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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Dec 14. 2023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1

일기와 함께 쓰는 독후감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써볼까 한다. 맞다. 시험이 끝났다. 유후~^^ 시험이 끝나고 갔다 온 대만 여행은 정말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5일이 지나고 깨달은 것이 있다. 이번 시험으로 내 희망 대학 합격 가능성이 반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하긴 내가 가기엔 너무나 대단한 대학교긴 하다.


솔직히 대학교에 가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다. 1달만 지나면 내가 '고3'이 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차라리 지구 평평설을 믿겠다. 진짜 말이 안 돼. 김시우가 고삼이야. 같지도 않은 소리다. 중3이 6.02 x 10^23배는 나에게 어울린다. 세상이 나를 속이는 건가. 그저 주변의 나처럼 덜떨어진 애들도 고3이 되기에 나도 순응할 뿐이다. 


현재 상황과 1년을 돌아보는 글은 나중에 쓰는 거로 하고 생생한 독후감을 써보자. 아직 767페이지 중 100페이지 정도밖에 읽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고,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다. 옛날에 여름방학에 한창 글쓰기에 발을 들이고 있을 때 책을 써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기억상으로는 액수가 안 나오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의 소설 작가가 원탑이라는 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 10페이지만 읽어도 하루키가 비유의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성은 너무나 짜임새 있고, 특히 A를 빗대어 표현하는 'B'의 선택이, 나의 마음에 쏙 든다. 감탄사를 내뱉게 만드는 글을 쓰는 것은 실로 정말 어려운 것이다. 쉬울 것 같으면 한번 써보는 걸 추천한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조금만 여기에 적어보겠다.

침묵의 밑바닥을 뒤져 말을 찾아온다. (12p)
부드러운 뿔피리 소리가 석양에 물든 돌길 위를 미끄러져간다. (22p)
너는 그런 사정을 띄엄띄엄 조각내어 들려준다. (28p)
가끔 네 꿈에 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매우 기뻤다. 어떤 형태로건 네 안에 있는 상상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까. (43p)


내가 읽은 100쪽에는 이제 곧 나이와 같아질 18살 남자 주인공의 추상적인 이미지와 약한 로맨스가 섞여있다. 지금 글을 쓰려고 기억을 뒤져보니 하루키의 글이 내게 남긴 상상의 세계가 너무 생생하고 강렬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약한 로맨스가 부러웠으니까. 주인공이 공부는 못한다니까 다행이다.


'고등학교 에세이 대회'에서 3등과 4등으로 만난 17살 소년과 16살 소녀는 그 이후로 친해졌다. 서로 1달에 한 번 편지를 보낼 정도로. 그리고 그 소녀는 너에게 보이는 나는 그림자 같은 거고 진짜 나는 저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속에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았다.


이게 reference구나. 벽 속의 도시로 들어가면 빛이 비쳐도 그림자가 없다. 문지기가 뗴어내기 때문이다. 도시 밖의 사람을 그림자 같다고 표현한 것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지금 깨달은 것이다. 도서관 속에서 일하는 '진짜' 소녀는 소년에게 특별한 자격이 있다고 한다. 


소녀를 좋아했던 소년은 '진짜' 소녀를 보기 위해 도시에 들어가고자 한다. 소녀는 주인공, 그리고 나에게도 그 도시에 들어갈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 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책을 읽던 나는 소녀를 좋아하는 소년과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 동시에 보였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헷갈린다. 해보지도 않은 음악 한 번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게 맞는 건지. 2학년 2학기에 2점대를 맞으면 150만 원 상당의 음악 장비를 사주겠다던 엄마의 약속도 이젠 물거품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너는 잘 모를 거다. 내 작은 꿈을 찾아 방황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음악을 듣는 게 좋았고, 여기서 짧게 말할 수는 없는 크고 깊은 가치들이 음악을 맴돌았다. 사실 음악이 아니어도 괜찮다. 주변에 과학 밖에 없는 의정부의 섬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음악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지금 내 옆과 뒤에서 롤을 하고 있는 그런 평범한 친구들하고는 다르고 싶었다. 세상에 내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찾는 과정은 눈물이 필요할 정도로 거칠었다. 왜냐면 난 능력도 없고 잘 버틸 힘이 아직 없거든. 백지거덩. 과학자가 보기에는 유치한 지식 좀 들어있는 개구쟁이거덩^^.


그래서 우는 거다. 사람이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힘도 없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온다. 내가 쓴 가사가 담긴 곡을 세상에 내놓는 것, 그런 것과 비슷한 행위들이 나에게 가치 있다고 느껴지고 내 삶의 가치와 행동들이 약간 달라질 때쯤 세 개의 칼이 날 찔렀다.


첫 번째 칼은 아빠가 찔렀다. 지금은 상처가 대충 아물었다.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는 건 정말 절망적이다. 안 좋은 기억 하나 없고 오히려 미안한 감정이 드는 엄마에게 기댈 뿐이다. 


두 번째 칼은 인간관계다. 찔렀다는 표현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표현처럼 들린다면 이 상처는 손목에 났다고 하자. 내가 찔렀으니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만 옆에 두고 싶다. 멋있는 친구들, 나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친구들, 착한 친구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들만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눈 감아줄 필요도 없고 관계를 절단해도 괜찮겠다 싶으면 나는 절단한다. 사실은 큰 계기들이 주요 원인이지만 아무튼 그런 거로 하자. 그렇게 살다 보니까 나와 내 친구들, 걔랑 내 친구들 사이의 실이 자꾸 꼬인다. 풀기보단 자르는 게 훨씬 쉽다. 그래도 이 실을 잘라서는 안된다. 이렇게 나는 관계에 대한 지식을 배운다.


이 글을 읽는 너랑 내가 언제까지 알고 지낼까? 너에게 나는 그만큼 의미 있는 존재인가? 의미가 있어야만 알고 지내야 하나? 너는 나에게 의미가 얼마나 있나? 나 말고도 사람들이 서로를 이렇게 재면서 살아갈까?


내가 실제로 자주 하는 생각들이다. 좋은 관계를 추구하는 나는 생각이 지나치게 깊어진다. 하루키처럼 나도 침묵의 밑바닥을 뒤져와서 여기에 적으면 얼마나 많은 이가 나를 떠나갈까. 다들 어느 정도는 숨기면서 살아간다는 게 이런 말이었나. 


세 번째 칼은 연구 팀원들이다. 나의 가치를 쫒는 방법을 찾으며 미래를 그려나갈 때 반대쪽에는 힘이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그 시간들이 모여 나에게 화살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실을 자르듯 그쪽 실이 잘리며 가늘어졌다. 좋았던 관계들이 변해가는 걸 보기가 힘들었다. 시간을 되돌릴 힘이 없다. 가치들이 옮겨가면서 그럴 필요도 없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실은 끊어진다. 아마 끊어졌을 거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하는 사이에 꽂힌 세 개의 칼 중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칼은 세 번째 칼 밖에 없지만 앞의 두 개의 칼 같은 갑작스러운 폭풍은 살면서 계속 만날 것이라 확신한다. 버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유치한 글이지만 내가 이만큼 힘들었다는 걸 기록해 본다. 미래의 나에게는 힘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좋아할 소녀가 있다는 사실에 내가 부러워하는 이 소년은 소녀에 대해서 차츰 알아간다. 아마 잘생겼거나 말을 잘 들어줄 것이다. 에세이 대회 시상식이 끝나고 소년에게 도착한 소녀의 편지를 스무 번쯤 읽는다. 일 년 가까이 둘만의 특별한 비밀 세계를 만들어갔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신비로운 도시였다.


잠깐만 이야기가 아닌 하루키의 독특한 특징을 말하자면 조금은 선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적나라해서 놀라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재치 있게 느껴졌는데 뒤로 갈수록 강도가 세져서 책에 밑줄을 긋기가 민망해진다. 그래서 못 본척하고 넘어갔다. 추상적이고 약한 로맨스가 나올 때면 바로 밑줄을 긋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박정민이 이 책을 읽으며 오디오북에서 했던 이야기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살면서 책 선물을 이제 어떤 친구에게 받았었는데 그 책이 상실의 시대, 요즘에는 노르웨이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책입니다.
그 책을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첫인상은 '야하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느낌밖에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중학생 사춘기 학생에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제가 성인이 되고 상실의 시대라는 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청춘들의 사랑과 고독한 마음과 이런 것들을 잘 대변해 주는 책인 것 같아서 꽤나 재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제일 많이 읽었던 책 중에 하나인 것 같고 아직도 가끔씩 찾아보는 책이라서 그 정도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책을 매우 좋아하고 이런 기회가 생겨서 대단히 영광입니다. 


선을 넘나드는 비유들을 지나 소년은 꿈이 가득한 도서관에 왔다. 도시 속의 도서관에 책은 없고 달걀 모양의 꿈만이 가득하다. 소년이 가진 자격은 그 꿈을 읽는 것이었다. 큼지막한 내용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든 이 책은 그 내용 자체보다도 내 삶을 돌아보며 하루키의 문체를 음미하는 데에 의미가 더 크다. 


내가 오늘 읽은 인상 깊은 부분을 적으며 마무리해야겠다. 소년이 소녀와 약속 장소에 만날 때마다 소녀가 항상 지나칠 만큼 일찍 오는 것에 의문이 생겨하게 된 대화이다.

항상 이렇게 일찍 와?
네가 오기를 혼자서 기다리는 게 무엇보다 즐겁거든
기다리는 게?
응.
나랑 만나는 것 자체보다?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은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슨 일을 할지.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잖아. 안 그래?

파동함수 붕괴가 생각났지만 바로 생각을 멈췄다. 어쩌면 가능성이 열려있는 지금 나의 상황도 가장 재밌을 타이밍일 듯하다.


독후감은 모르겠고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썼다. 그냥 오늘은 이렇게 쓰고 싶다.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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