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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 Aug 11. 2023

지도 한 뼘의 거리를 되짚어보는 일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

 인은 미스터리다. 현대사회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는 마치 미지의 존재를 탐색하는 것과 유사해졌다. 한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수히 증가하고, 각 개인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저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만 인식하기엔 타인이라는 존재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가 되었다. 나날이 커져가는 타인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여전히 타인을 이해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존재이다.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러한 행위를 반복한다. 그러나 모든 이해의 노력이 비례하여 타인의 이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이해는 대부분 그 과정에서 타인을 오판하고 실패를 마주한다. 혹은 이해를 하더라도 관계 회복의 시기는 지나치게 된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 말이다.

 이렇듯 복잡해진 타인의 존재는 문학에서도 주요한 탐구 대상이 되었다. 다수의 문학 작품들은 미지의 존재인 타인을 조명하고 이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최은영의 소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해를 실패하는 이야기

 소설 <쇼코의 미소>는 타인을 이해하고자 한 인물들의 실패담이다. <쇼코의 미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끝까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뒤늦게서야 이해에 가까워진다. 주인공인 “소유”부터 쇼코, 소유의 할아버지, 엄마는 저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에 실패한다.


  처음 교실에서 쇼코가 수줍어하는 표정을 봤을 때처럼 나는 쇼코의 웃음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쇼코는 정말 우스워서 웃는 게 아니라, 공감을 해서 고개를 뜨덕이는 게 아니라, 그냥 상대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
p.12


 소유가 이해하고자 했던 대상은 쇼코, 할아버지, 엄마이다. 먼저, 쇼코는 소유에게 있어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소유가 쇼코를 처음 본 순간, 소유가 느낀 감정들은 이질감, 서늘함, 차가움이었다. 특히 쇼코의 웃음에서 소유의 이질적인 감정이 자주 발현되고 있다. 웃음이라는 것은 주로 만족, 기쁨에서 비롯되며 웃음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의 쇼코의 미소는 이러한 웃음의 일방적인 특성을 배반한다. 소유는 쇼코의 미소를 통해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쇼코의 미소와 소유의 감정의 불일치는 쇼코라는 인물의 타자성을 부과한다. 이후 소설이 전개되면서 소유는 쇼코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보인다. 쇼코의 집을 찾아가서 쇼코 할아버지와 쇼코의 모습을 보며 쇼코라는 인물에게 가까워진다. 이후 쇼코의 미소가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아닌 자기방어적인 행동일 것이라 이해한다. 소설은 점차 소유가 쇼코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쇼코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살아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고 혼자 살아가야 하는 쇼코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러나 온전한 이해로 귀결되는 듯 보였던 둘의 관계는 마지막에 이르러 찜찜함을 남긴다. 소유가 출국장에서 쇼코의 미소를 다시 보았을 때 어린 시절처럼 서늘함을 느낀다. 쇼코의 미스터리함이 남겨진 상태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결국 소유도 쇼코라는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이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던 쇼코의 모습을 기억한다. 보딩패스를 내밀고 자동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는 쇼코의 얼굴. 그때 쇼코는 그 예의바른 웃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음이,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처럼 서늘해졌다.
p.64


 소유가 이해에 실패한 인물들은 쇼코에 그치지 않는다. 할아버지와 소유의 엄마도 이해에 실패하거나 일부 이해에 가까워지더라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나쳐버린다. 소유의 할아버지와 엄마는 소유와 가족이라는 관계에 위치한다. 가족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존재이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가 항상 정신적 거리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즉, 타인을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작품 속 소유와 소유의 할아버지, 엄마의 정신적 거리는 멀리 떨어진 듯하다. 소유는 쇼코 앞에서 할아버지의 다정한 행동과 자신에게 하는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무뚝뚝한 사람인지, 할아버지가 나에게 큰 사람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지. 할아버지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의문과 분노라는 감정을 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할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 화가가 꿈이었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었던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할아버지가 감정 표현이 없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소유가 깨닫았을 때는 이미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이었다. 소유가 소유의 엄마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엄마의 차갑고도 무관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소유는 의문을 품곤 했다. 이후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할아버지가 죽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엄마의 행동에 대해 조금씩 이해해 간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고집 많은 할아버지와 어린 소유를 부양하며 지내야 했던 엄마의 삶을 되짚어 본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오기까지 할아버지의 죽음과 일상적인 대화도 단절되었던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는 쇼코가 준 세계지도를 내 방 벽에 붙여놓고, 쇼코가 살고 있는 A시와 우리 군에 빨간색 점을 찍었다. 두 점은 한 뼘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p.15


 소유를 둘러싼 인물들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위치해 있거나, 정신적으로 가까워 보였다. 소유와 쇼코가 그랬고 소유와 할아버지, 엄마가 그랬듯이. 소유를 둘러싼 관계는 표면적인 거리와 달리 내면의 거리는 너무도 떨어져 있었다. 쇼코는 소유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했고 가족들은 주변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받은 아픔으로 발생한 무심한 모습들이 소유와의 관계에서 장벽으로 작용했다. 마치 소유와 쇼코가 사는 곳을 이은 지도의 한 뼘도 채 되지 않은 거리가 실제로는 국경은 넘나드는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인 것처럼 말이다.


거리를 체감하는 소통

 <쇼코의 미소>는 이해의 실패담이다. 그러나 이해의 행위나 과정에 있어 인물들의 노력을 냉철하게 비관하지 않는다. 최은영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이해의 실패를 바라보고, 노력의 과정을 귀담아듣는다. 이는 작가가 이해의 결과보다 이해의 노력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이해의 바탕은 인물 간의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최은영이 말하는 이해와 소통의 방식이란 무엇일까?


하나에게서는 답이 오지 않았다. 마치 쇼코가 자기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라고 부탁한 것처럼 느껴졌다.
p. 22


내가 몰랐던 비밀을 할아버지와 공유했다는 질투, 내게 내내 연락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미운 마음, 일본에서 본 쇼코의 태도에 대한 거부감, 나의 불안정한 처지에 대한 방어심, 그 모든 감정들이 하나로 모여서 차가운 마음으로 굳어졌다.
 “나는 너를 안 봐.”
p.58



 소설에서 핵심적으로 소통이 주고받는 관계는 소유와 쇼코이다. 소유와 쇼코의 이해 과정에서 대면했을 때를 제외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이 시도된다. 소유와 쇼코의 소통 방식은 편지, 전화, 이메일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모든 소통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소유가 쇼코와 소통을 하고자 메일 주소를 알아보았지만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한다. 소통이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단절이 일어난 것이다. 전화를 통한 경우에도 유사하다. 쇼코는 소유에게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눴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지만 소유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쇼코와의 마무리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소통이 전개된다. 이 소통에서도 쇼코와 할아버지에 대한 이해의 움직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 다른 소통방식을 살펴보자. 쇼코와 소유를 강력하게 연결시켜주는 소통의 수단으로는 편지가 존재한다. 편지를 통한 소유와 쇼코의 소통은 소설의 서사에 있어 핵심적으로 작용한다. 소유는 편지를 통해서 쇼코의 내면을 이해한다. 쇼코는 할아버지와 쇼유에게 각각 편지를 쓰게 되는데 하나에는 자신에 대한 밝은 내용이, 다른 하나에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다. 처음 소유는 두 편지의 상반된 것에 혼란스러워하지만, 이후 소설이 전개되면서 두 가지의 감정 모두 쇼코를 나타내는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쇼코의 편지를 통해서 할아버지의 과거와 내면을 알게 되고 할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한 발짝 다가서게 만든다. 즉, 소유와 쇼코의 소통에서 편지는 이해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편지는 다른 소통방식과 달리 이해에 다가선다. 이는 다른 소통 방식과 다른 편지의 특성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편지는 우선 거리를 체감하는 소통 방식이다. 소설에서 이루어진 이메일이나 전화와 같은 소통은 즉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소통하는 주체들 사이의 거리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즉각적인 음성 혹은 서면으로의 소통이 가능하다. 반면, 편지는 떨어진 거리가 소통에 반영된다. 편지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소통하는 이들의 거리만큼의 기다림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은 소설에서 다루는 이해라는 주제와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소통에서 기다림이 반영된다는 것은 소통하는 이들끼리의 거리를 인식하는 것과 같다. 소유와 쇼코에게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물리적인 거리와 미지의 존재라는 정신적 거리가 존재한다. 작품 속에서 이러한 거리를 무시한 소통은 모두 실패하게 된다. 이해를 위한 소통에서 거리를 경시라는 것은 타인을 그저 가까운 존재로 오판하는 실수를 낳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통에서 거리를 체감하는 것은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되짚어보는 일이며, 이는 사람 사이에서 이해의 기반을 제공한다.


거짓된 진실한 편지

 <쇼코의 미소>에서 편지는 거리를 체감하는 소통 방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품 속에서는 쇼코의 편지에 대한 의미심장한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두 종류의 편지가 모두 진실이었으리라고 짐작했다. 모든 세부사항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모두 진실된 이야기였을 거라는 걸. 아니 모든 이야기가 허구였더라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의 편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을 것이고. 내 편지에 썼듯이 자신을 포함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겠지.
p. 17


 쇼코의 편지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진실된 이야기’, ‘허구였더라도 진실된 이야기’로 표현되고 있다. 해당 언급에서 “허구된”이라는 표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작품 속 편지를 하나의 비유로 본다면 허구성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소설이라는 문학이다. 소설은 허구성이라는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문학 갈래이다. 그렇기에 작품에서의 쇼코의 편지가 마치 하나의 소설을 읽는 행위와 겹쳐진다.


 소설을 읽는 행위는 <쇼코의 미소>에서 다루고 있는 타인의 이해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소유가 쇼코와 할아버지를 가깝게 이해하는 순간은 편지를 읽는 순간이다. 소유의 집으로 찾아온 쇼코가 할아버지의 편지를 읽었을 때 할아버지라는 존재와 행동에 대해 가장 가까운 이해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쇼코와 쇼코 할아버지 사이의 관계도 알게 되며, 소유와 쇼코의 관계도 회복되어 간다. 더 나아가 소유는 할아버지와 쇼코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이해한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애매한 예술가가 되어버린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작품 속 소유의 변화는 현실 세계에서 소설을 읽을 때 일어나는 일들과 유사하다.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독자로 하여금 인물에게 이입을 하게 한다. 때로는 본능에 충실한 사람을, 소심하고 섬세한 사람을, 비겁하고 더러운 사람을 보여주며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을 섬세하게 서술한다. 그러한 서술을 읽으면서 독자는 다양한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공감하고 주변 사회 속 존재하는 타인들의 행동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더 나아가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에게 숨겨진 감정과 행동들을 찾아가고 최종적으로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소설을 읽을 때 궁극적으로 독자는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한다. 이는 <쇼코의 미소> 속 편지를 읽는 소유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주변의 수많은 쇼코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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