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무원을 일찍 그만두게 만든 사건들
공무원 조직은 아주 딱딱하다. 그래서 쉽게 변하지 않고, 딱딱한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경직되어 있다. 말랑말랑하던 사람이 나랏돈을 받으며 일하게 되면 조금 딱딱해지게 되고, 원래 조금 딱딱했던 사람은 오히려 부러져 버리고 만다. 나는 조금 딱딱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처음 모시게 된 과장님은 아주 유능한 분이셨다. 7급으로 공직을 시작하셔서 사무관까지 초고속 승진을 하고 열심히 일하시던 중,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셔서 고향에 있는 지방청으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이셨다. 업무에 의욕이 대단하셨던 분이라, 비교적 어린 나이에 7급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나를 열심히 가르쳐서 키우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가르치는 방법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작성한 자료를 보고 드리기 위해 가면 과장님은 늘 옆에 품고 다니시는 빨간색 사인펜을 꺼내 들으셨다. 그때부터 십여 분의 교육(?)이 진행된다. 이 시간은 내가 들고 들어간 보고서 길이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균 10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열심히 작성한 보고서와 나는 한 몸이 되어 난도질을 당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교육을 해주실 거면 자리라도 앉게 해 주시지, 굳이 나를 본인 책상 옆에 세워 놓으시고 일장 훈시와 연설을 늘어놓으신다.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싫어지는 법인데, 좋은 말도 아닌 말을 '벌 받듯이' 듣는 시간이 정말 고역이었다. 심지어 이때 내 나이는 20대 후반. 초등학생도 이런 취급당하면 '욱'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욱'하지는 않았다. 먹고살아야 했으니.
"힘들지만 이렇게라도 교육받으면 실력도 늘고 좋은 것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유능하신(!) 과장님이 빨간펜으로 수정한 단어나 문장을 그대로 고쳐서 다시 들고 가면, 본인이 고친 내용을 또 고치신다.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아주 가끔은 내가 처음에 썼던 형태로 돌아올 때도 있다.
이런 일을 병아리 시절에만 겪은 것은 아니다. 나름 짬이 쌓였을 때도, 그 정도만 다를 뿐 첫 내용물이 돌고 돌아 최종 결과물로 돌아오는 일은 종종 있었다. 방금 말한 정도의 차이란 서서 받던 '벌'을 앉아서 받고, 하얀색 보고서 종이에 빨간 줄이 조금 덜 그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무의미한 시간이 쌓이다 보니 내가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하는 행위가 마치 '글 장난'처럼 느껴졌다. 큰 틀의 내용은 같은데, 조금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이렇게도 적어보고 저렇게도 적어보는, 어른들 소꿉놀이 같았다. 가끔 이렇게 내가 하는 일이 소꿉장난 같다고 느껴지던 순간은 계속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결국 내가 조기 퇴직을 결심하는 데 일등 조력자(?)가 된다.
보고서를 왜 이렇게 꼼꼼히(?) 고칠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을 위한 사족 하나 붙이자면, 공무원 조직은 보고서를 얼마나 잘 작성하느냐로 일을 잘하냐 못하느냐가 판가름 난다. 보고서가 좋아야, 별 것 아닌 일도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근무시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이런 일 말고도 공무원도 은근히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많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기 마련인데 웬 놈의 회식은 그리도 잦은 지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놈의 회식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빠지기도 쉽지 않고, 참석하더라도 중간에 빠져나오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중간에 빠져나오는 것 정도야 분위기 봐서 슬쩍 빠지면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생각하며, 이 정도 말도 못 하는 나 같은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공무원으로 일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의 어느 회식날이었다. 그날 회식의 주제는 뭐였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술 먹기 위해 만든 그렇고 그런 건수 중의 하나가 주제였을 것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부서 전 직원이 회식에 참석하였고, 2차로 간 맥주집에서 평소 사이가 안 좋던 두 직원 간 다툼이 있었다. 다 큰 어른들이 티격태격하는 꼴이 보기 싫어진 나는(싸움 구경은 재밌지만), 마침 담배 피우러 자리를 비우던 과장님을 쫓아 나가서 오늘은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왜 집에 무슨 일이 있어?" 과장님이 '애까지 왜 이래?'라는 눈빛을 보이며 이유를 물었다.
나는 순간 불안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당당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특별한 일은 없지만, 오늘 자리가 불편하기도 하고, 집이 먼데 더 늦으면 막차를 놓칠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과장님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왜 내가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지를, '과장님 라테'때 이야기들을 예시로 들어가며, 중학교 도덕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훈시하듯이 화를 눌러가며 조근조근 설명하셨다. 길거리에 서서 듣던 도덕 선생님 훈화 말씀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길 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다 큰 어른이 길거리에 서서 혼나고 있으니 이상할 만도 했을 것이다. 이후 이 사건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고, 나는 그 뒤로 진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회식 자리를 중간에 비운 적이 없다.
어찌 보면 웃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런 조그마한 파편들이 계속 쌓여 하나의 큰 덩어리로 뭉쳐지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우주의 빅뱅도 작은 점 하나에서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내 인생의 빅뱅(조기 퇴직)은 이런 사소한 일들이 뭉쳐서 발생한 것이다.
이외에도 점심시간의 '식판 배달', 족구 시합 '강제 응원 동원' 같은 재미있는(?) 일들을 공직 생활하며 겪었다. 돌이켜 보면 내 나이에 남들이 쉽게 겪지 못하는 일을 겪었으니 이것도 큰 인생 공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인생 공부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개중에는 내가 겪은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쉽게 넘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조용히 삭이고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분들을 존경한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그 조직을 박차고 나왔으니. 나보다 참을성이 뛰어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노파심에 붙이는 사족 2: 내가 위에 말한 사례는 주로 내가 30대에 겪은 일들로, 지금은 MZ 세대가 많이 들어오면서 공직 문화도 많이 변하고 있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글이니, 이 글이 공직자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경 이미지 출처: Needfi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