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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Sep 13. 2020

의사 vs ???

마취(20200911)


1. 오늘은 꽤 힘든 날이었다. 건너마을 안톤이 무식하게 술을 몇 사발 들이키고는 굳이 그 새벽에 밭의 흙을 좀 고른다고 삽질을 하다가 본인의 다리를 찍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술에 취해서 심각성도, 아픔도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출혈때문에 힘이 빠진 그는 그대로 흙밭에서 잠들어버린 것이다. 나의 인생 데이터베이스로 보았을때 이 환부는 이미 너무 많이 오염되어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안톤의 다리는 절단되어야 했다. 그러나 다리를 통째로 절단해본 적은 없던 나였기에, 실험대에 올려진 안톤은 불가피하게 죽고 말았다.

2. 역사적으로 무언가 차갑고 딱딱한 것에 찔리거나 크게 상처입은 사람들은 대개 끙끙 앓다가 환부가 썩는듯 하는 검정색깔을 띠며 며칠이 지나 죽고말았었다. 아직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니, 밝혀졌어도 한낱 이 작은 시골마을까지 그것이 전달 되기까지는 수 년 수십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적어도 죽음만은 막아야 하는 나의 생업 특성상, 나도 여느 의사들처럼 얼마전부터는 절단 수술을 시작했다. 물론 수술 때문에 죽는 사람들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사후 관리를 못하는 사람들. 절단한 부위는 아주 세심한 관리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 관리를 못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도 통상적으로 상처 부위가 썩게 놔두어서 죽는 확률보다는 아주 적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수술 중 쇼크로 인한 사망. 본인의 팔다리를 생으로 잘라내는 극심한 고통, 과다 출혈 등 수술 중에 일어나는 죽음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아주 신속하고 정확한 절단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 신속한 절단의 기술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 두번째 이유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도 가능하면 알리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입소문도 꽤 퍼졌고, 이 마을에서 나는 거의 유일한 절단 가능 의사가 되어서 이제서야 벌이가 꽤 괜찮아 졌는데, 나의 명성을 직접적으로 흡집이 날 수 있는 그런 사실을 왜 말하겠는가. 어차피 사람들은 내 능력부족인지 뭔지 알 방도가 없다.

3. 엘리자배스가 발가락을 절단하던 중 죽고말았다. 실톱으로 슬근슬근 오분 톱질하면 끝나는 가벼운 일이었는데, 그걸 못참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아 물론 절단 중에 갑자기 건너마을 의사양반이 찾아온 통에 내가 한시간 정도 자리를 비워버려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도 있지만, 고작 한시간 고통을 참지 못하고 죽어버리다니. 약해빠진 여편네같으니라구.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다음에 수술을 하려고 했는데 거부한 것은 엘리자베스 본인이었으니 자기의 화를 자기가 부른 것이지, 알게 뭐람. 이렇게 해서 내 수술 성공률이 조금 더 내려가버렸다. 그렇다 해도 자기들이 어쩔 것인가. 여기에서 절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오늘은 괜히 기분도 별로니 집에 가는 길에 제일로비싼 스카치 한 병 사다가 마셔야겠구만.

4. 요즘들어 '손님'이 예전만큼 많이 오지 않는다. 아니, 수술 상담만 할 뿐 수술 날짜를 잡거나 수술을 하러 오지는 않는다. 어제 줄리아의 손가락 절단까지 포함하면 이번 해 들어서 고작 다섯차례의 수술밖에 하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꼴인 셈이다. 작년에 사흘에 한 번 꼴로 수술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확연히 줄어든 것이 맞다. 요즘들어 사람들이 꽤 많이 신중해져서 다치는 일이 별로 없는 통인가. 그것은 아니다. 절단 때문에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수술의 악명이 높아져서 다들 그냥 참고 사는 것인가. 간만에 건넛마을 의사양반이 놀러왔다.

-거기 바스터 마을은 요즘 환자들이 많이 있는가?

-그럼 여전히 환자는 많지. 나 혼자 감당하기가 어찌나 힘든지 얼마전에는 젊은 새로운 의사양반을 영입해서 점점 더 우리 집 명성이 커지고 있는 중이라네. 새로운 의사를 많이 모아 크루를 만들어 아주 유명한 의사마을로 만들 작정이네. 닥터바스터마을, 어떤가??

-허허, 재미있군. 어쨌든 부럽군 그래. 우리 아스터 마을은 요즘 왜이렇게 환자가 없는지. 아주 건강하고 유복하게 잘들 사는 모양이야.

-설마 했는데, 자네는 아직도 모르고있었구만그래? 우리 의사들의 경쟁자가 누구인지 알고는 있는가? 다름아닌 백정일세. 그래, 자네 집에서 네 블럭 떨어진 저기 정육점 주인양반 파울로 말이오. 왜인지는 자네도 알고 있지않는가. 우리 마을 의사들도 그 문제로 아주 머리가 복잡했었지. 어떻게 하면 우리보다 힘도세고 일처리도 빠른 저 백정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이야. 근데 결론은 하나더구먼. 빠르고 정확한 절단이지 뭐.

5. 모든것이 납득이 됐다. 생사가 걸린 문제에 사람들은 수근수근 말들이 많았고 내가 집도하는 수술 중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소문 또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의사보다 백정 파울로가 절단에 더욱 베테랑이라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그를 뒷받침하는 사례 또한 아주 충분했다. 파울로의 친동생이 얼마전 다리한쪽을 잘라야하는 불운한 상황이었는데, 원체 돈이없는 집안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집도를 하게 되었다는 것. 유일한 의사인 내가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다리 절단을 그는 고작 4분만에 해낸 것이다. 물론 절단여부의 견해는 알아야 하기에 의사는 필요했고 그래서 나에게 상담문의는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상담은 나에게 받고, 절단은 더욱 신속하고 확실한 백정 파울로에게 받았던 모든 인과관계가 납득이 됐다.

6.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요새 매일 아침 시장으로 출근하다시피 와서 파울로의 정육점을 기웃거리는 나를 의식한 파울로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부쩍 많이 이 동네를 돌아다니시던데, 고기 필요하십니까? 싸게 드리겠습니다. 골라보시오. 돼지? 소? 오늘 들어온 신선한 칠면조도 있습니다.

-아,,, 저기그럼...그... 돼지고기 등뼈 부분 10키로만 주시오. 아 ..조각내지 말고 뼈 있는 통째로 주시오!

당황한 나머지 돼지고기를 사오긴 했는데, 너무 많이 샀다. 낸들 뭐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 봤어야 양이라도 대충 체감하지. 돼지등뼈를 양손에 들고 터덜터덜 병원까지 왔다. 그리고 한번 잘라보기로 했다. 열 조각, 다시 열 조각… 사 온 돼지의 반도 못되는 양을 고작 톱질 몇번 했을 뿐이데 힘에 부쳤다. 관두기로 한다.

간만에 한 톱질 때문에 온 근육통에 며칠간 어깨가 쑤시고 관절이 아팠다. 그러나 은근한 뿌듯함과 상쾌함이 느껴진 게 왠일인지 한 번만 더 톱질을 해 보기로한다.

-'음? 어제보다 꽤 잘되네?'

심지어 토막내는 속도가 어제보다 몇 배는 빨라진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운동이 주는 도파민에 중독되었다. 그 날 이후로 거의 매일 돼지 통뼈를 사러 파울로의 정육점에 들렀다. 가끔은, 그에게 직접 썰어달라고 부탁해서 그가 통뼈를 절단하는 기술을 어깨넘어 곁눈질로 배워오기도 했다. 그날 배운 파울로의 기술을 바로 그날 병원으로 와서 복습했다. 그렇게 독학으로 절단 기술을 연마하는 나날이 길어질수록, 아내와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내가 연습하고 남은 토막난 고기덩이들은 우리 식구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7. 연습은 끝났다. 나는 이제 절단 부문 의사의 대가로서 새로 거듭날 것이다. 그새 팔과 어깨 근육도 눈에 띄게 늘었다. 연습한 대로만 한다면 하루에 두명의 환자도 받을 수가 있을 듯 했다. 그간 연습을 핑계로 돈을 거의 벌지 못했고 돼지고기를 사는 데에 지출이 꽤 컸기 때문에 재정적인 상황 또한 기울어가고 있었다. 수술비용을 대폭 감소시켜 수술 환자를 대폭 늘려보자. 파울로에게 뺏긴 내 환자들을 다시 뺏어오고말겠어.

수술비용을 이전에 비해 반의 반으로 줄일 것이니 부디 많이 방문해주시라는 안내문을 작성하여 대문 앞에 붙이고 있는데, 아내 아멜리가 허둥지둥 다급하게 뛰어오며 나를 불렀다.

-큰일이예요. 아스터 우리동쪽구역 지주가 새로 바뀌는 통에 우리 식구들에게 당장 집을 비우라고 하는데요. 당신,,,, 우리 이제 어쩌면 좋아요. 지주가 우리에게 협박하기 위해 한시간 내로 마을에 방문한다고 했어요. 비우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우리집으로 들어섰다.

-아니, 선생님, 이곳이 선생님 댁이셨습니까? 고맙소 선생. 선생이 우리 가게 최고 상급의 단골 손님이 아니시오. 선생 덕분에 이렇게 내가 부자가 되어 여기 이 땅을 전부 사게 되었지뭡니까. 내 우리 옛정도 있고 하니 정없이 나가라고는 못하겠고 세만 다섯 배 올리는 것으로 해주겠소이다.

띠용... O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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