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xsoul May 12. 2020

세 개의 인상

인상(20200117)

  고동색깔 웅장하게 생긴 문을 열기 전, 왜인지 지금 내 나이가 몇개더라 문득 떠올리고 싶었다. 나는 서른 아홉이었다. 학교라는 숨막히는 그 틀 속에서 꾸역꾸역 생존해냈던 기간과 내 스스로가 나를 찾아가며 개척해 나가야 했던 기간이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나는 지금 서른 아홉. 센터의 그 웅장한 문을 열어제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서로 받았는지 기억하지도 못할 명함을 주고받으며, 가식적으로 웃음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싫다. 그렇다고 해도 자본가도 아닌 내가 비관적인 가치관의 일관성을 현실생활에도 유지하는 것은 자살행위인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이곳에는 '그들중 하나’로 온 것은 아니니까. 조금 더 도도해도 되겠지? 글쎄,,,내 이런 꼬아비틀어진 비관적인 마음씨를 들키지만 않게 조심하고 노력하고 또 집중하자.  


  테이블에는 초록색 유리병안의 레드와인이 비치되어있다. 그리고 까져있지 않은 바나나가 바구니에 담겨있었고, 혹시 식사하고 오지 못한 참가자를 위한 은박지 포장된 김밥도 저 한켠에 준비되어 있었다. 와인과 김밥 조합이라,,,'창의적인 통합형 인재’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바나나를 보자니, 이십년 전 마트에서 홀로 장을 보며 물건별 시세를 파악하고 그 분위기에 친숙해지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타고난 생존력때문인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가다가도 세일상품이 진열된 마트를 만나면 뭔가 사놓아야겠다고 강박처럼 살던 그때. 난 세상 모든것이 비싸서 싫었다. 아무리 싸도 비쌌다. 더 짜증이나는건 일의자리. 바나나가 2252원? 이렇게 일의자리까지 가격이 써있을때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똑같은 바나나를 언제는 2522원으로, 3252원? 나날이 물가가 올랐는데도 얼마나 오른건지 난 판단할 수가 없었다. 만원 단위를 넘어가면 더욱 심해진다. 등뼈 한봉지에 18925원? 18900원도 얼마인지 알겠고 19000원도 얼마인지 알겠는데, 저렇게 일의자리까지 다써버리면 그게 도대체가 얼마인지 모르겠다. 합계가 예상한 금액보다 너무 높거나 자릿수가 계속줄어드는 통장잔고로 추후에 알 뿐이다. 일부러 계산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 왕창 사버리도록 이렇게 일의자리까지 써붙이는건가? 서럽고 싫었다. 누군가에겐 한낱 껌값이라할테지만, 경제적 독립이 빨랐던 나한텐 그것만큼 억울할 수가 없었다. 세상은 모두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 김밥으로, 삼각김밥으로, 컵라면으로 연명하다 어쩌다가 수중에 돈이 생겼을 때에도 세상의 농락에 놀아나기가 자존심상해서 그저 ‘싼 것’만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 싼 것들 마저 슬그머니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었다. 김밥은 천오백원이되고 이천삼백원이되고 삼천원이 넘어버린다. 삼각김밥은 거의 그대로지만 삼년을 그대로 둬도 썩지도않는 밥으로 만들어졌댄다. 세상은 나를 위하지 않는다. 이미 많이 속았는데도 불쌍하지도 않은지 계속 나를 속이려고만 들고 있다. 비단 음식 뿐이랴. 약한 사람으로 나를 빚으려 노력했던 세상의 흔적들이 지금 내눈에난 보인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보호할수 있었는데도 남에의해 보호받지 못해서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했었지. 학교에서 배운건 양성평등인데 미디어에서 배운건 보호 받아야만 가치있는 여자의 인생이라는 지랄맞은 판타지로 내 가치관이 오랜기간 오염되어있었다. 그렇게 형체도 없는 세상이라는 대상에게 신물이 났다. 도대체 내 월급 빼고 다올라버리면 내가 세상에 대한 마음을 열어, 못열어? 자꾸 이렇게 하니까 내가 더 비관주의자가 되어가는거잖아. 내가 이렇게 세상을 멸시하다가 사회부적응자되어서 이상한 종교단체라도 만들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그것은 나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잘못이야. 니가 이렇게 물가'인상' 시켜버리는데 내 월급은 인상 안되니까 어쩔수없잖아.

  

 지금에 와서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고 품위유지비용이랍시고 한끼에 삼만원짜리를 먹어주고 팁도 삼천원이나 얹어서 돈에 대한 아무런 감각이 없이 계산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가 더 중요해지니까 물가가 오르든 별 상관이 없어진다. 그래도 그땐 그랬지 라고 웃어넘기기는 싫다. 이렇게 지금처럼 돈이 별거아닌데 그때의 나를 많이 지치게 했던게 참 야속하다. 그리고 어쩔수없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지금 이곳에 올 수 있던 것마저도. 인간 이라는 신분은 똑같은데 권리가 다르네. 차라리 그때 지금같고 지금이 세상을 멸시한다면 적어도 비관주의자가 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까? 그래 역사에 만약이란 없으니까.    


적당히 고급져 보여서 구색맞추기 좋은 테이블 위의 레드와인을 봤다. 그러고, 옆에 있던 사이다를 열어서 컵에 부었다. 술이라면 눈앞에 남겨져 있는 꼴을 못 봤던 내가 눈앞에 와인을 두고도 손이 가지 않는게 새삼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다. 십년 전의 그날이 떠올랐다. 그 길고 긴 터널이 끝이 나긴 하는걸까. 나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쓸쓸한 삶을 살기 위해 정해져버린 것처럼 느껴졌을 때. 나는 더이상 이팔청춘이 아니었고, 이제 술을 마셔도 빨리 취하는게 체감되었을 때. 그날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늘의 별이 정말 많았다. 멈춰서서 가만히 바라보자니 눈물이 날뻔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혼잣말을 내뱉어버렸다. ‘미친, 개빡치네.’ 말하고도 놀랐다. 일단 내뱉고 왜 그말을 내뱉었는지 한번 따져보았다. 예뻐서 싫었다. 이 별이 빛나는 밤이 예쁘면 어쩔것인가. 그래봤자 잡을수도 없는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일건데. 그건 아마 내가 불쌍해져서일거다. 오래전부터 뭔가가 이상하지만 또 유능하다고 '바보천재' 소리를 들었던 나였지만, 특별하다고 특이하다고 그렇다고해도 나이는 들어가고 그걸 뭐 어찌할수도 없으니. 나는 그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100이아니면 늘 불안해 했다. 폰 배터리조차 30퍼센트나 남았음에도 늘 부족하다 불안해했다. 계획대로, 논리대로, 이론대로 해야만 정답과 가까이 사는 거라고 믿었던, 그래서 괴로운 삶의 나날이었다. 내가 기대하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 울적해 하면서도, 잠시라도 세상이 내맘대로 되는 순간이 와도 시시하고 재미없다고 어차피 만족하지 못하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상을 바라보며 좌절했다. 그리고 그날의 나는 그 지독한 완벽주의에 대한 도전을 위해 꺼져버린 폰을 충전하지 않고 어딘지도 모를 길고 긴 밤거리를 걸어다녔다. 주위의 모두가 행복속에 살고있거나 행복의 방향을 찾아서 열심히 달려갈때 그 즈음에, 내가 확실해진건 나는 행복하고싶지만, 나의 완벽주의는 그걸 방해할건데, 내 완벽주의가 주는 혜택들을 난 버릴수가 없다는 것. 나 하나쯤이야 행복하지 않다고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을거야. 그래서 나는 나의 답도없는 그 지독한 선천적 성향이 가져다주는 혜택으로 쉽게 얻을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 라고 맘을 굳혔다. 그 혜택에는 ‘일’이었겠지. 일에 빠지면, 바빠지면 적적함따위는 사치니까. 나 하나쯤이야 행복의 궤도에서 벗어나와도 될거야. 그렇게 하자 그게 나한테 편한거니까. 이런 비관적인 가치관이 모여 오늘 이곳에 나를 오게했지만 그다지 행복한 삶은 아니다. 나는 많은 것을 스스로 버렸고, 또 많은 것을 타의로 잃었다. 그래서 이런 오늘 같은 날도 그저 기쁘지만은 않다. 이런 이벤트가 없으면 없는대로 잘 흘러갔겠지만, 생긴다면 마땅히 벌어져야하는 일일뿐. '내가 가지고 싶던것은 아니었지만, 결코 가질수 없이 태어난 것들에 대한 대가' 정도.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나 예민했던 나는 누구보다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리고 경제적 독립이 빨랐던 나는 오르는 가격을 혐오하며 세상을 불신했다. ‘인상’은 내 비관성을 부추겼다.   

  나이 마흔이 되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보인다고들 한다. 사람은 쓰던 근육만 계속쓰기 때문에 얼굴 근육도 쓰던 감정에만 맞게 근육이 발달하니까. 그리고 어떻게 살지 결정해버린 그 때의 난, 내 평생의 ‘인상'을 결정한 셈이다. 

  과거따위는 어찌됐든 그런 과거를 거쳐와버린 서른아홉 현실의 나는 어쨌든 지금 이곳에 와있다. 명함타임이 끝났는지 가식적인 얼굴들은 가식인상 레벨을 낮춘 채로 모두 착석하고 식이 시작됐다. 첫 순서부터 사회자는 신이 났다. 첫 순서인 시상식의 수상자가 본인과 아주 친하다는 친한척 멘트를 팍팍 남기며 본인 인맥 자랑을 어필할 기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관같은 금색몇개 달고 있는,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인상의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씨의 입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직접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동한 발전에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올해의 과학기술 '인상'

                                                                                                                

작가의 이전글 착한옛것 그리고 나쁜새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