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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Aug 21. 2021

시력에 대한 뻘글

부러움 (20210820)

초등학교 1학년,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안경을 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우리 반, 아니 우리 학년 친구들은 안경을 쓰기 시작한 애들을 부러워했다. 이제 막 물질과 사유에 대해 처음 발을 들인 어린 애들에게 안경이 훈장처럼 멋있게 보였던걸까. 아니면 뭔가 다른 친구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서? 아니면, 눈이 나빠진 것을 걱정해주며 안과에 함께 동행해주는 부모님의 관심이 마냥 좋아서 그랬을까. 꽤 많은 친구들은 본인도 안경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꽤 많이 노력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단 한가지, 텔레비전을 코앞에서 보는것 뿐이었지만. 사실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일시적으로 먼 거리가 안 보이거나 장시간 시청할 경우 블루라이트 등으로 눈이 피로해질 수는 있어도 텔레비전을 가까이서 본다고 눈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라고한다. 어쨌든 그들은 텔레비전 앞에서 눈에 피로도를 열심히 쌓았고, 그들의 노력은 현실이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안경을 쓰게 됐다. 고학년이 될 즈음에는 그렇게 반에서 반 이상이 안경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더이상 안경이 훈장이 아니고 오히려 귀찮음을 느꼈을때, 대부분의 그들은 후회했다. 나는 안경을 쓰는것이 전혀 부럽지가 않았는데, 그때부터 이미 물건에 부담을 느끼는 미니멀리즘적 사고를 가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그때 대세를 따르지 않은 것이 내가 가장 잘한 짓들 중 하나이다. 


‘시력’ 하면 항상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다. 대학때 밥먹으러 나가려고 잡은 택시의 택시기사님인데, 간혹가다 마주치는 손님한테 말걸기를 너무 좋아하는 그런 기사님이었다. 기사님은, 왜 우리 중년 세대는 안경쓴 사람들이 거의 없는데 젊은 사람들이 안경을 많이 쓰는 줄 아냐고 맥락도 없이 갑자기 질문을 하셨다. 어리고 맘 약했던 나 포함 우리들은 ‘텔레비전을 많이봐서? 가까이서 봐서?’ 라고 대답을 했지만,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오답일 걸 알았다는듯이 흡족해하며 틀렸다고 이제부터 답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기사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시각은 태어나고 14일동안 형성이 된다. 출생직후 14일 동안 시신경이 발달하고 형성되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좀처럼 어둠을 아이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아기는 매일같이 형광등 불빛에 노출되어있다. 밤이라도 어둠을 만들어주면 좋을텐데 새벽마다 자꾸 애가 울때마다 깨서 불키는게 귀찮아서 아예 밤새 불을 켜 놓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래서 아기의 시신경이 발달 하려다가도 불빛때문에 제대로 발달하지를 못하고, 그 결과 초등학교 즈음에 전부 안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본인 어린 시절에는 가난하고 형광등도 없기때문에 불을 켜고 싶어도 켤 수가 없던 시대였다. 그래서 신생아 시절 어둠에 노출이 잘 되었고, 중년의 나이까지 시력을 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시력을 위해 아기는 태어난지 14일간 어둠을 유지해 줘야하고, 만약 그게 어려우면 밤이라도 어둠을 잘 만들어줘야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흥미롭게 들으니 아저씨는 이미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 아쉬웠는지, 다음에 내 택시 타면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고, 3탄까지 있으니 기대하라고 하시며 우리를 보내주셨다. 한참 호기심 많은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과학적 근거없지만 일리는 있다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같이 택시를 탄 선배는 저 분 택시 세번째 탔는데 맨날 저러신다고. 2탄까지 들었는데 개소리라고. 그냥 한귀로 흘려보내라고 나에게 진심이 담긴 조언을 해주셨었다. 진실인지 아닌지 뭔지는 알수없지만, 시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기억이 나는 것을 보니 한귀로 흘려보내지는 못했나보다. 


눈 이야기를 하니, 요즘 내 눈 상태가 썩 유쾌하지는 않다는 것이 떠오른다. 눈이 침침해지는 기분이 자주 드는 것이, 영원할 줄 알았던 젊음이 갔고 이제는 노화가 한창이구나를 실감하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이런저런 따분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건강에 대한 주제로 화제 전환이 되면 너도나도 할 말이 많고 열정적이고 재미있어하고 진심이다. 그렇게 늘 기승전건강얘기로 끝이 난다. 맥주 효모가 탈모에 좋다, 치통에 불소가 효과가 있다, 오메가는 꼭 먹어야 한다, 유산균은 꼭 먹어야 한다,,,검증이 된 것인지 마케팅에 넘어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 몸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실험을 해 볼 수 밖에 없겠다. 어쨌든 한마음이 될 수 있는 공통주제가 있다는 것이 재밌지만, 그게 건강이라는 것은 웃픈 일이다. 

건강에 유난히 진심인 내 또래를 돌이켜보면 ‘아무도 내 노후를 챙겨주지 않으니 내가 미리 준비해야한다’ 는 생각은 비단 경제적 관점 뿐만이 아닌 듯하다. 아무도 내 건강을 챙겨주지 않을테니 미리부터 노력하는 젊은 층이 최근에 유난히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쁘지 않은 현상이지만, 수명은 길어졌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했다. 어쩌면 오히려 몸뚱아리를 오래오래 써야 하는데, 닳아버리면 교체를 할 수가 없으니 (아니,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교체도 가능하려나) 미리서부터 유지보수를 하며 아껴쓰는걸지도 모르겠다. 


‘40대에는 외모의 평준화, 50대에는 지능의 평준화, 60대에는 건강의 평준화가 온다.’

제 아무리 어릴 적 날아다녔다해도 40대가 되면 외모가 뛰어나봤자 거기에서 거기고, 50대가 되면 아무리 똑똑해 봤자 거기서 거기고, 60대가 되면 제 아무리 건강해봤자 거기서 거기다, 라는 말이다. 스타트업 인턴 시절 한 개발자분이 지나가는 말로 뱉은 말인데, 나는 이 말이 너무 강력하게 맞다고 공감해서 항상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젊은 나이때부터 건강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60대의 건강의 평준화는 이제 옛말이 되어 이 기간을 조금 더 늦출 수 있으려나,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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