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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Jul 21. 2020

(화학) 박사과정 장점 합리화 뻘글

20200715

 토마토 소스가 생각보다 유통기한이 짧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스파게티 소스를 잘 사지 않았다. 한번 먹고 방치하고 곰팡이를 피우고 버리는게 죄스러웠기 때문에. 그런데 정말 가끔 토마토 파스타가 미친듯이 땡길 때가 있다. 청양고추를 송송송 썰어넣으면 모짜렐라 치즈를 통째로 넣어도 느끼하지 않게 깨끗이 비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난 이후로,,. 그래서 가끔 산다.


 그렇게 큰 마음을 먹고 마트에 갔건만, 영롱한 남색+주황빛 조합의 디자인들이 진열 된 Barilla 스파게티 코너 앞에서 나는 다시 또 아주 중요한 명제에 맞닥뜨린다. 고심하여 참인지 거짓인지 나는 밝혀야만 한다. 양자택일. 2인용 소스 1.64유로, 4인용 소스 1.99유로..   이러한 노골적 마케팅은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 아주 익숙하다. 맞다, 영화관 팝콘. 소형과 대형의 크기는 두 배 차이. 그런데 가격은 각 4500원과 5000원. 겨우 500원 차이였지. CGV 미소지기를 하며 그것들의 원가가 각각 250원과 500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대기업 마케팅의 졸렬함을 깨달았었지. 가격을 아주 높게 불리는 것까지는 좋아, 이윤 추구 이해해. 근데 열 배를 불려서 팔거라면, 소형은 2500원, 대형은 5000원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5백원 차이를 두고 소형을 4500원, 대형을 5000원으로 해버린다는 것은, 그냥 500원 차이밖에 안나니까 큰 거 사먹으라 이말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대형을 사면 거의 다 못먹고 버리고 가는 사람이 대다수였지만 치워주는 것도 우리가 해줄게, 그냥 '호갱님의 순간적 무지함으로 우리 마케팅에 넘어가서 5천원 주고 팝콘 남기면 버리고 가주세요.' 이 말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이 토마토 소스도 비슷한 마케팅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미 너희들의 속셈을 알고있다는 허세와 그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존심 vs 합리적인 소비로 먹거리 비용을 줄이겠다는 이성적 사고 사이에 끼어, 이 고작 3천원도 안하는 스파게티 소스 앞에서 고민한다. 나는 대세중의 대세 1인 가구이다. 4인용 소스를 산다면, 1인분 먹고 남긴 소스를 냉장고에 방치해 놓을텐데 정신없이 일주일만 지나가도 그것은 민들레 꽃같은 곰팡이가 몽글몽글 피울 것이다. 그러면 2인용을 사는게 낫겠어. 그런데 아무래도 크기가 두배인데, 0.35유로 (=대충 455원) 차이면 큰게 낫지 않으려나? 그렇게 결국 나는 또다시 대기업의 기발한 마케팅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파스타를 한 번 해 먹고 남은 3인분의 소스를 처리하기 위한 아이디어에 하루종일 머리를 굴려서 나온 결론, '피자도우부터 피자만들기'. 한 번 밖에 쓰지않고 보관중이던 중력분 밀가루를 드디어 사용할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도우부터 직접 만들 것이었다. 빵 반죽에는 계랑이 매우 중요하다고한다. 그러나 미니멀리스트인 나의 새로운 1인가구에는 이제 저울따위는 없지.. 그렇다고 기발한 '피자도우부터 피자만들기' 라는 즉흥적 아이디어를 매장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필요한 재료는,

밀가루 500g

뜨순물 300g

소금 11g

설탕 20g

드라이이스트 1.5g

올리브유 25g


그리고 내가 가진것은 200ml짜리 표기된 맥주잔. 


 그래. 나는 케미칼저울질 하고 열처리를 하여 물질을 만들어내는 화학 박사생이라구. 거라고 다를게 뭐야. 자존심이 있지! 

  나는 200ml의 맥주잔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피'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밀가루의 부피를 알아야하기 때문에, 밀가루의 밀도부터 찾았다. 아이러니하게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밀가루의 밀도'를 찾는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 밀도라는 표현보다는 '종이컵 한 컵의 밀가루 무게는 대략 100g 입니다.' 식으로 표현을 했기 때문에...(갑자기 '때문에'에 게슈탈트 붕괴현상 ㅠ).... 밀가루 밀도는 0.48g/ml, 1인분만 만들거니까 정량의 1/4하면 260ml의 밀가루를 쓰면되겠군그래. 올리브유의 밀도는 대충 0.9g/ml 밥숟가락 가득이 대충 물 10ml 니까 한가득 채우면되겠군그래. 

  그렇게 직업의 부심을 부렸고, 철저한 빠른 계획과 순탄한 진행으로 도우반죽--> 숙성--> 굽기까지 단지 35분만(숙성을 오래할수록 쫄깃하고맛있다고 하지만, 굶주림에 굶주린 나는 숙성 20분 컷)에 잔반처리 수제피자를 만들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반판만 먹으려했지만, 존맛이었으므로 한판을 완판했던 것이었다. 화학 박사과정 전공 만세 ><

계량성공신화, 바로 그 200ml 맥주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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