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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 Aug 18. 2023

사랑을 요리하고, 사랑을 먹고, 사랑을 소화하고

고명재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1. 시는 사랑을 요리하고

 요리는 무엇보다 사랑의 행위이다. 흙이 잔뜩 묻은 뿌리와 잎사귀를, 기름과 피에 얼룩진 살과 뼈를 다듬는 일. 날카로운 칼을 쥐고 뜨거운 불로 재료를 제련하는 일. 요리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한 그릇에 담긴 음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용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 용기를 행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 마음을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줄 안다는 건, 그것은 사랑을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요리를 하고, 요리를 통해 완성된 음식을 먹고, 음식을 몸으로 소화하는 일은 사랑을 삼키고 말하는 일이며, 동시에 시적인 순간들이다. 고명재는 그런 순간을 쓰고 있다.


 고명재의 시에서는 요리의 행위가 반복된다. 찜통 속에 삼겹살을 삶고(<수육>), 장독에 간장을 담그거나(<한정식>), 할머니와 경단을 만든다(<비누>). 요리와 더불어 음식을 먹는 행위도 함께 발현되고 있다. 엄마와 콩국수를 후루룩 먹고(<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무지개 빛 수육을 삼키고(<수육>), 어금니에 박힌 초콜릿 조각을 녹인다(<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 그리고 먹는 행위를 넘어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는 몸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한의사는 명재 씨의 차가운 속을 들여다보고(<뜸>), 늙은 조리사가 보여주는 손등은 안이 다 비치고(<시와 입술>), 가장 투명한 부위는 시가 된다(<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고명재의 시는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고, 음식을 소화하는 몸을 본다. 이 과정에서 부유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때 사랑은 단순이 연인간의 성애적 사랑에 머물지 않으며, 가족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확장되어 노래한다.


페이스트리

매일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을 반죽에 섞고
언덕이 부풀 때까지 기다렸어요
물려받은 빵집이거든요
무르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사람이 강물이죠 눈빛이 일렁거리죠 사랑은
사람 속에서 흐르고 굴러야 사랑인 거죠

인연은 크루아상처럼 둥글게
만두 귀처럼
레슬링으로 뭉개진 시간의 살처럼
나는 배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요
저마다의 별 무리 저마다의 회오리
저물녘이면 소용돌이치는 무궁화 속에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거예요

가장 아름답게 무너질 벽을 상상하는 것
페이스트리란
구멍의 맛을 가늠하는 것
우리는 겹겹의 공실에 개들을 둔 채
바스러지는 낙엽의 소리를 엿듣고
뭉개지는 버터의 몸집 위에서
우리 여름날의 눈부신 햇빛을 봐요

나는 안쪽에서 부푸는 사랑만 봐요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오븐을 열면 누렁개가 튀어나오고
빵은 언제나 틀 밖으로 넘치는 거니까
빵집 문을 활짝 열고 강가로 가요
당신의 개가 기쁨으로 앞서 나갈 때
해 질 녘은 허기조차 아름다워서
우리는 금빛으로 물든 눈에 손을 씻다가
흐르는 강물에서 기다란 바게트를 꺼내요


 고명재의 시적인 순간의 시작은 바로 요리이다. 이 시는 빵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서 만들고자 하는 빵은 페이스트리 반죽이다. 이는 밀가루 반죽에 버터를 얹어 얇게 밀어내고 이를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고명재는 이러한 반죽의 제조 과정을 일종의 은유의 형태로 활용된다.


 시의 1연에 등장하는 빵 반죽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반죽을 발효하는 과정은 언덕이 부푸는 현상으로 치환되며, 그 안에는 사람과 사랑으로 차 있다. 사람은 강물로 은유 되어 일렁이며, 이러한 사람 속에서 사랑이 흐른다. 이렇게 만든 반죽은 납작하게 밀리고 겹겹이 쌓으면서 ‘시간’과 ‘저마다의 별 무리”와 “저마다의 회오리’, ‘보고 싶다’는 말이 쌓인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모습으로, 크루아상이라는 형태로 반죽이 빗어진다. 오븐에서 반죽은 구워지며, 다시 한번 부풀게 된다. 빵이 다시 부푸는 것은 사랑이다. 불쑥 떠오르는 얼굴이 보이고 ‘당신의 개’는 기쁨으로 앞서 나가고, 해 질 녘 허기는 아름답다. 이처럼 빵이 부풀며 구워지는 순간의 사랑을 연상되는 이미지 연속으로 표현한다.


 고명재의 <페이스트리>는 빵의 요리 과정을 사랑의 형상으로 절묘하게 은유한다. 이처럼 고명재 시에서 음식을 요리하는 과정에는 사람과 사랑이 담기고 이를 심화하며 이미지를 병치시키는 방식을 통해 풍부한 감각을 자아낸다.


2. 사랑을 먹고 빛을 삼키고

 고명재의 시에서는 자주 무언가를 먹고 있다. 먹는 대상 혹은 행위는 곧 ‘너’라는 타자와 가족과 더 나아가 사람들과 결합하여 사랑의 의미를 창출한다. 그리고 먹는 행위와 맞닿아 있는 신체의 감각도 같이 표현된다. 이를테면 입을 둘러싼 감각과 같은 것이다. 시에서 ‘입술’이라는 신체 부분과 입을 맞추는 행위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이때 입술과 키스의 행위는 먹는 것의 대상과 이미지가 겹쳐진다.


혹시 민트초코를 좋아하십니까 짙푸른
허브의 입술이 궁금하다면
파랗게 키스하자 젊은 혀들아
어금니에 박힌 초콜릿 조각을 함께 녹이며
우리는 우리의 청량(淸凉)을 완성합니다

- 고명재 <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 중 일부


 시의 먹는 행위와 입술의 감각은 절묘하게 사랑을 얘기한다. 시는 ‘먹는 행위’와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일치하도록 만들고 있다. 같은 신체 부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동시에 겹치게 함으로써 시적인 순간을 창조한다. 이를 이어 겹쳐진 순간은 빛의 감각을 동반한다. 시에서 먹는 행위, 입술이라는 신체 부위와 함께 두드러지는 것은 빛이 나는 순간이다. 입속에서 일곱 색이 번들거리고(<수육>), 여름날의 눈부신 햇빛을 보고(<페이스트리>), 미래가 빛나서 키스를 하는 것(<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시인은 먹는 것, 신체의 감각, 빛이 나는 순간을 겹치게 하여 시적인 사랑의 순간을 밝게 포착하고 있다.


시와 입술

당신 셔츠의 소매가 곱게 사각거릴 때
어쩌면 우리는 튀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명재씨, 부르는데 입을 맞출 뻔
번들거리는 입술로 순간 환해져버릴 뻔

눈귀코로 사랑이 바글대고 있는데
솟고 싶다 헤엄치고 싶다 비 맞고 싶어
기름은 씨를 꾹꾹 짜낸 빛이라서요

좋은 튀김은 아침볕과 색이 같다고
늙은 조리사는 손등을 보여주었다
안이 다 비치지요?
여름옷처럼
얇은 튀김옷으로 우린 갈아입고서

그렇게 커튼을 손목과 강을
시와 입술을
반투명하게 읽고 반쯤 사랑해버리고

자꾸만 솟는 사랑의 은유를 젓가락으로 누르며
우리는 온갖 기름진 말을 나누는 것인데

참기름: 한국에선 가장 참된 것
모든 요리의 마무리로 금박을 입히죠
카놀라유: 유채 꽃씨를 힘껏 짜낸 것
꽃이 될 뻔했던 씨의 땀이었다니
그래서 호박이 이렇게 밝고 고소한가요

올리브유: 올리버올리버올리버올리버
당신의 이름을 연거푸 말하면 여름이 불타고
해바라기유: 맥주를 따르며 웃는 걸 본다
개기름: 눈길만으로 불이 붙을 때

입술이 옴짝달싹 기름을 바르고 리듬을 입고 마음을 업고 무릎을 꿇고
미강유: 아름다움에 대해 강하게 말하자
쌀눈유처럼 사랑의 눈을 번쩍 뜬 채로
몰라유: 전라도로 여행 갈래요

사랑을 해야지 심장을 구하자 기름 속에서
작약이 모란이 겹벚꽃이 흐드러지는데
늙은 조리사가 살짝 윙크를 한다
마음 속 깊이 두 손을 담그면 별들이 튀고
너무 익으면 날 수도 있어 장대를 다오!
튀김기 속에서 새우들이 솟아오른다


 <시와 입술>은 앞선 특성이 잘 드러나는 시이다. 셔츠가 사각거리는 이미지로 시작하는 이 시는 곧이어 튀김의 바삭한 질감과 연관하여 이미지로 치환한다. 음식의 이미지와 함께 입이 등장하고 그 입은 번들거리고 환해진다. 고명재의 시적 순간은 초반부터 표출된다. 이후 사랑이 바글대고, 튀김과 기름의 이미지가 사람과 사랑으로 결합되어 제시된다. 시는 이후 기름의 이름을 제시하고 연상되는 것들을 통해 사랑과 먹는 것의 이미지를 결합한다. 특히 “올리브유; 올리버올리버올리버올리버”에서 고명재의 시적 순간의 겹쳐진 이미지는 절정으로 향한다. 올리브유에서 소리적으로 연상된 ‘올리버’라는 이름의 연속은 자연스럽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연상하게 한다. 해당 영화에서 ‘올리버’를 반복해서 부르는 것은 일종의 사랑의 표식으로 작동한다. 또한, 영화의 핵심은 지중해의 여름 햇빛과 먹는 것의 감각이 사랑과 연결지어진다는 것인데, 이는 곧 <시와 입술>과 고명재의 시적 순간과도 절묘하게 맞닿는다. 이처럼 시 속 주체들은 모두 음식이 되기도 혹은 음식 가까이 존재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음식의 감각을 입을 통해 나누며 빛을 발산한다. 고명재의 시는 이렇게 순간은 먹고 빛을 삼킨다.


3. 몸은 투명하게 소화하고 사랑이 드러나고

 고명재의 시는 요리하고 먹으며 빛을 뿜는다. 그리고 이제 소화를 시킬 차례이다. 소화시키는 몸. 고명재는 그런 몸 혹은 속을 들여다본다. 고명재의 시에서 유독 신체 부위는 투명하거나 무언가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시에는 ‘청진’, CT와 속을 들여다보는 한의사 등 몸 안을 관통하여 직시할 수 있는 존재들이 등장하고 투명해진 신체 부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신체의 투명성은 곧 시의 주체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투명해진 신체를 통해 시인이 들여다보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한의사는 골똘히 손목을 짚더니 안개꽃이 한 다발 보인다 했다 차갑고 외로운 식물이에요 눈 내린 대나무 숲처럼 고요하지요 명재씨는 속이 차요 뜸을 좀 뜹시다 뱃가죽 위로 쑥이 타고 매캐해질 때 나는 죽은 사람을 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졸업식마다 안개꽃을 들고 온 사람, 가장 많은 수의 꽃송이를 주고 싶었어 가족을 불리고 아침을 차리고 붐비게 살아 그래서 지금 나를 버리는 거라고 했다 그때부터 콧구멍엔 안개가 피고 눈 속에서 백내장이 흐드러지고 그래도 이건 진실이야 사랑해서, 우리는 박하를 짓이겨 배꼽에 밀어넣었어 그럼 언젠가는 네 머리에서 박하향이 날 거라고 우린 실패했고 집은 조용하지만, 쑥이 다 탔을 때쯤 눈이 내린다 배가 돌고 손이 녹고 아이가 부풀고 내가 바란 것은 꽃도 향도 아니었는데


 <뜸>은 한의사가 손목을 짚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의사는 명재씨로 지칭되는 주체의 몸을 들여다보고 있다. 명재씨의 몸은 차고 안개꽃 한 다발이 보인다. 투명하게 관통되는 신체는 화자가 겪었던 사랑의 흔적과 이어진다. 안개꽃은 화자에게 ‘가장 많은 수의 꽃송이를 주고 싶었어’라는 말과 함께 안개꽃을 선물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 치열하게 사는 자신을 버리는 모습은 진실, 사랑이라는 말과 겹쳐진다. 이후 박하를 짓이겨 배꼽에 넣었고 실패를 경험하며 아이가 부푼다. 그리고 이는 뜸을 뜨는 과정에서 쑥이 타는 과정과 함께 맞물린다. 이때 박하를 배꼽의 밀어넣고 아이가 부푸는 것은 일종의 사랑에 대한 은유로 연상되며, 이는 몸의 열을 전달하는 뜸과 함께 일종의 열 교환이 이루어진다. 뜸의 과정을 통해 몸 안에 존재하는 사랑과 실패의 경험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고명재의 시는 결국 사랑의 순간을 노래한다. 그 사랑의 순간은 연인과 가족과 사람을 향하며 다채로운 형태를 지녔다. 고명재는 이러한 사랑을 시라는 언어로 요리를 하고 먹고 있다. 이때 빛이 나면서 소화를 시키며 시를 받아들이는 몸은 투명해진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요리의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며, 요리를 둘러싼 먹고 소화하는 것 역시 사랑의 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시인이 사랑의 순간을 요리하여 시를 쓰는 것은 사랑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고명재의 시를 맛있게 먹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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