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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Apr 03. 2021

에그타르트 박사 학위를 하려면?

어떤 요리를 하고 레시피에 빗대거나 재료들을 가지고..(20210402)

"어떤 요리를 하고 그 레시피에 빗대거나 재료들을 가지고 혹은 요리 결과물을 두고 글 쓰기(20210402)"


    한국 갔을때 가져온 녹차가루가 남아돌아서 그걸 처리하기 위해 녹차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샀던 생크림우유를 처리하기 위해 만든 에그타르트. 대실패. 베이킹은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역시 주어진 룰대로 따르지 않고 새로운 모험을 하면 실패는 불가피한 것이구나. 시중에 파는 크로와상 생지로 반죽을 대체했기 때문에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는데,,,에그타르트의 필링이 가장 바닥으로 가고 빵 부분은 위쪽으로 모두 드러난 채로 완전히 위아래가 바뀐 모양이 나온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한동안 생각했다. 가장 설득력 있는 패인은 크로와상 반죽의 방향이었다. 크로와상은 특정 '결' 방향이 있는데, 나는 그걸 무시하고 판판한 시판 반죽을 맘대로 뭉치고 접어서 사용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결대로 부풀다보니 아래로 필링이 다 빠져버린 것 같았다. 문득 내가 이렇게 행동을 실천 하고, 실패를 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행위가 아주 익숙한 기분이다. 그렇다. 내가 하는 일과 똑같다. 평소 실험실에서 항상 있는 일이 그저 배경만 주방으로 옮겨 왔을 뿐이었다. 

   내 박사과정 연구 주제는 합성을 기본으로 한다. 추가적으로 합성한 그 물질을 연료전지, 배터리, 커패시터 등에 적용하는 것도 있지만, 메인은 항상 실험실에서 간단한 유기, 무기 물질을 사용해 더욱 고차원적인 '기능성 재료'를 합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어야 하는 동시에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한다. 이것은 마치 셰프가 매일 요리 연구를 하며 세상에는 없는 특별한 메뉴를 개발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용하는 재료는 기존에 이미 있고 어쩌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셰프는 그 흔한 것들로부터 더욱 새롭고 특별한 메뉴를 창조해낸다. 그런 점에서 실험, 특히 화학 실험 기반으로 하는 연구는 요리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실제로 특정 물질을 합성하는 실험 방법을 레시피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무게를 재고, 혼합하고, 열처리를 하고, 기다리고, 후처리를 하는 모든 과정이 많이 닮았다고 매 순간 나도 생각한다. 특히나 실험실에서의 필터링은 아날로그로 필터커피 내리는것과 생긴것부터 액션까지 정확하게 똑같기 때문에, 실험실 필터링 해야하는 날에는 아침에 수동으로 필터 커피 내리고 실험실가서 용액 필터 내리고의 반복이라 나는 그냥 '필터링의 날'이라고 지정한다. 아무튼 물질 합성과 요리는 프로세스 뿐만 아니라 기구까지 너무도 닮은 점이 많다. 

   실험을 통한 연구의 본질, 어쩌면 연구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자연을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인풋을 넣었을때 어떤 아웃풋이 나오는지 모든 사례를 알고 있다면, 역으로 어떤 아웃풋을 원할때 특정 인풋만 넣으면 되게끔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궁극적으로는 그런 그림을 원하는 것 같다.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인풋이라는 것은 '물질'에 대한 것일수도 가해주는 '조건'에 대한 것일수도 있고, 사실 둘 다 긴밀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내가 그저께 실패 한 에그타르트로 따져보자면, 실패 원인은 크게 초기 물질 자체 때문이거나, 진행한 방법에 문제가 때문이었거나 혹은 둘 다였거나 일수 있다. 물질이 문제일 경우는, 신선도가 떨어지는 우유, 계란을 사용했던 것, 내가 고른 시판 도우 브랜드가 별로였던 것 까지도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이다. 과정에 있었을 수 있는 문제는, 우유를 일부러 조금 빼고 넣었던 것, 도우의 결을 무시했던 것, 필링을 너무 약한 불로 끓였던 것, 오븐 온도를 조금 낮게 설정했던 것, 예열을 안하고 바로 열처리를 했던 것 등 세세한 공정들까지 아주 많다. 그래서 만약 '나는 에그타르트를 완전하게 컨트롤할 수 있어' 라고 말하려면, 모든 가능성이 있는 변형을 다 시도해 보고, 어떤 부분을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위에 나열한 경우만 해도 3*5=15개의 경우의 수가 나오는데 실제 경우의 수는 15가 아니다. 비교 할 우유의 브랜드 수* 계란 브랜드 수 *도우브랜드 수* 도우 결의 방향 별 수 *필링 끓이는 불 세기 조절 갯수* 등등,, 아무리 보수적으로 각 항목별 조건 두개씩만 잡아도 이미 250개가 넘는다. 만약 에그타르트를 위한 박사과정이 있다고 한다면, 이 모든 경우의 수들은 그 수만큼 각 개인의 박사 연구 주제가 될 수가 있다. 

   대학원 진학 고민 당시 참고했던, 학사 석사 박사를 비유하는 유명한 '파리학과 이야기'가 생각난다.[1] 수많은 곤충 중 파리가 흥미로워서 파리학과를 간 사람들은 파리를 공부한다. 곤충 중 파리를 파리학 개론부터 파리 앞다리론 뒷다리론을 배우는 학사, 파리 중에서도 파리 뒷다리 중에서도 관절상태가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 혹은 파리 뒷다리의 움직임과 몸통의 상관관계 등 조금 더 좁고깊게 파헤치는 석사, '파리 중에서도 파리 뒷다리. 뒷다리 중에서도 파리 뒷다리 발톱. 그 중에서도 그 발톱 성분이 파리 발톱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깨달은 박사. 다시 에그타르트로 치자면, '에그타르트에서 필링. 필링 중에서도 우유. 우유 중에서도 00목장에서 난 우유. 그 우유 멸균 처리 온도가 에그타르트 도우에 미치는 영향' 과 같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조건들은 모두 한결같이 같게 유지해야하며, 정확한 분석을 위해 비교 대상인 실험군을 준비하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직접 경험해보니,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현재 주제도 '수많은 원소 중 탄소를 연구하게 됐고, 탄소 중 나노구조 탄소, 그 중에서도 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애들, 그중에서도 질소까지 포함 되어있는 애들, 중에서도 citrazinic acid와 melamine이라는 특정 물질들로부터 얻어지는 기능성 탄소 물질이 이산화탄소와 물 흡착 그리고 수퍼커패시터, 배터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세상 세부적인 그 속에 있다. 물론 이보다 더욱 통찰력을 요하는 분야와 주제도 많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분야를 공부하는 옆자리 동료조차도 서로 이해 할 수 없는 아주 다른 세상에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 

   손으로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창조해내기를 좋아하는 내 기질 덕분에 나는 합성 실험을 기반으로 한 현재의 연구가 잘 맞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수한 변수 속에서 나름의 합리대로 분석하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실패로 인해 지칠 때가 많기도 하다. 물질 합성 특성상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나를 지치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모른다. 일단 빠르면 십여분 안에 늦어봤자 수 시간 안에 나는 또다시 내손으로 창조물을 생성해 낼 수 있다. 제 아무리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세상에 없던 신박한 구조의 에그타르트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패인 따위 깊게 생각 할 것 없이 뱃속으로 욱여넣으면 그만이다. 의무와 책임을 벗어난 나만의 실험실이 항상 대기중이라서 다행이다 : )



[1] ‘파리학과’ 전공의 학사, 석사, 박사, 교수의 차이점?  https://www.hankyung.com/thepen/lifeist/article/1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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