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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Dec 27. 2017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일본 멜로영화들

일본 멜로, 어디까지 챙겨봤니?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극장가에 불어온 일본 멜로영화 바람은 대단했다.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시작으로 감수성 예민한 멜로물들이 쉼 없이 쏟아지며 국내 관객들의 눈물을 훔쳤다. 일본영화 특유의 감수성을 어필한 작품의 경우 마니아 팬을 형성하며 큰 지지를 얻기도. 하지만 그 많던 일본 멜로물들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서서히 세력이 약해지더니, 어느 순간 대만 청춘물에 그 영광의 자리를 내줬던 게 사실이다. 반격의 서막이라고 하면 지나친 확대해설일까. 


올해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가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줬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으로 떠오르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이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와 함께 일본에서 찍은 한일합작멜로 <나비잠> 역시 눈여겨봐야 할 작품. 일본멜로영화는 다시 흐드러지게 피어날까. 중요한 분기점을 맞아,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일본멜로물들을 추억해봤다.

        

1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그 여자 그 남자: 2년 전 사랑하는 연인 ‘후지이 이츠키’를 잃은 그 여자‘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와 ‘후지이 이츠키’와 이름은 같은 그의 중학교 동창생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 + 그런 그녀를 사랑했던 과거의 그 남자‘후지이 이츠키’  


추억: 태초에 <러브레터>가 있었다. 일본 멜로영화 훈풍의 진원지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다. 일본 문화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던 1995년에 출시 된 영화는, 그러나 국내 대학가를 중심으로 비공식적으로 불법 유통되며 입소문을 탔다.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한 건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일본 대중문화에 문호를 정식으로 연 1년 후였다. 이미 불법으로 이 영화를 접한 관객이 20만 명이나 된다는 풍문에 수입사는 걱정했지만, 우려와 달리 영화는 전국을 ‘오겡끼데스까’ 열풍으로 몰아넣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와이 슌지의 감성적인 터치와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애잔한 1인 2역 연기, 리메디오스(Remedios)의 서정적인 OST 등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였다. 무엇보다 영화가 품은 순백의 정서가 ‘죽어도 잊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멜로 영화 특유의 상투성을 지워버리는 놀라운 마력을 발휘했다. 사랑해 본 이들의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야 마는 멜로영화의 최고봉 중 하나.


2. <4월 이야기> April Story, 1998     


그 여자 그 남자: 갓 도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홋카이도 출신의 그 여자 우쓰키(마츠 다카코) +동네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그 남자 야마자키(다나베 세이치) 


추억: 4월만 되면 자동소환하게 되는 영화, 이와이 슌지로부터 도착한 두 번째 러브레터 <4월 이야기>다. <러브레터>가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했다면 <4월 이야기>는 시작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다. 싱그러운 캠퍼스, 첫사랑, 희망, 시작, 벚꽃, 두근거림…이 모든 게 여기에 있다. 낯선 공간에서 홀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우쓰키의 행보를 따르다 보면, 그녀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녀가 자주 들리는 ‘무사시노도’ 서점에서 일하는 청년 야마자키. 우쓰키가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선배다. 그와 같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죽도록 공부에 매진했던 우쓰키는 비 오는 4월의 오후, 드디어 야마자키를 만난다. 그녀의 첫사랑은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야마자키가 건네준 빨간 우산을 쓰고 내달리는 우쓰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건, 비인가 벚꽃인가. 6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긴 영화다.


3. <비밀> Secret, 1999     

그 남자 그 여자:버스 사고 후 죽은 딸과 영혼이 바뀐 그 여자나오코(히로스에 로쿄)+자신을 아내라고 말하는 딸(?)로 인해 이중생활을 하게 된 그 남자 헤이스케(고바야시 카오루). 


추억: 영혼이 바뀌는 설정은 수많은 영화가 사랑해 온 아이템이다. 이 영화 <비밀>에서는 엄마와 딸의 영혼이 바뀐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혼란을 겪는 건 남편이자 아빠인 헤이스케다. 딸의 몸에 빙의된 아내. 그녀는 아내인가 딸인가. 집에선 부부관계를, 밖에선 부녀관계를 아슬아슬한 이어나가는 이들은, 완벽한 부부도 완벽한 부녀도 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고뇌하기 시작한다. 남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근친상간의 위험성도 기묘하게 피해가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제목에 걸 맞는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 “사랑하니까 보내준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여지가 크다. 영화 <철도원>(1999)으로 국내팬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히로스에 료코의 리즈 시절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이 원작.


4. <냉정과 열정사이> Between Calm And Passion, 2001     


그 남자 그 여자:평생 잊지 못할 여인을 가슴에 품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사는 그 남자 준세이(더케노우치 유타카) + 준세이와 30살의 생일날 피렌체 성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약속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 여자 아오이(진혜림) 


추억: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 후 엇갈리다가 재회하는, 남녀의 10년의 연애사.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현실적인) ‘냉정’과 (그럼에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열정’ 사이에서 서성이는 이 세상 연인들에게 위안을 던지는 작품이다. 서로에 대한 오해와 흔들리는 믿음, 그럼에도 인연의 끈을 부여잡은 건 결국 ‘사랑’이다. 10년이라는 막막한 세월을 지나 두 연인이 약속한 장소에 다다랐을 때,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에도 조명이 ‘펑’ 하고 켜졌으리라.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가 함께 써 내려간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별한 두 연인을 남녀 각자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형식으로, 영화는 남자 준세이의 시선을 택해 달린다. 다케노우치 유타카의 내레이션이 극의 감성과 근사하게 어울린다. 로케이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으로 이 영화 후 피렌체 두오모는 연인들의 필수 코스로 떠올랐으니, 이탈리아 관광청은 감사패라도 수여를... 


5.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2003     

그 여자 그 남자: 걷지는 못하지만 훌륭한 요리 솜씨와 상상력을 지닌 그 여자 조제(이케와키 치즈루) + 조제에게 연민과 호감, 그리고 사랑을 느끼는 그 남자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추억: 뜨거웠던 사랑은 시간과 함께 부식된다. 이건 대부분의 남녀가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다. 뜨거운 사랑이 끝났을 때, 사랑을 어디로 가는가. 다른 관계로 발전해서 함께 하는 시간을 연장해 갈 수 있겠지만, 츠네오와 조제가 선택한 방법은 이별이다. 아니, 선택은 츠네오가 했고 조제는 그런 츠네오를 원망하는 대신 그와의 마지막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꿋꿋하게 걸어 나간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츠네오와의 사랑을 통해 세상(호랑이)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던 조제는 츠네오를 떠나보내면서 또 한 번 성장한다. 츠네오와 함께 할 음식이 아닌, 혼자 먹을 음식을 묵묵히 준비하는 조제의 뒷모습을 담아낸 이 영화의 엔딩은 지금 봐도 슬프지만 아름답다. 2004년 국내 개봉했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열광적인 팬덤을 타고 1년 뒤 재개봉하는 기적을 이뤘는데, 츠마부키 사토시의 국내 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노다메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우에노 주리의 데뷔작이기도. 조제-츠네오와 삼각관계를 펼치는 카나에 역으로 등장했다.


6.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Crying Out Love In The Center Of The World, 2004     

그 여자 그남 자: 그 여자 아키(나카사와 마사미) 없는 세상에서 홀로 나이를 먹은 그 남자 사쿠타로(오오사와 타카오). 사라진 약혼자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온 사쿠타로는 열여섯 첫사랑을 추억한다. 


 추억: 일본멜로 영화는 담백하다? 꼭 그렇지는 않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일본도 최루성 멜로를 만들 수 있음을 명명백백 외치는 영화다. 첫사랑, 백혈병, 죽음, 남은 자의 슬픔 등 눈물샘을 자극하는 요소가 빼곡하다. 최고의 한 방은 백혈병에 걸려 무균실에 격리된 아키와 그런 아키에게 혼인 신고서를 들고 달려가 청혼하는 사쿠타로의 눈물이다. 투명 비닐 사이로 나누는 두 남녀의 애절한 입맞춤에서 최루 폭탄이 투하된다. 다소 오그라들 수 있는 여러 설정을 그나마 눌러 주는 것은 정서의 힘이다. 카세트테이프, 음성 교환 일기, 라디오, 엽서 보내기 등 80년대를 환기시키는 복고풍 아이템들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역대 일본 소설 판매 1위를 기록했던 가타야마 교이치의 동명작품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일본에서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그 인기를 타고 한국에서 송혜교-차태현 주연의 <파랑주의보>(2005)로 리메이크됐으나,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고꾸라졌다. 두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추억의 부스러기.


7. <지금 만나러 갑니다> Be With You, 2004     

 

그 남자 그 여자: 1년 전, 비의 계절이 찾아오면 자신도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 여자 미오(다케우치 유코)+ 아들과 함께 비의 계절을 기다리는 그 남자 타쿠미(나카무라 시도) 


추억: “몇 번을 만나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라는 타쿠미의 대사는 이 영화를 집약한다. 죽음도 막지 못할 이 지독한 사랑이여! 2004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함께 일본 열도를 순애보로 강타한 영화다. 과거의 사랑이 돌아오는 영화적 방법은 많다. ‘과거의 연인과 닮은 얼굴’로 ‘목소리’로 ‘그/그녀가 남긴 편지’ 등으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유령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해도 소용없다. 이건 순애보의 세계다. 취향이 아니라면 눈 질끈 감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 현실과 영화의 간극을 너무 명확하게 알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 나카무라 시도와 다케우치 유코가 이 영화를 통해 급속도로 사랑을 키우고 이듬해 바로 결혼에 골인했지만, 결혼 16개월 만에 이혼하는 속사포 사랑 행보를 보였다. 영화에서 이들 사랑은 시한부였지만, 영화 밖에서도 너무도 빨리 식은 셈이다. 이 영화는 현재 한국에서 리메이크가 진행 중이다. 주인공은 소지섭과 손예진이다.


8. <도쿄타워> Tokyo Tower, 2004     

 

그 여자 그 남자: 셀렉트샵의 오너이자 유명 CF기획자의 아내인 그 여자 시후미(구로키 히토미)+아들의 친구이자 평범한 대학생인 그 남자 토오루(오카다 준이치)는 3년째 비밀 열애 중. 


추억: <냉정과 열정사이>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쓴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에쿠니 가오리의 이 소설은 김희애 유아인 주연의 드라마 <밀회>의 원안이 되기도 했다. <밀회>가 그렇듯 <도쿄타워> 역시 권태와 공허함에 찌든 상류층 여자들의 내면을 깊숙이 바라다본다. 선재(유아인)에게 리흐테르가 있다면, 토오루에겐 라흐마니노프가 있다. 선재에게 혜원(김희애)이 삶의 전부라면, 토오루에겐 시후미가 그렇다. 토오루는 시후미가 좋아하는 것들, 다시 말해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그레이엄 그린을 읽으면서 세상을 느낀다.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싶다는 감독의 바람과 달리, 그리 두텁지 않은 연출력으로 국내개봉 당시 ‘불륜 미화 영화’라는 공격을 적지 않게 받았다. 그럼에도 유부녀들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는데, 유부남을 바짝 긴장시키는 결말을 품은 영화라는 점이 어느 정도 주효했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것이야”라는 명대사가 사랑받기도.


9. <눈물이 주룩주룩> Tears For You, 2006     

그 여자 그 남자: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친남매로 자라 온 그 남자 요오타(츠마부키 사토시)와 그 여자 카오루(나가사와 마사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추억: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에서 남자의 진짜 눈물을 보여줬던 츠마부토 사토시가 다시 한번 작정하고 주룩주룩 울어보겠다 찍은 영화. 제목부터 <눈물이 주룩주룩>이니, 정말 그는 하염없이 주룩주룩 눈물을 흘린다. 과도하게 눈물을 노린 탓에, 감정이 쌓이기 전에 눈물이 휘발되는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다행이라면 ‘배다른 형제’라는 진부한 소재를 츠마부키 사토시와 나가사와 마사미의 말간 얼굴이 필터처리 해낸다는 것이다. 2006년 일본 멜로영화 최고흥행작에 오른 이유일 것이다. 영화 흥행에는 배경으로 등장한 오키나와의 환상적인 모습도 한몫했다. 한없이 파란 하늘과 그 하늘과 맞닿은 또 하나의 파란 바다가 이들의 슬픈 사랑을 감싼다. “보고파서 보고파서 그대 향한 그리움에 눈물이 주룩주룩...” 영화는 일본 가수 모리야마 요시코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1997년 노래를 모티브로 했다. 엔딩 크레디트에 원안을 제공한 노래가 흐른다.

<연애사진> Collage Of Our Life, 2003 


10.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Heavenly Forest, 2006     

그 여자 그 남자: 서툴기만 한 사랑으로 그 여자 시즈루(히로스에 료코/미야자키 아오이)를 떠나보낸 그 남자 마코토(마츠다 류헤이/타마키 히로시)는 그녀를 찾아 뉴욕으로 떠난다. 


추억: 일란성 쌍둥이 같은 작품이라고 하면 어떨까.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유명한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 ‘연애사진, 또 하나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치카와 타쿠지는 2003년 개봉한 히로스에 로쿄 주연의 영화 <연애사진> 각본을 바탕으로 ‘연애사진, 또 하나의 이야기’를 썼다. <연애사진>과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에서 비슷한 흔적들이 포착되는 건 이 때문. 공통점은 차고도 넘친다. 


1. 남녀 주인공 이름이 마코토와 시즈루 

2. 사진이라는 매개 

3. 평생을 남기는 첫 키스 

4. 남자가 여자를 찾아 뉴욕으로 떠난다 

5. 여주인공의 사진전이 열린다…


비교해보면 아마 더 많은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두 영화는 다른 세례로 존재한다. 남자의 로드무비식 모험담에 많은 부분 할애한 <연애사진>에 비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두 남녀의 엇갈린 러브스토리에 더 초점을 맞춘다. 취향에 따른 선택을 권장한다. 빛이 가득 찬 뿌연 화면, 감성을 적시는 말랑말랑한 대사, 서정적인 음악…어떤 선택이든 가을 감성에 적게 될 것이다.


11. <태양의 노래> Midnight Sun, 2006     

그 여자 그 남자: 나 홀로 버스킹이 유일한 취미인 그 여자 카오루(유이)+그녀가 남몰래 흠모하는 평범한 그 남자 코지(츠카모토 타카시). 이들은 음악으로 연결되지만, XP(색소성 건피증)를 앓는 카오루로 인해 같은 태양 아래 설 수 없다. 


추억: 또 불치병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독특한 상황이다. 햇빛에 노출되면 안 되는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병명을 앓는 주인공. 그로 인해 그녀의 삶은 야행성이니, 흡사 드라큘라의 슬픈 사랑 이야기 번외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한부 소녀의 삶을 예상 가능한 선에서 그렸지만 자극적으로 슬픔을 쥐어짜지는 않는다. 희극적인 상황을 통해 비극을 길러낼 줄 아는 연출이 있다. 실제 싱어송 라이터인 가수 유이를 내세운 청춘물인 만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음악이다. 유이가 직접 작사 작곡한 ‘굿바이 데이즈(Good-bye days)’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국내에서 해당 뮤지컬의 주인공은 소녀시대 태연이었다.


12. <내일의 기억> Memories Of Tomorrow, 2006     

  

그 남자 그 여자: 사회와 가정에서 모두 인정받았지만 알츠하이머 판정으로 삶이 흔들린 그 남자 사에키(와타나베 켄) +그런 남편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 여자 에미코(히구치 카나코)  


추억: 잊는 것과 잊혀지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슬플까. 여기 사랑하는 사람을 잊게 될까 두려운 남자와, 그 남자에게 잊혀질까 두려운 여자가 있다. 기억 유실을 소재로 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류의 영화다. <내일의 기억>이 기존 기억을 다루는 영화들과 차별점을 지녔다면 그것은 소재를 다루는 윤리적인 예의바름이다. 알츠하이머가 야기하는 문제를 단순한 사랑의 관점이 아니라, 일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영화가 단순한 최루성 멜로드라마가 아닌 인생 드라마로 읽히는 이유다.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들이 넘쳐나는 영화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치고 빠질 때를 정확히 짚어내는 영화는 슬픈 감정을 마음껏 쏟아내도록 하는 배려도 놓치지 않는다. 애써 담담한 척하던 사에키가 아내 앞에서 울부짖는 장면에선 울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앞선 작품들처럼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대중소설에 수여되는 ‘아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한 ‘오가와라 히로시’의 베스트셀러를 스크린에 옮겼다.


(다음매거진_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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