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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12. 2020

착한옛것 그리고 나쁜새것

이어폰 (20200110)


   ‘이어폰’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들고 선술집을 찾아 나선다. ‘심야식당’을 본 적은 없지만, 늘 그런 느낌의 동네 선술집을 찾고 나만의 아지트로 만들고 싶었다. 상상했던 장면은 ‘미드나잇 인 파리’의 그런 팬시하고 생기넘치는 젊은이 가득한 선술집. 혹은 아인슈타인의 단골까페인 스위스 취리히의 ‘Odeon’이나 카사노바, 괴테의 단골까페인 베네치아의 ‘플로리안 까페’ 처럼 희대의 걸작을 만든 그런 은은한 촛불 분위기가 나는 선술집. (여담이지만 특히최근 가본 오데온에선 아인슈타인이 그 자리에 앉아서 상대성이론따위를 고민했을거라고 생각하니 소름돋았고 왠지 그사람을 만날것만 같아 설렜다.) 그러나 내가 자란 일제시대 최대의 곡창지대인 군산은 시골이었다. ‘군산군’에서 ‘군산시’ 된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골에 가까웠고 여느 시골의 집주변처럼 주막같은 몇몇 술집을 제외하곤 젊은이가 분위기를 함께 마실만한 술집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나의 대학이었지만 대학도 시골 마을에 가까웠다. 게다가 캠퍼스 포함 길에서 50미터마다 지인을 만날만큼 작은 세계였기 때문에, 연애를 포함한 그런 '청승맞은 혼술' 같이 익명성을 보장받고싶은 행동들에는 위험지대였다.


  그리고 졸업반이 다 되어서야 도시의 맛을 볼 수 있었다. 휴학을 한 후 서울살이를 할때, 드디어 난 차가운 도시남녀 속에서 분위기 있는 한밤의 혼술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행히 집에서 10분 거리에 유일하게 새벽 2시까지 하는 바가 있었고 몇달 눈여겨보기만 하다가 마침내 타이밍이 맞는 날이 왔다. 그러나 도시의 술집은 비쌌다. 한잔만 먹고 나가자란 마음으로 위스키를 시키고 지금 나오는 노래 제목이 무어냐는 내 질문에 직원은 본인의 과거사를 짤막하게 덧붙여 대답해줬다. 좋아진 분위기 속에 직원은 '토닉워터좀 드릴까요' 해서 '좋아요,감사합니다' 하고 몇마디 더 오가며 난 마침내 나의 아지트를 개척 했다고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한잔에 만이천원이나 하는 위스키를 두잔이나 기분좋게 비우고 집에 왔다. 그러나 도시의 술집에는 낭만따위 없었다. 24000원이 찍혀있어야 하는 영수증엔, 3만원이 찍혀있었다. 분명 실수를 했을 거기에, 전화번호를 바로 찾아 전화를 했다. 아.,,, 토닉워터가 하나에 3천원이란다. 그때 깨달았다. 도시의 선술집은 그저 장삿속이며 나는 그저 호구 고객님 이라는것을.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고 베를린이라는 먼땅까지 와서 선술집 리서치를 다시 시작했다. 베를린은 하나의 도시지만 도시 안에 시골도 있고 도시도 있어서 바마다 분위기가 너무 달랐고 난 그 분위기들이 좋았다. 그렇게 나만의 아지트 선술집을 찾아 Zoo도 가보고, Kreuzberg도 가보고, Savignyplatz도 가보고 뒤적였다. 그러나 역시 나만의 선술집은 집주변이어야한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세웠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13분 이내, 구글평점 3.5-4.2, 구글 리뷰갯수 50-70개, 가격대 유로화 1개 즉, 싼곳이면 가산점. 음악공연 있으면 가산점. 만족하는 바는 두개 있었다. 조금 더 싼 곳이라고 구글지도에 표기된 곳을 먼저뚫어보기로했다.  

  걸어서 15분이었지만, 버스를 타면 도보 7분+버스 1분 총 8분이 걸린다. 탈 생각은 없었는데 우연히 도착한 버스를 탔다. 걸어서 8분을 걸릴 것을 버스타니까 1분도 채 안되어 도착했다…시골과 도시생각에 사로잡혀있던 나는 버스를 그 관점으로 한번 바라 봤다. 한때 이 ‘버스’는 도시만의 전유물인 신문물이었겠지. 걷는것이 교통수단의 전부였을 무렵, 전동기를 사용하는 버스는 최고의 신문물이었을 것이고 분명 환경을 더럽힌다고 ‘나쁜’버스를 반대하는 반대론자들도 무수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버스가 자가용이 당연해진 이 시대에선 ‘착한’ 옛것이 되었다. 새로운 것이 논란이 되는 순간, 한때 논란이 되기도했던, 그땐 새로웠던 것들은 ‘착한’ 것이 된다. 그럼 지금 논란이 되는 이 자가용들도 훗날 ‘착한' ‘옛것'이 되려나? 이들을 ‘착한' 옛것으로 만드는 그 훗날의 교통수단은 무엇이 될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내가찾은 바가 보였다. 오 예쁘다. 어둠이 깨어난 조용한 거주지역단지 밤안에서 홀로 주황빛으로 빛나고 있다. 오 입구에는 매주 목요일 저녁7시부터 라이브공연을 한다고하네. 좋구만. 안으로 들어가 바 자리에 앉아서 몇마디 공부한 독일어로,,그렇지만 틀린 문법으로 메뉴를 요청했다. 오 싸다. 맥주500이 3.3유! 여기는 서베를린인데 이가격에? 게다가 친절해. 내가 메뉴를 열심히 읽고 있으니, 처음보는 옆자리 아저씨가 플래시를 비춰준다. 오…! 내가바라던 그 선술집분위기가 맞다. 좋아. 나도 아인슈타인처럼 멋있게 사색하며 훗날 이 펍과 이 테이블을 의미롭게 만들겠어! 이미 술집안은 적당히 시끄럽고 조용했지만, 집중을 좀 하려고 이어폰을 꺼내려했다.

 

   난 세개의 이어폰을 가지고 있다. 아이폰 살때 받았던 아이팟. 이건 선이 너무 잘꼬이고 커널링도 아니고 음질도 그저 그래서 연구소 컴퓨터에 상비용으로 꽂혀있다. 디자인도 성능도 한물 간 구형이다. 그리고 선이 통통하게 포장되어 있어 잘 꼬이지 않는 밤말리 이어폰. 당시엔 이어폰 하나에 35000원이 비싸서 결제할때 죄책감도 느꼈는데, 사랑도변하고 우정도 변했던 지난 4년 동안 고장한번나지 않고 나를 지켜주고 있다. 거기다가 이건 저음강화 이어폰이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 갔을때 충동구매한 JBL블루투스 이어폰. 이제 헬스장을 다닐거니까 블루투스 이어폰이 필요할거라고 합리화하기는 했지만, 사실 한국에서 열에 아홉 사람들이 문신처럼 에어팟을 끼고 다니는 걸 보면서, 선 달린 내 밤말리 이어폰이 창피했었다…. 아이템으로 위화감을 느낀건 독일에선 느낀적이 없는 너무나 간만의 감정이었는데, 난 그것에 굴복하고 냅다 8만원을 질렀다. 그들과 똑같이 에어팟을 사용하는 ‘one of them’이 되기는 싫어서 얼마전 삼성전자로 합병 되어 프로모션중인 JBL로 결정했다. 거기다 이건 저음강화였다. 그렇게 충동적이지만 나름 합리적 소비로 구매한 블루투스이어폰을 운동할때는 잘 쓰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이어폰 선택지가 많아지다보니 외출하기 전마다 나는 어떤걸 들고갈지 고민을 해야한다. 아, 베를린에서는 내가 선달린 이어폰을 사용 하는 것이 의식되지 않고 그래서 고민이 된다. 새거 샀으니 새거끼면되지 왜 고민을 하냐고? 모든것은 장단점이 있다. 선달린 이어폰 가장 큰 장점은 충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고장 가능성이 적고 싸다. 아직 덜 발달된 기술로 3.5파이 선달린 이어폰 만을 요구하는 오디오 가이드 투어할때도 유용하다. 그리고 영어울렁증이 있는 나에게 최근에 찾은 기발한 장점은, 출퇴근길 선달린 이어폰을 꼈을때 혹시라도 만나는 동료들에게 ‘나 듣고있어요, 말걸지 마세요’라는 의사 전달이 꽤 확실하다는거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소수만 사용하기 때문에 내가 뭘 듣고있어도 말을 걸어서 불편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선달린 이어폰의 그 선은 귀부터 폰까지 길게이어져서 너무 잘보이기때문에 내가 남의말을 듣지 않아도 무례하지 않음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게 해준다. 가끔 출근길엔 아무것도 듣지 않아도 끼고 있을 때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달린 이어폰의 단점은? 꼬인 선 푸는데 스트레스가 확 올라온다. 그리고 위험하다. 위험한건 뭐냐면, 선이 길어서 어디에 걸릴때 귀 떨어질뻔했다는 위기의식 느낀적이 가끔씩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단점은 한국에서 못쓴다.  


  블루투스 이어폰의 장단점은 이와 정반대다. 선이 없어 간편하고 한국에서 쓸 수 있을만큼 까리하기는 하다. 이런 장점이 있지만 단점이 꽤 강력하다. 그것은 블루투스 이어폰은 배터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충전하는 번거로움 때문이 아니다. 폭.발.이 무섭다. 물론 테스트까지 완료한 상업적 완제품에 폭발사고가 날 확률은 매우 적겠지만, 전기 화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이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으로 폭발하는 장면이 눈에 그려진다. 배터리는 소모품이다. 배터리가 닳아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무한정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배터리 안에는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방이 있고 그 사이를 어떤 물질이 왔다갔다 하며 충전과 방전이 된다. 그런데 이물질 한 방안에서 다른방안으로 문으로 예쁘게 오가는 것이 아니라, 문을 못찾아 방에 못들어가고 출입문 옆 벽 한쪽에 쌓이는 친구들이 발생한다. 배터리를 오래사용할수록 방들어가는 친구들보다 벽으로 쌓이려는 친구들은 더 많아지고, 현상은 더 심해 진다. 한쪽 벽에서 고드름처럼 길게 쌓여 버려서, 절대 닿지 말아야 할 반대쪽 방에 닿아버려서 두 개의 방이 연결되어버리면? 그때 갤럭시 노트7처럼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내 귀에서 터져버린다면?

 

   한편 옛것이 되어버린 선 달린 이어폰도 한때 우리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나쁜 신문물이 었다는걸 생각해 보면 조금 느낌이 이상하다. 차가 오는것을 못들으니까 위험하니까 이어폰 쓰지 말아라, 귀 안좋아진다, 이어폰으로 듣지 말아라 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만들어낼만큼 논란을 몰고오는 새것이었는데, 어느새 블루투스이어폰에게 논란의 장인 ‘새것’ 자리를 내어주고 본인은 착한 ‘옛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 까리하지만 '나쁜 새것'인 블루투스 이어폰과 까리하지는 않지만 ‘착한 옛것’ 사이에서 누구를 데리고 나갈지 여전히 고민한다. 그리고 가끔은 머지 않아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한 옛것’으로 전락시키는 미래의 이어폰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그새 다 비워진 맥주잔을 보며 ‘한잔더?'의 갈등을 하지만, 이곳을 자주 올 것 같은 예감에 나중으로 미루기로 한다. 내가 찾은 이 선술집은 이미 논란의 여지가 없는 옛것(곳)이 되었고, 이곳과 대적할만한 ‘새것’은 나오지 않음에 안심하며 집으로 향한다. 제 아무리 신기술일지라도 내가 찾는 이 선술집의 감성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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