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주의자의 부동산입문

20250221

by sixsoul

월세주의자였던 이유:

1. 월세에 대한 심리적 장벽 제로 : 첫 자취를 렌트가 기본 거주방식인 외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난 월세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냥 당연한 거주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원래 한 달 살려면 이 정도 비용은 불가피하게 나가는구나 받아들인 지 오래였고 딱히 없어지는 돈이라거나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2. 내 성향 : ‘얼마든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이 내가 월세주의자가 됐던 가장 강력한 이유였다. 딱 3년 전 2022년 이맘때, 귀국하자마자 입사할 회사 근처에 월세방을 구했다. 직주근접이 좋은 건 당연하니까. 그런데, 그곳은 회사를 품은 빌라였고 집에서도 회사가 보였다. 주말에도 회사 속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동네의 외딴 빌라 원룸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멘털이 나가는 일들이 쌓이다 보니 난 그곳에서 약 9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1인가구 최다 지역 강남으로 그리고 또다시 월세방으로 오게 되었다. 대학 내내 기숙사에 살고, 외국에서도 거주지에 생활패턴을 잘 맞춰 별 불만 없이 살았던 내가 ‘동네가 맞지 않아서’ 살 수 없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멀어지고 비싸지는, 아무도 하지 않는 그런 선택을 하면서 나만 잘못된 선택을 하며 돈낭비하며 인생 잘못 사는 것 아닐까 고민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고 후회도 없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추진을 할 수 있던 이유는 내가 ‘월세’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음 월세세입자를 구하면 그만이기에 (물론 부동산비 아끼려고 직거래로 구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쉽게 이사했고, 월세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훌쩍 이사 가버려도 된다는 생각은 심리적으로 날 더 편하게 했다. 전세대출 이자보다 높은 월세금액은 자유를 보장하는 만큼의 비용이라고 믿었다.

3. 리스크 최소화: 전세사기는 드물지 않다. 내 가까운 주변에도 수차례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진다. 전세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백화점 신상도 아니고 월세사기도 신종사기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보증금을 줄이는 만큼 피해가 적은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내 돈 내고 렌트하는데 피해액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걱정을 해야 하는 게 어이가 없다), 사기가 판을 치는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월세가 내 돈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집 보러 다닌 현황:

길었던 학업기간만큼 비교적 직장생활을 늦게 시작한 내가 나랑은 영원히 무관할 거라고 생각했던 부동산 세상에 입문한 지 세 달 정도 되었다. 원데이클래스 같은 돈 내고 가는 임장을 취미 컨텐츠 삼아 한 번 가본 후(비싸다! 회당 3-5만 원), 그 이후로는 돈 안 내고 스스로 다니고 있다. 그냥 동네 마실 가는 느낌으로. 철산, 영통, 상현, 성복, 수지구청, 광교역 등등. 세상은 넓고 집은 많고 내 집은 없다는 현타를 느끼는 요즘, 현재까지 느낀 점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이는 지금의 내가 받아들인 주관적인 교훈이고, 아마 계속 변할 것이다.

1. 동네마다, 부동산 사장님마다 천차만별 : 동네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동네마다 정해진 암묵적인 룰 같은 것으로 작동(?)되며 그로 인해 형성된 분위기는 가보기 전까진 모른다. 부동산 안에서도 사장님들이 매물을 소개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이건 아마 전체 시장 상황, 매수자매도자 우위의 분위기와 매물 양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매물은 쌓이지만 가격이 높아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 그런지 처음 갔던 영통 근처에서는 그냥 한두 개 구경하려 했던 예상과 달리 한 단지 내의 같은 평형의 매물 10개 이상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같은 집이라도 상태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광교역 근처에서도 매물은 많았지만, 현 세입자가 거부하는 이슈 등등 때문에 내가 구매할 그 매물 자체를 보여준 게 아니라 그냥 집의 타입만 보여줬다. 그러니까, 내가 구매할 집을 보지도 않고 타입만 보고 살 지 말지 결정하라는 시스템인 것이다. 만 원짜리 티셔츠도 입어보고 살지 말지 결정하는데, 일생일대 최고 큰 금액의 상품을 구매하려는데 확인도 못하고 결정하라는 건 다시 생각해도 참신해..

2.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부동산 정책을 펼치려는 자들): 모순적인 정책이 많다. 한쪽에선 대출을 억제하려고 하고 한쪽에선 권장하려고 하고 한쪽에선 유치하려고 하고 한쪽에서는 막으려고 하고. 그리고 이런 정책들은 빠르고, 복잡한 방향으로 변한다. 이 모든 것을 신경 쓰고 시나리오를 쓰고 예측하려다가는 머리 터진다. 그리고 어차피 그런 정책들은 의도한 방향과는 다르게 벌어질 가능성이 아주 충분하다. 중간에 어떤 반대세력과 이벤트가 나타나서 판을 뒤엎을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내가 이 세상에 관심이 여태 없어서 그랬던 것이지, 이권을 두고 첨예한 갈등은 정치, 사회, 문화 영역을 넘어서 매일 벌어지고 있으며 이 규모와 빈도는 상상초월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게 되었다.

3. 정답이 정해진 시장: 코로나 이후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그리고 요즘은 정보의 홍수 시대다. 그래서 매수해야 할 공식은 정해져 있다. 대단지, 역세권, 초등학교를 품은, 학원가 많은, 입지 좋은, ‘아파트’를 전세 끼고 갭으로 일단 겟 해놓는다. 그리고 싼 전세방에 들어간다. 온라인 세상에서 이것은 공식이며 이미 정답지처럼 돌아다니는 것 같다. (우리 세대 사람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학구열로 이제는 죄다 부동산 공부하는 듯,,)그리고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가 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처음에 실제 거주 할 목적으로 구하고 다녔는데, 그 공식처럼 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계속 의심하게 된다. 저 공식에 해당하는 곳은 이미 사람들이 반응했고 이미 가능한 영역이 아닐 정도로 비싸졌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피로하다. 다시 또 공부에 경쟁에... 파이싸움.

4. 모든 복잡한 요소가 혼재된 이 세상.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철학! 누구는 월세가 좋다고 하고, 누군 그래도 전세가 낫다고, 누구는 실거주할 거면 아무 데나 가격 적당한 곳을 사라고, 누구는 갭을 끼고 입지 좋은 곳을 사라고, 누구는 환금성이 중요하다고, 누구는 역세권이 중요하다고, 누군 직주근접이 중요하다, 누구는 대형 상권이 있는 인프라가 중요하다고 한다. 각자 살아온 방식에 따라 제각각 말이 다르다. 그리고 대부분은 본인이 생각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저 모든 것들을 다 고려하면 너무 좋겠지만, 그런 것은 이미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다. 이렇게 수많은 조언과 정보를 수용하려다 보면 배스킨라빈스 31에서 최고의 아이스크림 고르는 장면이 비유적으로 떠오른다. 엄마는 외계인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배스킨라빈스에 가면 단 일 분 만에 사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나만의 기호나 선호도 없이 심지어는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31가지 맛 중 최고의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변 사람들이 최고라고 하는 것을 고르고나, 제일 잘 나가는 품절 직전의 상품을 고르면 만족감이 올 수는 있겠다만, 만약 그런 품절직전의 아이스크림만 가격이 두 배라면? 난 그렇게 주고 산 아이스크림에 만족할 것 같지는 않다.


여태까지의 결론은, 결국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내 기준에 만족스러운 결정을 하는 것이 최선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전한 입문자인 내가 이 바닥에서의 기준을 알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험이 더 필요한 단계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편견 없이 듣고, 많이 보고, 그것에서 내 심리적 트렌드 곡선이 그려질 때까지 나만의 데이터를 많이 쌓아야겠다는 것이다. 조급하지 않게 데이터에 기반한 선택을 한다면 최선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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