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쓴 두 편의 엽편을 묶어 올립니다.
<지나가는>
담장 첫 줄의 벽돌을 셌다. 수직으로 32장, 수평으로 40장이었다. 올리다 만 담장이었다. 담을 다 쌓기 전 이 도시에 지진이 났다. 원래 자주 지진이 나는 동네였다. 지진은 내가 잠든 새벽에 도시를 지나갔다. 나는 아침 뉴스를 보고서야 지진이 났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강도 4.7의 제법 센 지진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그 정도 강도면 집안 물건이 떨어지고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집 안 물건들은 모두 말짱했다. 나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내게 지진은 찾아왔다가 그냥 사라진 셈이었다.
아파트 가운데에는 공원이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조깅을 하러 공원에 갔다. 공원에서도 사람들은 지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깅 트랙을 따라 돌며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릇이 깨졌어. 찬장 밖으로 전부 튀어나왔어. 소파에 앉아 있는데 집이 기우는 느낌이 났어, 처음에는 무너지는 줄 알고 비명을 질렀어. 우리 집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개가 밤새 짖었어, 그러다가 지진이 지나가던 새벽 3시에는 갑자기 조용해져서 그제야 잠들 수 있었어. 나는 창문을 모두 잠그고 잤는데, 깨어나 보니 활짝 열려있지 뭐야.
그러니까 지진을 느낀 사람들이 정말로 있는 것이었다. 뉴스를 봤을 때에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야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땅이 흔들렸는데도 알지 못하고, 어느 물건도 깨지지 않았다는 것이 마치 타지인, 도시의 외부인이 된 것처럼 여겨져 꺼림칙했다. 살면서 한 번도 도시를 살갑게 여긴 적이 없었는데도 그랬다.
조깅 트랙을 절반쯤 돌면 짓다 만 화장실이 나왔다. 주변에 낮은 담을 두르고 3개짜리 좁은 칸을 나눈 화장실이었다. 내가 담벼락의 벽돌을 센 곳도 바로 여기였다. 벽돌은 수직으로 32장, 수평으로 40장이었다. 형식상의 담치고도 높이가 상당히 낮았다. 트랙을 따라 조금 더 움직이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담은 절반이 무너져 있었다. 분명히 어젯밤 지진 때문일 것이다. 짓다 만 약한 담이라 어제의 지진에도 무너졌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담벼락이 내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진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일종의 소속감이었다. 발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 속도보다 빠르게 트랙을 한 바퀴 더 돌면서 여유로운 기분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자주 지진이 나던가? 아니, 이것도 시기가 있대. 봄에는 더 자주 지진이 일어난대. 왜? 그건 나도 몰라. 마치 북극의 얼음처럼 땅이 녹으면서 부딪쳐서 그러는 건 아닐까. 멍청아, 지진은 땅 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나도 모른 댔잖아.
땅이 녹아 부딪친다는 상상이 꽤 마음에 들었다. 바닥이 얼어붙은 바다처럼 부딪치고 쪼개지며 도시가 그 위에서 배처럼 출렁이는 모습을 생각했다. 트랙 위를 돌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배를 탄 선원이었다. 우리는 같은 도시인이고 같은 지진을 겪었으니까. 매해 봄마다 도시를 찾아오는 지진은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다고 아침 뉴스에서 보았다. 그러면 우리는 같은 지진을 여러 번 맞이하다 어느 봄엔가 마침내는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진에 익숙해진 도시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무너지는 봄까지 똑같이 트랙을 돌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릇이 깨지고 찬장이 열리고 소파가 기울고 개가 짖고 잠근 창문이 모두 열려도 도시를 떠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지면이 흔들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같을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텔레비전을 켰다. 아무 프로그램이나 틀어두고 인터넷을 켜 도시 이름과 지진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의 제목들만 골라 읽으며 스크롤을 내리다가, 어느 한 기사에서 멈추었다. 도시의 공원에 대한 기사였다. 내가 멈춘 까닭은 물론 화장실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기사는 이런 내용이었다.
……시공사측은 B시의 지진 강도를 고려할 때 최근 증축 중인 화장실과 공원관리센터, 휴게실의 내진 설계가 충분하지 않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보였습니다. 공사는 오는 6월부터 재개될 예정이며……
아파트의 공원은 지을 때부터 생태도시니 도시 안의 생태계 조성이니 하며 유명해진 공원이었다. 나는 발가락을 꽉 오므리고 기사를 다시 읽었다. 여러 번 읽어도 지진 때문에 담이 무너져 공사를 멈추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 담은 공사 중단으로 처음부터 쌓지 않은 것이었다. 지진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순식간에 또 겁을 먹었다. 도시에 3년을 살았지만 한 해도 지진을 똑바로 느낀 적이 없었다.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 매해 봄마다 도시는 흔들릴 것이다. 사람들은 침몰을 기다리며 모두 분주히 깨진 접시를 쓸고 찬장에 테이프를 붙이고 창문을 잠그지만,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부서지지 않은 집을 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시가 무너지는 날이 와도 이곳의 사람들은 의연하게 침몰할 것이다. 반면 나는 자다가 어느 결에 흔들림을 느끼고 깨어나 그릇이 깨지지 않았는지, 찬장이 열리지 않았는지, 또 개가 짖거나 창문이 열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도로 잠에 들 것이다. 내가 잠든 사이 도시는 무너지고 지진은 지나갈 것이 분명했다. 다음 날 뉴스에 지진의 강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모두 빠져 죽은 도시에서 트랙을 돌 것이다. 마치 타지인처럼, 도시의 배신자처럼.
<얼룩 손가락의 유래>
K의 초등학생 시절 별명은 얼룩이였다. K의 손가락에 크게 난 화상 흉터 때문이었다. 이 흉터는 손가락 세 마디 전체를 덮고 있었으며, 무엇도 연상시키지 않는, 얼룩이라고 부를 수밖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K의 흉터가 무슨 연유로 생겼는지 아는 아이는 없었다. 얼룩이와 놀고 듣고 싶어 하는 아이가 없었던 탓이었다. K는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K의 동네에서는 같은 초등학교의 아이들 대부분이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K의 별명은 얼룩이였다. 여전히 흉터의 유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K의 동창들은 후일, K가 교도소에서 쓴 자서전을 읽고 나서야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K는 서른한 살에 여중생을 살해해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 자서전은 나는 용서 받지는 못하더라도 동정 받을 이유는 있는 사람이다, 하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1장부터 4장까지 내내 K가 저지른 살인이 누구 때문이었는지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K는 끝까지 자신을 부분적 피해자라고 불렀다. 자신의 살인은 각각 인생에서 가해자 역할을 했던 몇몇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자서전의 각 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장, 개구리 살인 : K의 목을 조른 아버지 탓.
2장, 얼룩 손가락의 유래 : K를 얼룩이라고 놀려댄 초, 중학교 동창들 탓.
3장, 끝과 시작 : K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았던 동네 주민들 탓.
4장, 신의 천국, 우리들의 천국 : 마지막 변명.
얼룩에 대한 이야기는 2장, 얼룩 손가락의 유래에서 등장한다. 이 장은 또한 K가 여중생 살해에 대한 계획을 세세하게 늘어놓은 장이기도 했다. K는 죽일 여중생을 고르고, 범죄를 계획하고, 장소를 물색하는 와중에 틈틈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의 동창들을 떠올렸다. K의 생각에 그가 하필이면 여중생에게 집착하게 된 까닭은 중학교 때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이었다. K는 당시 짝꿍이던 여학생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 내용을 자세히 적었다.
‘Y는 책상 사이에 A4 용지를 끼웠다. 그것이 파티션이었다.
-넘어오면 죽을 줄 알아.
나는 소심해서 싫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실수로 교과서를 펼치다가 손이 Y의 책상으로 넘어갔다. Y는 당장 심이 얇은 펜을 들고 내 손가락을 찔렀다. 얼룩 진 두 번째 손가락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여중생을 찌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K는 또 Y가 다섯 개나 되는 손가락 중 하필이면 얼룩 손가락을 고른 것은 고의가 아니었을까 하고 회고했다. 얼룩 손가락은 이따금은 K가 보기에도 징그러웠던 것이다. Y가 순간적인 역겨움에 그 손가락을 골랐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K는 그 흉터를 개구리를 죽이면서 얻었다. 1장, 개구리 살인에 등장하는 개구리였다. 그럼에도 흉터와 개구리의 장을 나누어 책을 편성한 까닭은 흉터를 남긴 개구리가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K의 아버지가 직접 잡아온 개구리였다. 어릴 적 K는 뒤에 논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K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논에 가서 개구리와 올챙이, 논의 벌레들을 잡아오고는 했다. 그는 욕조에 잡아온 것들을 집어넣고 K에게 우리가 이걸 키우자 꾸나, 네가 원하던 애완동물이야, 하고 말했다. K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잡아온 개구리는 죽이지 않았는데, 그것이 애완동물이라던 아버지의 말을 존중해서였다.
K가 아버지의 개구리를 죽인 것은 7살의 어느 겨울이었다. K의 아버지는 그날도 술에 취해서 개구리를 잡아 왔다. K는 텔레비전으로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욕조에 개구리를 풀어놓던 아버지가 무슨 일인지 K를 불렀다.
‘아버지는 화가 나 계셨다. 하긴, 늘 화를 내는 분이셨다.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버지가 소리쳤다.
-K, 이게 뭐냐? 내가 욕조에서 씻고 나면 반드시 하수구 청소를 하랬지? 내가 네 시다바리야? 네 털이나 때를 내가 치워야 해?
나는 겁에 질려서 아버지에게 사정했다. 내일 빼낼 테니 오늘은 용서해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강경하셨다.
-당장 치워.’
K는 개구리가 있는 욕조 안으로 들어가 하수구를 청소했다. K의 아버지는 그 사이에 텔레비전을 차지하고 축구를 보다가 잠들었다. K가 개구리를 죽인 것은 하수구를 깨끗이 닦은 다음이었다. 화장실에는 늘 K의 아버지가 쓰는 재떨이와 라이터가 있었다. K는 재떨이로 개구리를 내려친 다음, 라이터로 천천히 불태웠다. K의 손가락도 함께 탔지만 K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라이터의 불을 끈 다음에야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개구리는 변기에 쓸려 보내기에는 너무 컸다. K는 개구리를 베란다 창문으로 던졌다. 창문 아래는 곧장 논이었다.
이튿날 K는 아버지에게 라면을 끓이려다 손가락을 다쳤다고 거짓말을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K의 말을 믿었다. 병원에서는 화상 흉터를 없애는 시술을 추천했지만 K의 아버지는 손가락쯤은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얼굴도 아니고 주먹만 쥐면 보이지도 않을 위치라는 것이었다. K는 그렇다고, 시술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시술을 하면 화상이 라이터 때문임이 밝혀질까 봐, 그러면 아버지가 개구리에 대해 알게 될까봐 겁이 나서였다. 바로 이것이 얼룩 손가락의 유래였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K는 그 시술을 받았더라면, 혹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들이 K의 손가락을 놀리지 않았더라면 중학생을 죽일 일은 없었을 거라고 적었다. 이어지는 3장, 4장에서도 얼룩 손가락은 꾸준히 등장했다.
‘주유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사장은 내 손가락을 보고 불에 부주의한 사람은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내 성격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혐오스러워서 상대하기 싫다는 눈길로 손가락을 보았다. 이런 일이 매 면접마다 일어났다. 누구도 얼룩을 가지고 있는 내게 자리를 주고 싶지 않아했다.’
‘그 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지 않겠다. 다만, 그 애도 내 손가락을 알아보았다. 그 애는 조심스럽게 나를 지나쳐가면서 내 얼굴이나 신발이 아니라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이곳에서 주님을 만나 내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손가락에 내린 저주에도 어떤 까닭이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용서 받았으며, 또한 얼룩을 만든 아버지와 얼룩을 두려워한 사람들을 용서했다.’
훗날, K가 이 자서전으로 유명해진 뒤에, 직접 교도소까지 가서 인터뷰한 기자가 그렇지만 그 여중생은 K의 동창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심지어 K가 살던 도시의 아이도 아니지 않느냐고, K의 과거와 그 여중생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 고리도 없는 게 아니냐고, 정말로 모든 일이 얼룩 손가락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느냐고 질문했을 때, K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개구리도 남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었는걸요. 저까지 합치면 관련 없는 피해자가 셋입니다. 그러니 이게 얼룩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대체 뭣 때문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