나면 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때부터 자기 전까지 주어지는 한 시간이, 아들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해하는 시간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야구나 여행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같이 한 시간 정도 보는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들은 티브이 보는 내내 싱글벙글이다. 며칠 전 이유를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티브이 보는 시간을 좋아해?"

"깔깔 웃고 이야기하며 아빠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아이의 대답을 듣고, '이런 말 들으려고 내가 여기 와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소소한 행복'이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매일매일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고 나면, 다시 나의 시간이 찾아온다. 매일매일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 재운다고 같이 옆에 누워있다 보면 내가 먼저 잠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헛되이 날아간 자유 시간을 아쉬워하며 스스로를 꾸중하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자유 시간을 잠과 바꾸고 맞이하는 아침이 제법 개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상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된다.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휴일이면 조금 더 바빠진다. 그런데 스트레스 없는 바쁨이라 괜찮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나름 재미있게 지내지만, 휴일에는 엄마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들은 얼핏 보면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성적인 성향이 더 강해 사교성이 좋지 않다. 그래서 아직까지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다. 아직 까지 아들의 가장 친구는 아빠이다. 아빠는 아들에게 엄마, 친구 역할까지 하느라, 나 자신을 위한 '부캐'를 만들 시간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인생을 롤플레잉 게임이라 생각하면, 공무원 캐릭터보다 지금 캐릭터가 수행해야 하는 '퀘스트'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퀘스트들은 누가 나에게 하달한 것이 아니라서, 공략하는 재미도 있고, 해결 후 느끼는 보람도 크다. 공무원 생활하며 가장 싫었던 게, 내 생각과 맞지 않지 않는 일을 '할 수 없이' 꾸역꾸역 해야 할 때였다.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요즘 일상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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