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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ul 24. 2021

전여빈이라는, 매혹(魅惑)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월하의 맹세라도 한 것처럼 “전여빈, 매력 있지 않냐?”고 물어온다. 같은 생각을 이전부터 품어왔던바, 대화는 ‘전여빈 만세’로 대동 단결되기 일쑤다. 이쯤이면 확신하게 된다. 전여빈은 대중이 더 읽어내고 싶은 호기심의 얼굴이 됐다는 걸. 전여빈이란 배우를 좋아하는 게 ‘개인의 취향’으로 여겨지던 시간을 넘어 ‘범대중적인 선호’로 넘어가는 시기라는 걸.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상대의 눈을 멀게 하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유형의 배우는 아니다. 지금의 현상이 말해주듯, 기이한 매력으로 상대를 조금씩 끌어당겨 ‘보고 또 보고 싶게’ 흡수해버리는 쪽이다. 그 기이한 매력은 뭘까. 어떨 때의 전여빈 얼굴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데, 어느 순간의 얼굴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단어에 가두지 못할 정도로 오묘하게 빛난다. 그런 전여빈을 두고 문소리는 “촌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얼굴이 공존하는 배우”라고 했다는데, 고개가 일견 끄덕여진다. 


뭐랄까. 수트 착장을 고수하는 <빈센조>에서의 전여빈은 어쩐지 약간 구수해 보이고, 후드티 하나 달랑 뒤집어쓰고 나오는 <낙원의 밤>에선 희한하게도 도시적으로 느껴진다. 눈여겨볼 건 이러한 상반된 이미지 충돌이 전여빈의 독자성을 깎아내리기는커녕, 견제와 균형을 통해 그녀만의 매력으로 옹립된다는 것이다. 관습적인 세련됨 바깥에 유영하는 형질의 개성. 이것은 그녀와 아울러 무쌍 배우 신세계로 꼽히는 김고은 김다미 박소담 등과는 차별화된 전여빈만의 필살기일 테다.


전여빈을 처음 본 건 문소리가 메가폰을 잡은 단편영화 <최고의 감독>(2015)에서였다.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와, 크게 될 상이야!”라고 했더라면 배우 보는 안목에서 한 소리 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전여빈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각인한 건 <죄 많은 소녀>(2018)에서였다. 영화에서 전여빈은 친구 죽음의 가해자로 몰린 여고생 영희로 분했다. 억울함, 죄책감, 죄의식 등을 뒤집어쓴 복잡다단한 인물. 극 안에서 전여빈은 말하지 않는데도 많은 말을 쏟아내는 듯 보였고, 울지 않는데도 뜨겁게 울부짖는 듯 보였다. 아, 온몸으로 연기하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전여빈에게는 너무 빠른 나이에 커리어의 정점에 올라선 스타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현실감 결여’가 없다. 이 무렵의 전여빈 인터뷰를 찾아보면, 신인 시절 전여빈이 가장 잘해 낸 건 ‘버티기’였던 것 같다. 연극 스태프로 출발해 스물일곱이란 나이에 연기를 시작하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나날과 불안한 미래와 싸우다가, 어쩌면 배우로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덤볐던 작품이 <죄 많은 소녀>다. 그리고 <죄 많은 소녀>는 닫혀 있던 전여빈의 경력을 활짝 열어 줬다. 


<죄 많은 소녀>는 전여빈에게 첫 주연작이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영희라는 인물을 만나게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하지 않을까 싶다. 감정 소모의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창작자와 캐릭터가 자신을 지독히도 못살게 굴어주길 원하는 게 또 배우다. <죄 많은 소녀>의 영희는 그런 캐릭터였다. 표현해야 할 결이 풍성해서 배우라면 한 번쯤 탐낼 만한 인물. 물론, 난도가 높은 캐릭터인 만큼 배우에겐 위험부담이 따르기도 한다. 캐릭터에 잡아먹힐 확률도 높으므로. 그러나 전여빈은 자신에게 온 영희와 공명하며 기회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든다. 그중 하나는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이다. 


<죄 많은 소녀>에서의 전여빈을 인상적으로 본 이병헌 감독은 <멜로가 체질>을 만들면서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여러 명대사와 명장면이 쏟아진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전여빈의 ‘욕밍아웃’ 신이다. CF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에게 욕을 해대는 감독 상수(손석구)에게 X욕을 곱빼기로 얹어 갚아 주는 은정(전여빈)의 찰진 연기는 속이 답답한 당신을 위해 추천한다. 십 년 묵은 체증을 쓸어 버리는 전여빈표 ‘욕 배틀’의 박력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전여빈은 한 편의 드라마와 한 편의 영화를 동시에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또 한 번 경력 확장의 액셀레이터를 강하게 밟는 중이다. 포인트는 비슷한 시기에 두 작품을 내놓았다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그녀가 보여 준 다채로움이 핵심이다. <빈센조>에서 연기한 홍차영은 조증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채도가 높은 인물이다. 다른 하나인 <낙원의 밤>의 재연은 울증을 슬쩍 보일 정도로 인생의 나락에 서 있는 인물이다. 둘 사이를 오가는 전여빈에게 이물감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고백하자면 <빈센조>에서 전여빈이 첫 등장 해 텐션 높게 대사를 내뱉을 때, 나는 살짝 전여빈이 고전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배우를 첫 장면에서 지레짐작하는 건 얼마나 백해무익한가. 몇 회를 보고 난 후, 이것은 배우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에서 오는 낯섦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 장르가 뒤섞인 듯한 <빈센조>에서 차화영에게 맡겨진 미션은 ‘코미디’다. 아무래도 조금 더 튈 수밖에 없다. 시청자와 가까워지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관건은 배우가 이를 얼마나 설득해내는가. 과장된 코믹 연기로 의구심을 낳았던 전여빈은 극이 진행될수록 물음표를 느낌표로 돌려놓는다. 그런 면에서 <빈센조>는 배우 전여빈의 외적 성장기이기도 하다.


누아르 영화 <낙원의 밤>에서 전여빈은 엄태구와 짝을 이뤄 등장했다. 위기의 순간 남성이 여성을 구해내는 구조? 그럴 뻔한 영화는 전여빈이 수컷들의 세계에 총을 들고 유유히 들어서는 순간 달라진다. 누아르 영화에서 여배우가 하이라이트 장면을 소위 말해 ‘따 먹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차이나타운>(2014)이 있지 않았냐고? <차이나타운>은 여성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작품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낙원의 밤>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뉘지만, 전여빈에게 칼자루가 쥐어진 마지막 10분의 우당탕탕탕 신에 대해서는 크게 의견이 엇갈리지 않는 분위기다. 그 안에서 전여빈은 욕 배틀을 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박력 넘친다. 


개성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는 미디어 산업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 자기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낸 전여빈의 존재는 귀하다. 올해는 그녀의 재능이 더욱 많은 이들에게 가 닿는 한해로 기록될 듯하다. “배우 같지 않다는 말로 무시를 많이 받았다”는 전여빈은 그러나 이를 역이용해서 그 누구보다 배우 같은 얼굴이 됐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전여빈의 다음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씨네플레이'에 기고한 배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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