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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01. 2021

입장 정리

Kundigung (20210430)

1. Y를 처음 만난 것은 전 직원 열 명 남짓으로 비교적 작았던 첫 직장에서였다. 아니 사실 그 전부터 Y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다. 결국 그바닥이 그바닥이기때문에 알긴 알았지만 겹치는 사람에게 전해들어서 이름과 얼굴, 어떤 직장에 어디 소속인지 딱 그정도였다. 아마 Y도 같은 방식으로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Y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는 사람들도 이미 여러 명 알고 있던 상태라 처음에는 별로 그 존재를 인지하지는 못했다. 인력 충원이었기 때문에 선택할 권한이 없이 Y와 같은 팀이 되어 같은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일 이야기를 하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그러다가 점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겹치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어서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썩 닮은 구석도 많았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Y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서도 많이 알리게 되었다. 강제하지 않은 부수적인 회식을 같이 만들어서 가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직장이라는게 그렇지 뭐. 매일 보는 사람들이랑 매일 일얘기하고 매일 잡담도 하고, 뻔한 레퍼토리를 경험담을 듣고, 뻔한 장소에서 회식도 하고.. .. 매일을 봤다. 그렇게 하루, 이틀, 세 달, 네 달..  점점 옆에서 함께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Y에게 다른사람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아닐거라고, 그럴리없다고 부정도 해봤다. 멀리서 오는 Y의 실루엣만 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경쓰지 않는 척하려 했지만, 곁눈질로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보았다. Y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숨겨있는지 파악하려고 했다. Y가 멀리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Y만 클로즈업 된 모습으로 보게 되었다. Y의 잔상이 계속 남았다. 하루를 마치고 자려고 누웠을때, Y의 모습이 떠오르는 날이 많아졌다. 그 날 말했던 말투, 웃는 타이밍, 찡그린 표정, 걸어가는 모습, 그날의 옷차림.. 내가 했던 행동과 말이 생각나서 이불을 발로 걷어찬다. 그때 이렇기 말을 했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보이면 안됐었는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은 Y로 가득 채워졌다.   


2. 친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것을 들은 친구에게 나는 새로운 스토리가 생길때마다 업데이트를 해주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묻고 또 물었다. 한 친구가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 못하면 다른 친구에게 찾아가서 조언을 구해댔다. 내가 티를 내는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일도 없다는듯 행동할까? 근데 그게 잘 안돼.. 내 복잡한 감정상태로 인해 당사자가 아닌 애꿎은 주변인들만 고통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 개인적 시간도 Y얘기를 하며 보낸 나는 더욱 Y를 신경썼고 Y를 자꾸 쳐다보게 됐다. 몰래 쳐다보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의식하는 자체로도 감정 소모는 점점 커져만갔다. 나는 점점 강렬해지는 감정에 조금 힘들어지고있었다. 이유가 있었을까? 글쎄,, 왜 하필 Y일까. 다른 직원들은 매일 봐도 그냥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데 왜 하필 이 사람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 원래 감정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혼자서만 전전긍긍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Y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혹시나 내가 이런 감정들을 느끼는 걸 들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Y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Y와 늘 붙어다니는 친구를 통해서 말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혼자만의 노력일 뿐이었다. Y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눈치 없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하고 질문을 했다. 여전히 우리는 매일 봐야했다. Y는 내 옆에서, 내 앞에서 조잘거리는데, 뭐라고 하는지 그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뿐, 나는 전혀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Y에게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할까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서로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정도 알고 있던 나는 그럴수도 없었다.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리면 일을 그르칠 것이고, 겹치는 사람에게까지 소문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 미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다.  끓어오르는 강렬한 감정을 되삼켜야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매일 봐야했다. 결국 내가 이직했던 그날까지..그로부터 벌써 4년이 지났다.   


3. 이직한 회사에서는 조심, 또 조심했다. 그런 과거 같은 일이 결코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리라. 다행히 약 서른 명 정도가 넘는 꽤 큰 이번 직장은 조금 더 개인화 된 분위기였다. 나는 가능하면 대화를 피했다. 특히나 같은 팀이 된 사람들과 가능하면 접점이 없도록 했다. 회식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극단적일 정도로 삼갔다. 맡은 프로젝트에만 집중하려고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역시나 감정은 조절 가능 대상이 아니었다. 방심했던 전혀 다른 곳에서 나는 결국 또다시 마주하고 말았다. J는 나와 거의 겹치는 동선이 없었다. 나보다 조금 늦게 이곳에 왔던 J를 볼 수 있는 곳은 전 직원이 돌아가며 각자의 프로젝트를 브리핑하는 전체 미팅 뿐이었다. 그 미팅에서 J의 발표를 들을 때, 나의 프로젝트와 유사한 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마 그때가 또다른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J와는 몇 번 대화했을 뿐이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상황이 그러했다. 그저 오며가며 만났을 뿐인데, 그런데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예전 Y에게 느낀 그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4. J에게 다른사람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아닐거라고, 그럴리없다고 부정도 해봤다. 멀리서 오는 J의 실루엣만 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경쓰지 않는 척하려 했지만, 곁눈질로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보았다. J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숨겨있는지 파악하려고 했다. J가 멀리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보아도 나는 J 한명의 잔상만을 계속 보게 되었다. 자려고 누웠을때, J의 모습이 떠오르는 날이 많아졌다. 그 날 J가 지나가던 장소 웃는 타이밍, 찡그린 표정, 걸어가는 모습, 그날의 옷차림.. J를 자꾸 쳐다보게 됐다. 몰래 쳐다보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의식하는 자체로도 감정 소모는 점점 커져만갔다. 나는 점점 강렬해지는 감정에 조금 힘들어지고있었다. 그러는 동시에 어떤 특정 이유로 J와 대화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함께 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그바람에 조금 더 자주 J를 보게 된 나는 나는 J가 심지어 나와 정말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혼자만의 속앓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더욱 괴로워져서 또다시 친구에게 모든 내 마음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나 명쾌하지 않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당사자라는 결론만 내릴 수 있을 뿐이었다.  


5. 점차 J가 나와 비슷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행동과 말투, 그리고 표정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J는 내가 J에게 하는 것과 정말 비슷하게 나를 대했다. 그 행동들은 서로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많이 다르게 나를 대하는 것도 명확하게 잘 드러났다.  그것은 다행인 일이었을까. 내 마음을 고백해도 될까.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우리가 같은 마음이라면, 그럼 고백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 한번 크게 용기내면 되는 일이잖아. 고백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용기 내보자. J도 같은 마음이라는 건 너무 자명하잖아. 그렇게 나는 결심을 했다.  


 J :"뭐라고요?"

나 : "J가 너무 싫다구요. J도 똑같이 저 싫어하잖아요. 다 알아요.  "

J : "아니, 저도 그쪽을 싫어하는 건 맞는데, 이렇게 대놓고 고백하니까 저도 당황스럽네요. "

나 : "그래서 뭐 어쩌자는거죠?"

J : "그건 제가 할 말 아닌가요?"

나 : "J를 볼때마다 개빡치는 기분들어서 진짜 못참겠어요.. J 볼때마다 그러는데, 저는 돌아버리겠다고요. 너무 강력해서 이 감정을 저는 꼭 해소해야겠어요"

J :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그쪽 보면 항상 제가 자연스럽지가 못해요. 뭐랄까 혐오의 감정이 들고 자꾸 의식하게 되서 뭔가 항상 불편하다구요. 우리 사이에는 진짜 뭔가가 있어. 썸띵.. 진짜 에너지소모 장난아니야. 기빨려.."

나 : "그러니까 입장 정리하자고 제가 용기내서 고백한거잖아요. 사족은 좀 그만 붙이시고"

J : "뭐, 차피 사랑이나 혐오나 강렬한 감정인건 똑같잖아요."

나 : "하고싶은 말이 뭐죠?"

J:"좋아해서 고백한 사람들은 좋아하는걸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이렇게 말하죠. 오늘부터 우리 1일이야."

나 :"그래서 하고싶은 말은 뭐죠?"

J: "감정은 결국 인정해줘야 해소가 된다는거잖아요. 우리가 서로를 혐오하는걸 인정하기로 하죠. 오늘부터 우리 혐오시작 1일해요."

나 :"뭐 그게 어쩌자는건데,,,,,그거 알아요? 제가 이래서 J를 진심 개싫어해요.....오늘부터 혐오1일이 뭐야대체,,아오 "


  그렇다. 이 모든 것은 누군가를 향한 너무나 싫어하는 감정으로 인해 괴로웠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저렇게 뭐 우리 오늘부터 혐오 1일이다, 라고 하는게 J여서 일단 반감부터 들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서 나를 괴롭힌다. 하루종일 생각나고, 괜히 잘보이기 위해 의식하게되고, 다른것들에 집중을 할 수 없다. 점점 깊어지는 그 감정이 도를 지나치면 아주 괴로운 상태가 된다. 그 짐을 좀 덜어내고자, 내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받고자 속마음을 고백을 한다. 강렬하기로는 뒤지지 않는 이 싫어하는 감정 또한 그런식으로 처리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싫어하는 감정은 당사자에게 고백할 수 없을까. 둘만의 문제고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 둘인데, 왜 남에게 말할수밖에 없었을까...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듯이 싫어하는 데에도 이유가 없는데, 전혀 내잘못이 아닌데말이다. 좋아하는 사이에서, 아니 한쪽만 좋아하는 사이에서 고백하는 행위는 관계를 껄끄럽게 만드는 아주 지독하게 불편한 행위이다. 그러나 양쪽 마음이 같다면, 그 둘은 연인으로서 관계를 시작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좋아하는 감정은 권태로움으로 남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다. 싫어하는 감정을 서로 인정한 후에 특별한 사이를 맺는다면, 그 싫어하는 감정도 결국엔 권태로워져서 더이상 싫어하지 않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됐다. 그렇게 '혐오하는 사이' 2일째가 되었다. 그리고 저기 J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현실 바탕 픽션 ! ㅎㅎ 좌우지간 고백은 함부로 하지 맙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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