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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May 08. 2021

빨래와 자존감

빨래 (20210507)

빨래 하니깐 생각났는데, 우리 대학교때 전부 다 기숙사살아서 저녁이나 밤이나 주말에 모임이 갑자기 생길때가 많았잖아. 술자리거나 번개 운동이거나 뭐 생일파티같은 기숙사 자체 모임도 있고. 근데 그런 이벤트가 생길때마다 그런애가 꼭있었어. 빨래 돌려 놨어서, 다 끝나고 가겠다고. 사소한거일 수 있는데 나는 그걸로 자존감이 높고 낮음을 판단했었어. 그러니까, 본인이 하고있는 일이 있고 아무리 어떤이벤트가 매력적이어도 매료되지 않고 자기 할일은 일단 마치고 하겠다 이거지. 자기만의 어떤 신념이 있달까. 무슨말인지 알겠어? 나는 내가 빨래를 돌려 놨어도 그게 세탁기안에서 찌들든 누가 빼놓든 일단 그 새로생긴 이벤트를 갑자기 우선순위로 놓았다는 말이지. 여기저기 휘둘린거지. 그래서 아무튼 나한테는 '아, 나 빨래때문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 너? 맞다. 그러고보니 너도 그런 자존감 높은 사람중 하나였어. 제 아무리 주변 세상이 무슨 난리를 피우든간에 본인 하던거는 개의치 않고 하는 그런 사람들인거지. 아 맞아. 내가 요즘 졸업논문 쓴다고 했었잖아. 엉, 내가 몇년동안 실험하고 연구하고 결론내고 한 것들을 스토리도 만들고 해서 이제 한 백오십페이지짜리 책으로 만드는거야. 아무도 안 보는 아주 비싼 라면 받침이 될 테지만 어쨌든 학위라는 걸 위해서는 그 생고생을 해내야한다는거야. 당연히 진짜 하기싫지. 쓰기 싫고 막막하고 뭔가 망할것 같고 그래서 자꾸 계속 미루게 되고,,, 쓸 생각만 하면 항상 답답하고 그래. 근데,  나 지금 오피스 같이 쓰는 독일애 하나도 나랑 같은 졸업 시기여서 걔도 쓰고 있거든? 걔를 보면서 항상 신기한게 미루는게 절대 없다? 본인이 주말에 쓰려고 마음먹으면 주말에 쓰는거고 오늘 쓰려면 그냥 오늘 쓰는거야. '하기싫다, 언제 다하냐' 이런 말은 한번도 안해.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같아. 그 애랑 예전에 그냥 할말없어서  mbti 성격유형 얘기를 꺼냈거든. 너의 성향은 뭐냐고 내가 먼저 물어봤어. 근데 굉장히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거야. 그런거 안 믿는다면서. 본인은 본인 자신이 잘 아니까 그런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그런건 하등 쓸모가 없다는거야. 그냥 할말없어서 꺼낸건데 강한 부정을 해서 조금 당황했지만, 걔 말에 따르면 질문에 따른 답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게 이미 자기 자신을 잘 알고있는거라는거지. '나는 00한 사람이다,' 라고 자기 자신을 알고있으니까 질문에 맞는 답도 선택도 할수있는거라고. 분류된 결과물은 필요가없다고. 그 얘기를 했던걸 생각하니까 뭔가 퍼즐이맞춰지는 느낌이었어. '나는 내가 아니깐 졸업논문도 쓰고싶으면 쓰는거고 다시 또 쓰고싶을 땐 쓸 수있는거다'… 아니 하고싶은대로 할수있다는거, 그니까 본인을 컨트롤하는거 진짜 이게 말이쉽지 어떻게 그게 그렇게 되는거냐고. 근데 또 생각해보니까, 표본은 몇 명 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독일인 중 그렇게 미루거나, 뭔가를 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응 그러니까, 독일인들은 정말 감정개입 없이 해야할 일을 군말없이 거침없이 그냥 하는거같아. 변명하는 것도 못봤고. 뭐지? 여기는 어릴 때 받는 교육에 뭐가 있는건가? 사실 잘 생각해보면 어떤 내가 해야할 무언가를 미루게되고, 하고싶어서 시작했는데 하기싫고 두려워지는 건 내가 상상속에 만들어놓은 어떤 이상에 도달하지 못할까봐 그런거잖아. 나는 독일이 철학으로 많이 유명해서 이상이 아주 잘 발달해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걸 보면 이들은 그저 실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뿐, 생각보다 오히려 더 현실에 충실한 것 같아. 비교하는 것도 잘 못봤어. 아니 사람이니까 비교는 하겠지만, 그냥 본인의 삶이 남으로 인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이 없는거같아. 그러니까 나한테 독일인 이미지는, '빨래 돌려 놨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내 빨래 다 끝날때까지 기다리겠노라' 하며 기다리는 그런 느낌이야. 그런 현실감을 얻는 기회비용으로 재미를 잃었을 뿐인가? ㅋㅋㅋ그래, 너 말이 맞다. 내가 아는 독일인 표본 수가 너무 작아서 무언가 결론 내리기는 무리라고 하는걸로 하자. 아무튼 그런 모습이 참, 업무수행할땐 좋을것같더라고. 뭐, 그 오피스 애가 그렇게 거침없이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동기부여가 좀 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띵딩딩딩딩딩 딩딩딩 딩딩딩딩딩, 딩딩딩딩딩딩 딩딩딩딩딩딩 딩딩 딩딩딩딩딩딩딩딩 딩딩딩딩딩딩딩딩딩 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 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딩~ 띠리리리리리! (송어, from 삼성세탁기, 파#도#솔#레#, 미라라도도라 미미미 시라솔파미 미라라도도라 미라솔파솔라 레미 미솔솔라솔파솔라 미라솔솔솔레시솔라 라솔파라솔시라미미 시솔라 라솔파파라솔시라미미미 시솔라~ 도미시도라파!)"  앗, 빨래 다됐나보다. 나 가봐야겠다. 끊자. 나중에 또 얘기해! 안녕 ~  


(수정된 결론 : 내 표본이 작은것이었다. 다른 표본을 들으니 독일인도 미루고 안하고 다 한다고 한다. 다만 모두공감하는 공통점은, 아주 당당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뻔뻔하게,,?) 변명하며, 눈치도 노노. 절대로 굴하지 않는다고한다... 남의 시선따위..! 부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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