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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woorain Jan 04. 2022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시리즈의 배신인가 도약인가

‘새우깡’인 줄 알고 샀는데 봉지를 뜯어보니 아뿔싸, ‘매운 새우깡’이다. 비슷한 포장용지에 속았다. 값은 이미 지불했고 포장지도 뜯었으니 그냥 먹기로 하는데, 어쨌든 원했던 ‘새우깡’이 아니니 먹는 내내 성에 차지 않는 건 일견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매운 새우깡’에 의외로 손이 가요 손이 간다면?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를 논하면서 가수 ‘비’도 아니고 계속 ‘깡’ 타령을 하는 이유는 <퍼스트 에이전트>가 이 ‘매운 새우깡’ 같은 영화여서다. 


<퍼스트 에이전트>는 2015년 깜짝 흥행 대박을 일으킨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프리퀄이다. 독립 정보기관 킹스맨의 탄생 기원을 밝히려는 게 이번 편의 임무. 그러나 제목을 지우고 접한다면 한참 동안, 이 영화가 <킹스맨>과 연계된 작품임을 알아채기 힘들 것이다. 1편과 2편 <킹스맨: 골든 서클>(2017)의 주연배우 콜린 퍼스-태런 에저튼가 나오지 않아서만이 아니라, 영화가 품은 ‘결’과 ‘분위기’가 기존 시리즈와 완전히 다른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원제도 ‘Kingsman’이 아니라 ‘The King's Man’이다.


‘B급 병맛’은 덜고 진중함은 더하고 

주지하는바, <킹스맨> 시리즈 하면 자동 연상되는 게 ‘B급 병맛’이다. ‘저세상 텐션’이 매력이었던 <킹스맨> 본류에 입각하면, 재치와 유머를 덜어내고 진중함과 메시지를 강화한 <퍼스트 에이전트>는 시리즈 정체성을 이탈하는, 그러니까 변종 같은 녀석인 셈이다. 이 변화에는 아마도 2편 <골든 서클>의 실패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골든 서클>은 여러모로 전작의 달콤한 성공에 취해, 전작의 영광에 지나치게 기대다가, 도리어 식상해져 버린 결과물이었다. 


매튜 본은 3편을 만들면서 2편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듯, 기원으로 돌아가 영화 무드를 아예 새롭게 심었다. 1편과 중첩될 만한 것들은 제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꽉꽉 채워 넣었는데, 예상했던 맛이 아니므로 단골 손님들로부터 클레임을 받는 건 감수해야 할 부분. 이 변화를 시리즈의 ‘배신’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다음을 위한 도약’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만족도는 갈릴 듯하다. 


만약 ‘다음을 위한 도약’으로 받아들인다면 <퍼스트 에이전트>는 꽤 즐길만하다. 킹스맨의 기원을 찾는 과정에서 매튜 본이 중점을 둔 건, 역사다. 1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됐던 ‘사라예보 사건’ 배후에 불온한 음모 세력이 있었다는 거대한 ‘뻥’을 끌어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식으로 역사를 가공한다. 실제 있었던 사건에 픽션을 가미한 대체 역사물인 것이다.


역사와 역사 속 인물을 과감하게 재가공

이 과정에서 실존 인물들도 과감하게 응용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신임을 등에 업고 내정 간섭을 일삼았던 비선 실세 ‘수도승 라스푸틴(리스 이판)’. 뇌쇄적인 매력으로 유럽 전역을 홀렸던 네덜란드 출신의 스파이 ‘마타 하리(발레리 파흐너)’ 히틀러의 집권을 예언한 점성술사 ‘에릭 얀 하누센(다니엘 브륄)’ 등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이 <퍼스트 에이전트>에서는 빌런으로 활용된다. 역사 배경을 알고 보면 더 흥미롭게 다가올 지점이 많지만 ‘선 감상, 후 역사 공부’로 영화를 통해 역사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 나가는 B급 희열의 액션은 이번에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007 스타일의 클래식 액션과 <1917>(2019)을 보는 듯한 전장 한가운데에서의 절박한 신음 소리다. 다행히 매튜 본은 <킹스맨>이나 <킥애스: 영웅의 탄생>(2010)처럼 재기발랄함을 잘 뽑아내는 감독이지만, 그 반대편의 복고 스타일도 멋들어지게 만들줄 아는 연출자다. 그것을 증명했던 작품이 저물어가던 <엑스맨> 시리즈를 일등석으로 다시 끌어올렸던 (엑스맨 기원을 담은 프리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였다. 그러고 보니, <퍼스트 에이전트>는 <킹스맨>보다 <퍼스트 클래스>와 더 닮은 부분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의 ‘애끓는 부정(父情)’

전편에서 스승-제자 콤비였던 구도는 이번 편에서 아버지-아들로 바뀌었다. 관계 설정이 변한 만큼 갈등의 성질도 다르다. 조국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전쟁에 참전하고자 하는 아들 콘래드(해리스 디킨슨)와 그런 아들을 잃지 않으려 애간장 타는 아버지 올랜도 옥스퍼드 공작(랄프 파인스)의 들끓는 부정이 영화의 한 축을 중요하게 담당한다. 전쟁 속에서의 부자 관계가 조금 빤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예상을 지속해서 벗어나는 과감한 전개 앞에서 씻겨나간다. 아들 콘래드의 성장 서사로 바라본다면, 관람 도중 ‘헉 or 울컥’하는 감정을 만나게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는 매튜 본의 각오는 괜한 말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면들은 <퍼스트 에이전트>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시리즈 연속성과 너무 큰 간극을 펼쳐 보이니, 애초에 마음이 열리지 않을 수 있다. 오리지널 ‘새우깡’을 기대했을 팬들의 심정은 아마도 “배신이야, 배신!”일 테니까. 개인적으로는 랄프 파인즈의 변신이 꽤 흥미로웠는데, 이렇게 된 이상 영국 중년 배우들의 매력을 발굴하는 시리즈로 생명 연장의 꿈을 이어가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콜린 퍼스, 랄프 파인즈를 이을 킹스맨은 과연 누구?


('데일리임팩트'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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