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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an 29. 2024

마지막 겨울방학

1월 중순부터 관리형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침 8시에 친구랑 엄마차를 타고 가서 친구는 10시, 나는 11시에 돌아온다. 주말에는 늘 그렇듯 대치동에서 하루종일 수업을 듣는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 둘이랑 점심, 저녁을 항상 같이 먹어서 지루하지 않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반 정도 읽는데 2주가 걸렸고, 주인공이 갑자기 폭삭 늙어 도서관에 취직하는 바람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를 대비한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루키의 소설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인 '노르웨이의 숲'을 사놓았다. 오늘 2시부터 읽기 시작했는 데 그 이후로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독후감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복잡한 감정이 들긴 했지만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의 경험이 풍부하지 않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도 많이 놀랐던 성적인 장면이 더 자주 등장하고 길이도 길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에 대한 기억의 큰 장면으로 남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글 솜씨가 엄청났다. 독후감을 쓴다면 적어도 2년은 기다려야 듯하다. 자살과 사랑이 섞여있는 책을 나의 경험과 글로 표현할 없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엄마 생각이 났다. 24살에 누나를 낳았지만 26살의 누나는 아직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을 비교하며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결혼은 언제 해야 되냐고 별생각 없이 물어보면 '경제적으로 안정할 때'라고 답했다. 1997년 가을은 어땠을지 상상해 보지만 알 수 있는 건 없다.


일주일쯤 전에 독서실에서 11시에 울었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날 낮에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가사를 썼다.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우리나라에서 1년에 13000명, 하루에 35명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스스로 죽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짧게나마 이유를 상상해 봤다.


다행히도 나와 서로 아는 사람들 중 죽은 사람은 없다. 남몰래 할머니에게 대입해 봤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릴 때 아빠가 왜 그렇게 할머니한테 화를 냈는지 물어봐도 이미 늦었다. 학교 끝나고 돌아와서 학원에 가기 전까지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잔소리를 하면 방문과 귀를 닫았다. 잔소리는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할머니 방에서는 항상 낡은 TV에서 사극이 틀어져 있었고, 이상한 스피커에서 트로트 노래가 나왔다. 할머니는 자주 혼자 화투를 쳤다. 상대방 역할을 어떻게 대신했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할머니 방에서 화투를 쳤는데 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이겨도 자기가 이긴 것보다 더 좋아했다. 화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도 할머니 얘기를 했다. 엄마는 어제도 할머니랑 통화했다고, 괜찮다고 그랬다. 할머니가 글을 못 읽는 게 자꾸만 생각이 났다.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무의식을 따라 장례식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둘 다 있었다. 몇 년 전에 이어서 얼마 전에 유명한 배우가 자살했다. 1등을 달리고 있는 아이유의 신곡의 곡 설명을 보며 조금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글이 약간 어두워졌지만 요즘 행복하다. 어제까지 1박 2일 동안 축구를 하며 정말 신났다. 나이에 맞춰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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