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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Apr 16. 2021

술쟁이, 단주를 시작하다,,,

착각 (20210416)

작년 9월, 그러니까 벌써 일곱달 정도 전이었다. 여전한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대중교통, 슈퍼마켓 이외에는 실내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을 시절이었다. 심지어 헬스장에서도 마스크는 아무도 쓰지 않았다. 소독제가 더 많이 비치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그전과 조금도 달라진게 없었다. (그때 그렇게 막살았기 때문에, 그 이후 여섯달간의 락다운을 현재까지 겪고 있는 것인가... ) 해는 여전히 길었고 날씨도 여전히 더웠고, 그녀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헬스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맥주를 사왔다. 독일 맥주를 물만큼 싼 가격에 먹는 것은 늘 축복이었지만 늘 고민이 있었다. 두병살까, 세병살까, 네병살까. 그녀는 모두 비워낼 자신은 있지만, 두병만해도 벌써 액체 1kg에 병무게까지 그 무거운걸 짊어지고 갈 자신이 없어서 항상 적정선 타협했다. 헬스장을 평일에는 화, 목 두번갔는데, 이말은 그녀가 맥주 두세병을 격일로 비워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한다. 그녀는 요즘처럼 술이 필수적이지는 않은 대학문화가 되기 직전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터라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 것이 뭐랄까,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지는 시기를 겪었다. 잘마시니까 좋고 좋아하니까 더마시는 그녀는 술과 아주 친했다. 술이 없는 그녀의 삶을 상상할수없고, 그녀에겐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다.
  2020년 9월 21일, 그녀의 열등감 버튼이 제대로 눌려 폭발해버리는 사건을 겪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와인 한 병을 한 자리에서 비웠다. 사실 그건 그리 큰 폭음은 아니었다. 도수를 감안하면 와인한병은 소주한병과 같다는 논리를 가진 그녀는 소주한병, 뭐 껌이지. 하며 자주 와인한병을 단숨에 비워내곤했다. 그러나 이 때 와인 한 병을 비운 그 다음날은 달랐다. 컨디션, 자신감, 자존감 등 삶을 유지하게하는 모든 긍정적 요소는 바닥을 뚫고 지하 몇층까지 내려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열등감은 해소되지 않았고, 몇날며칠 자괴감과 모멸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도 와인은 항상 곁에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그녀는 금주를 시작한다. 아니 극단적인걸 싫어하는 그녀였기에, '평일 혼술 절주'를 시작한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술을 접하고 더이상 술이 두렵지 않아진 것은, 진부하게도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그녀가 입학했던 대학의 신입생 오티 마지막날에는 로메(로스트메모리즈)라는 악명높은 비공식 스케줄이 있었다. 말그대로 기억을 잃어보자는 취지의 일종의 '친목도모'시간인데, 비공식이긴 해도 재학생들의 연례행사이기 때문에 학교측에서도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라고 응원하며 암묵적 허용이 되는, 꽤나 큰 행사였다. 무려 이제 갓 2학년씩이나 된 21살 선배들은 방에 걸어들어갈 생각 하지마라, 싱싱한 간 단단히 준비하고 와라, 하는 말들을 연발했고 그 말을 들은 몇몇 허세 신입생들은 소주를 벌써 네병까지 마셔봤다는둥, 소주맛은 이렇다는둥, 같잖은 영웅담 허세를 늘어놓았다. 그녀를 포함한 대다수 평범한 신입생들은 선배들과 처음 마주하는 설렘과 동시에 기억을 진짜 잃게할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로메 시간은 현실로 다가왔고, 그녀는 함께 앉게 된 선배들과 전형적인 자기 소개 이후에 다소 경직되긴했지만 의외로 재밌게 대화를 나누며 따라주시는 소주를 홀짝홀짝 받아먹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들은 "술 마실때 무조건 물을 많이 마셔. 그래야 안취해"가 기억이 났다. 컵이 없었기에 그녀는 옆에 굴러다니는 빈 소주병에 물을 받아왔다. 오른쪽 옆에 놓고 소주한잔받아마시고 물 한모금 마시고를 성실하게 반복했다. 그리고 그녀가 화장실에 간 그 짧은 시간동안, 한 선배는 내가 먹고있던 물병을 술인줄알고 따라마셨고 제대로 빡이 친 그 선배는 정색이란 정색은 다하며 주변 모든 선배들에에게 알리며 그녀에게 '술안먹고 혼자서 물따라마시는 건방진 신입생'프레임을 만들어줬다. 소주 네병을 마셔봤다는 그 허세남의 장렬한 전사로 순찰차가 오면서 친목은 커녕 욕만먹은 채 허무하고 강렬하게 그 자리는 파했다.
  당연하게도 신입생 몇 달간은 술자리의 연속이었다. 속해야하는 모든 모임에는 술자리가 있었고 3일에 한번 있는 술자리를 위해  개인 스케줄을 희생해야했다. (그러나 챙길애들은 알아서 다 잘챙겼더라..)  로메는 비공식이었고, 공식 개강총회 자리에서 그녀는 그때 받은 오해를 반드시 풀 거라고 다짐했다. 시작도 안한 대학생활을 갓 입학하자마자 꼬아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녀의 진심을 보일 기회를 주겠다는 한 배려심깊은(?)선배는 신입생모두에게 종이컵 소주잔 끝에 말린 부분을 펴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복종하듯 바로 그렇게 했고, 두 잔같은 한잔이 되어버린 소주잔을 들고 그녀는 비즈니스하듯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다니며 성실하게, 아주 성실하게 마셔댔다. 저번에는 오해가 있었다고, 이거보라고 나 이렇게 너희들 주는거 다 받아마신다고, 21살 난 선배들 앞에서 원샷하는 모습을  최선을 다해 보여드렸다.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기숙사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그것이 그녀의 처음 블랙아웃이었다.
  처음이 제일 어렵다고 했던가, 그렇게 술을 잘못배운 그녀는 이제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나서서 마셔제꼈고, 필름이 끊기지 않으면 술 마신 기분이 나지 않는다면서 확실하게 끊기도록 항상 많은 양을 마셔댔다. 기억이 없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즐겁게 놀았다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해가 뜨면 아침 먹고 귀가하는 것은 기본이고, 갑자기 생길 번개팟을 위해 그녀는 저녁 이후의 삶을 가급적 비워놓으려고 노력했다. 일이주에 한번씩 그녀는 기억을 잃었다. 술없는 모임은 불가능했다.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 모두가 그랬다. 그들은 어떤 이벤트의 뒤풀이매번했고 뒤풀이 뒤풀이 또한 했다. 모두가 통금없는 기숙사 생활 환경 덕분에, 모두 잘못 배운 술을 함께 모여 실천하고 복습하고 반복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본인과 같으니, 그녀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가 2020년까지 9월 24일까지 오게 됐던 것이다.


  술을 격일로 마신 것은 맞지만, 맥주 두세병은 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이틀에 한번씩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느낌 그 정도였다. 그녀는 지금 여전히 스무살의 음주 문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현재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수준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보통 사람 평균 이하로 마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알콜 의존증인가,,? 그녀는 안마셔야 한다면 언제든지 안 마실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굳이 당장 그럴 필요는 없었다. 언젠가는 안마시겠지 뭐,, 전형적인 중독자의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안마셔야 하는 언젠가는 절대 오지 않겠구나.... 그러니까, 죽을 병에 걸려서 무조건 마시면 안되지 않는 이상, 이것은 아무도 그녀에게 강제할 수 없는 자유이기 때문에 본인이 그렇게 하고자 하면 그렇게 계속 할 것이다.갑자기 누군가가 짠 나타나서 더이상 그렇게 술 마시지 말라고 말해주는 그 '누군가'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습관은 운명을 만들고, 당장 변화하지 않는다면 20년, 30년 후에 그녀를 나타내는 모습은 '매일 술에 절어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그녀가 그토록 혐오하던,,,,)  좋아하는 것이 여전히 훈장같은것이라는 것은, 애주가라는 프레임은 쿨한 것이라는 그녀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어린 날이 아닌 시기에 술과 가까운 것은 오히려 추함에 가까웠다. 그녀는 문득 미래가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졌. 심지어 열등감 버튼을 누른 사람은 영원히 건강하게 잘 살텐데, 그녀만 술 마시고 힘들고 건강도 시간도 계속 버리는 것이 굉장히 억울한 기분 들었다.  마시는 것이 취미가 되는 채로 매일 술에 찌들어있는 중년이 된 모습이 너무나 억울하고 끔했다. 밥벌이는 제대로 하려나,, 볼품없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큼 강렬하게 현재의 습관을 당장 고치게 하는 것도 없는 것일까, 그렇게 그녀는 곧장 음주 습관을 바꾸게 된 것이다.
  검색은 유튜브로 하는 신세대답게 그녀는 금주하는법, 절주하는 법에 관련한 동영상을 모조리 찾아봤다. 알콜 의존증이 일터에서 전혀 무리없고 겉으로 아무 문제없고 오히려 일을 잘하는 직장인여성들에게 많다는 사실, 이들은 습관적으로 매일 혼자 새벽,혹은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출근하는삶을 반복하는데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않아서 문제을 인식하는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는 사실 등 깨알잡지식도 알게되었다. 그녀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마트에서 처음으로 포도주스를 자발적으로 사서 와인잔에 따라마시는 것부터 했다. 그러다가 자꾸 주스 한 병을 다 비워버려서 의도치 않은 당충전이 많이 됐지만, 다시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나았다. 알콜이 없을거면 주스를 마시지 맛대가리 없는 무알콜맥주는 도대체가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 욕이란 욕은 다했던 그녀는 무알콜맥주도 처음 돈내고 사먹었다. 맥주맛과 아주 유사하게 무알콜 맥주를 만드는 연구에 투자했던 독일의 맥주 회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15일은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냈다. 이 프로젝트에 크게 성공한 사람이고 싶은데, 고작 3일밖에 안됐어, 15일밖에 안됐어, 일수를 세다가 어느덧 7개월차에 접어들은 그녀는 더이상 일수를 세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완벽하게 단주를 한 것은 아니다. 주말 중 하루, 혹은 함께마시는 것을 허용했었다보니 꾸준히 주말엔 드링킹을했고, 바쁜 친구를 억로 잡아다가 영상통화를 하자고 해놓고 같이마시는거니까 가능하다며 우길때도있었다. 신기한것은 그녀가 요즈음에는 주말도 굳이 마시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때가 많아진 것이다. 음주 다음날 머리가 탁한 상태가 되는 부정적 감정이 한 잔 더 마실때의 긍정적 삼정보다 강렬한듯하다. 그러나 아직 맥주를 부르는 무더운 날씨가 아니라서 견딜만 했던 것인지, 다시 더워져도 예전 그때로는 안 돌아갈 것인지는 조금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그려본 미래 속 그녀는 더이상 술과 있지 않다. 계속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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