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하라, 나는 반드시 있었던 일만을 글로 남기겠다. 터무니없어 보일지언정 이것들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라이카가 죽었다.
흰돌은 라이카를 따른다.
미확인 비행물체가 나타났다.
마침내!
***
흰돌은 이름처럼 하얀 개였다. 눈이 동그랬고 온 몸이 보드라웠다. 흰돌은 나이가 아주 어릴 때 펫샵으로 팔려왔다. 그때 몸무게는 겨우 400g이었다. 흰돌은 자신을 낳은 모견(母犬)만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그는 ‘공장’에서 태어난 개였다.
희는 동물권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흰돌을 데려온 이유는 길거리에서 보이던 어떤 말티즈 때문이었다. 8시가 되면 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집 앞 도로를 지났는데 그때마다 헤드셋을 끼고 말티즈를 산책 시키는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비가 오거나 햇볕이 쨍쨍한 날에도 어김없이 산책을 했다. 말티즈는 사랑스러웠고 남자는 여유로워보였다. 희는 남자와 마주칠 때마다 말티즈에게 말을 건네는 상상을 했지만, 한 번도 실행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왠지 몹시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희가 주치의에게 남자의 이야기를 했더니, 주치의는 희도 강아지를 키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규칙적으로 산책을 시키고 돌보다 보면 정이 쌓이고 그것이 사랑으로 변하고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이 가벼워지며, 희의 우울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일종의 펫 테라피를 제의한 것이다.
희는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희의 생각에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앓고 있을만한 우울증이었다. (그래서 희는 자신의 병 앞에 늘 가벼운, 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S시는 공원도 없었고 아파트들은 따개비처럼 이곳저곳에 붙어 있었다. 수시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거나 폭행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런 죽음과 폭력은 멀리 있지 않았다. 희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 앞에서도 어느 날 밤 취객 둘이 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말싸움을 하다가, 그 다음에는 서로 어깨를 밀치고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다가, 마지막에는 한 명이 벽돌로 다른 한 명의 머리를 때리고 도주했다. 맞은 사람은 피를 흘리면서도 도망친 사람을 따라서 비틀비틀 뛰어갔다. 희가 신고했지만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희가 바랐던 것은 그 말티즈 같은 모습이었다. 매일 산책을 하고 가볍게 통통 뛰며 애교가 많은 개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흰돌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개였다. 산책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희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분명 실망했을 텐데 어느 시점부턴가는 상관없어졌다. 흰돌이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품에 넣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타인에게 애교가 없더라도 희에게는 꼬리를 쳤으므로 괜찮았다. 무엇보다 희는 이제 그 말티즈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 흰돌을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그 남자와 마주쳤다. 말티즈는 흰돌을 보자 꼬리를 붕붕 휘두르며 달려왔다. 흰돌은 기겁을 해선 희의 다리 뒤로 숨어버렸다.
안녕? 희가 말했다. 너 참 씩씩하구나.
남자가 웃었다.
밤톨아, 친구가 무섭대.
밤톨.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희는 안아달라고 조르는 흰돌을 품에 안았다.
얘 이름은 흰돌이에요.
남자는 흰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희는 흰돌의 사진을 올리는 SNS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닌 희의 계정에는 항상 흔들린 흰돌, 누운 흰돌, 먹는 흰돌, 자는 흰돌이 올라왔다. 흰돌이 대사견(大使犬)으로 뽑힌 것도 그 계정 덕분이었다.
사진 속의 흰돌은 무해해 보였다. 다 큰 흰돌의 몸무게는 2.8kg이었다. 그렇게 작고 희고 귀여운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
미확인 비행 물체가 나타났다. 흰돌이 대사견으로 뽑히기 일주일 전의 이야기이다. 비행접시가 나타나리라는 조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미스터리 써클이 생기지도, 바닥이 없는 지하 동굴이 생기지도 않았고, 빅풋도 평소처럼 조용했다.
비행접시는 소리 없이 뉴욕 상공에 나타났다. 희는 CNN 보도를 통해 그 장면을 보았다. 거대한 반구의 물체가 하늘에 드리워진다. 아래쪽의 표면은 흡사 거울처럼 반들반들하다. 사람들의 머리통이 비행접시의 밑바닥에 비친다. 비행접시는 둥근 어항 같았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서 사방으로 도망을 쳤다. 희가 비현실적인 광경에 넋을 놓고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흰돌은 자신의 빨간 쿠션에서 몸을 말고 깊게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흰돌이 중책을 맞게 될 것을 알지 못했다. 희도 몰랐고 흰돌도 몰랐다. 희는 비행접시가 나타난 날에도 SNS에 흰돌의 사진을 올렸다. 뉴스를 보며 잠든 흰돌의 모습이었다.
평화로웠다.
일은 극비리에 진행 됐다. 처음에는 해시태그에 ‘강아지’를 단 계정 모두가 물색 대상이었다. 우선은 너무 큰 개들이 대사견 후보에서 탈락했다.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음으로는 몸집이 가벼운 개들 중에서 나이가 어린 개들이 제외됐다. 성숙하지 못한 이야기를 할까 봐서였다.
그들은 적당히 늙었고 아주 조그맣고 무해한 개를 원했다.
흰돌은 9살이었고 2.8kg이었으며 누가 보아도 무해했다.
흰돌이 최종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접시가 나타난 날 흰돌이 몸을 말고 빨간 쿠션 속에서 자고 있는 사진을 좋아했다.
그 미확인 인간들, 비행접시에서 내려온 인간들은 단 한 마리의 개와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한 달 후면 지구를 떠날 것이라고 미리 고지했기 때문에 투표 기간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만에 전 세계의 사람들의 반절이 흰돌에게 투표했다.
희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는 노래를 따라 온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서 골든 레코드를 떠올렸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들의 노래는 훨씬 비참한 가사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 노래를 송신한 사람이 여기에 있나요? 우리는 답곡을 가지고 왔습니다.”
***
라이카
1954~1957
사인은 질식사였다.
***
처음에 그들의 태도는 우호적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멈추자 그들은 비행선에서 내리겠다고 먼저 고지했다. 어항 같은 비행선의 아랫부분이 도려낸 것처럼 열리고 키가 2m에 가까운 '인간'들이 내려왔다. 그들의 형태는 인간과 꼭 닮아 있었다. 두 눈, 하나의 코, 두 귀, 신장이 크고 피부가 푸르뎅뎅한 색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그들은 키가 큰 만큼 손과 발이 커다랬다.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몸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처럼 흰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율했다. 드디어 인간 외의 다른 지성체를 찾아낸 것이다. 그 미확인 인간들은 자신들이 은하 어디에서 왔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뉴욕 사람들 모두가, 아니 전 세계의 사람들 모두가 그들을 환영했다.
그러나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행인이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그들과 맞이하던 때 문제가 생겼다.
행인은 골든 레트리버의 목줄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행인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털이 아주 멋지십니다."
행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당신의 털도 아주 멋있어요." 같은 얼빠진 대답을 내놓았고, 그들은 그제야 불에 덴 듯 놀라서 행인을 바라보았다.
푸르뎅뎅한 얼굴에 놀람과 혐오의 표정이 번졌다.
“지금 뭘 하는 거지요?” 그들이 물었다.
“개와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행인이 대답했다.
그들은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회의 후 의사를 전달하겠다고 말하며 다시 그 미확인 비행물체의 아랫면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기뻐했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공포에 휩싸였다. 그 푸르뎅뎅 행성인들이 지구를 날려버릴 핵폭탄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 하지만 강아지 애호가들인 것 같은데 괜찮지 않을까, 짧은 시간 사이에 SNS에 의견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과 처음 말을 나눈 행인이 레트리버의 목줄을 너무 짧게 쥐고 있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뉴욕에서 개 산책을 하려면 줄을 바짝 잡고 붙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들은 공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행인은 그 미확인 인간들이 다시 비행접시 바깥으로 나오면 자신과 개의 사정을 구구절절 이야기 할 생각이었다. 행여나 그들이 모욕감을 느껴 지구를 폭발시켜버릴 무시무시한 무기를 쓸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들은 9시간 후에 비행선에서 내려왔다. 처음보다 한층 푸르뎅뎅하게 변해 있었다. 뉴욕의 길거리는 지저분했고 발에 찔릴 게 많았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맨발이었다.
“우리끼리 회의를 좀 했습니다.” 그들이 말했다.
“우선 그 분께 먼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다시 정중한 태도였다.
레트리버의 주인은 이번에는 헷갈리지 않았다.
“네, 여기서라면 가능합니다.” 행인이 대답했다.
그들은 그 큰 신장을 접어 레트리버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마치 몸에 뼈가 없는 듯한 흐물흐물한 행동이었으나 동시에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났다.
“이 종을 뭐라고 부릅니까?”
침묵.
“아하, 인간이군요. 당신은 그가 당신에게 채운 사슬을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침묵.
“알겠습니다. 당신과 다른 이들 모두가 인간을 아낀다는 거죠. 그렇다면 저희도 더는 그 사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침묵.
침묵.
침묵.
“우리는 한 가지를 원합니다.”
오랜 침묵 끝에 그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개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우리와 대화할 수 있는, 당신들의 의견을 전달해 줄, 그런 개가 필요합니다. 당신들이 쏘아 올려버린 라이카처럼요.”
***
참고로 라이카는 기념우표도 가지고 있었다.
부질없는,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
전 세계 사람들이 바빠졌다. 그들은 투표를 했고,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은 개들을 제외했고, 일주일이 지났고, 흰돌이 마침내 대사견이 되었다.
희는 무려 전용기를 타고 뉴욕으로 갈 수 있었다. 희는 해외여행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 바쁜 사람이었다. 가난이 오래 되면 사람들은 분주해진다. 희도 분주했다. 매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가고 온라인으로 사이버 대학교 강의를 수강했다.
뉴욕에 가기 전날 밤 희는 자신이 흰돌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 A4 용지에 적어 보았다.
흰돌 : 밥을 가리지 않고 잘 먹음, 작지만 엄청 먹음, 배변 실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음, 산책을 나가도 늘 30분~1시간이면 집에 오고 싶어 함, 말린 닭 가슴살 위에 고구마를 돌돌 얹은 간식을 제일 좋아함. 기타 등등.
적다보니 희는 흰돌에 대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
희가 모르는 것이라고는 희와 만나기 전의 흰돌, 그러니까 아주 어린 나이의 흰돌뿐이었다. 문제는 그때 흰돌은 ‘공장’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서는 매일매일 아주 많은 개들이 죽었다. 일종의 대학살이 매일 일어나는 장소나 다름이 없었다. 더 어이없는 사실은 그 공장이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공장의 운영자들은 발이 빠지는 뜬 장에 개들을 넣고 계속해서 교배시켰다.
흰돌은 아주 미미하게나마 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낳은 모견의 냄새가 지독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 모견은 한 번도 뜬 장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발은 물러 있었고 엉덩이는 똥칠갑을 해 털이 다 엉킨 채였다.
그곳은 수용소였다. 매일 제노사이드가 일어나고 있었다.
흰돌이 이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사람들은 흰돌에게 투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흰돌은 간식을 달라고 희에게 조르고 있었다.
투표일이 끝난 자정, 희에게 곧장 전화가 걸려왔다. 희는 영어를 몰랐다.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쉬. 희가 말했다. 그러자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능숙한 한국어로 되물었다.
“준비가 되셨나요?”
전혀 준비되지 않았지만, 희는 약간의 기대감과 호기심 때문에 언제든 갈 수 있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마자 전용기가 온 것이다. 그제야 희는 흰돌이 비행기에 타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과연 비행기가 이륙하자 흰돌은 낑낑대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에는 개 훈련사와 ‘애니멀 커뮤니케이팅’을 하는 사람, 그리고 수의사가 있었다. 흰돌이 멈추지 않고 울자 수의사는 마취를 하면 어떻겠는지 물었다. 그러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그럴 필요 없다고, 흰돌을 안고 함께 숨을 쉬어보라고 했다. 희는 일단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함부로 마취제를 사용하는 것을 그들이 원치 않을 것 같아서였다.
흰돌을 품에 안고 숨을 들이 쉬었다가 내뱉기를 반복하자 흰돌도 천천히 진정하는 것 같았다. 이제 무서운 것은 오히려 희였다.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첫 해외여행이 시작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제 바로 외계인을 만나러 간다는 점이.
***
그들이 어느 행성에서 왔는지 밝히지 않았으므로 지구에서는 그들을 임시로 ‘차가운 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차가운 발들은 다시 비행접시로 돌아가 휴식 시간을 거친 후 약속 시간에 지상으로 내려왔다.
희는 긴장으로 창백하게 질려서 거의 푸르뎅뎅한 그들의 미니미 버전 같았다.
그들의 대담은 토크쇼에서 생중계 될 예정이었다. <차가운 발과 흰색 흰돌>이 그 토크쇼 코너의 이름이었다.
차가운 발들은 자신들이 지구에 얼마나 머물지는 흰돌의 대답에 달려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구를 파괴하지 않고 그냥 둘지 말지’가 흰돌의 대답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희도 그렇게 생각했다.
차가운 발들은 인간처럼 소리를 내어 대화했으나 개와 이야기를 할 때는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것을 사용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그렇다고 했다. 희는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믿지 않으면 차가운 발들이 만든 침묵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흰돌을 만나자 차가운 발들은 몹시 기뻐했다. 희는 흰돌을 그들의 품으로 넘겨주었다. 흰돌은 보통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면 소리를 지르거나 낑낑댔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능숙하게 품을 파고들었다.
희는 몰랐으나, 그리고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제외한 다른 사람도 몰랐으나, 그들은 이미 대화를 시작한 참이었다. 차가운 발들은 아주 신사적이었다.
이하는 그들이 흰돌에게 던진 네 가지 질문이다. 그들은 인간을 배려하여 이 질문들을 모두 입 밖으로 내뱉었다.
1. 당신은 ‘라이카’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2.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3. 당신은 삶과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당신은 죽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까?
질문을 받았을 때 희는 흰돌을 돌아보았다. 흰돌은 하루 두 번 산책을 좋아했고 반드시 잔디밭 위에서만 변을 봤으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우유맛 개껌이었고 싫어하는 것은 미용과 목욕이었다. 심약한 흰돌은 작은 고양이조차 무서워했고 9살이나 먹은 늙은 몸으로 점점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의사는 흰돌이 13살이 넘으면 녹내장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흰돌은 주기적으로 관절 보조제를 먹고 있었다. 대체 흰돌이 라이카와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한단 말인가? 대관절 그들은 어떤 노래를 따라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흰돌은 턱시도를 입고 그들과의 회담에 참가했다. 2m가 넘는 거구들이 쪼그려 앉은 채 2.8kg의 강아지에게 경어를 쓰는 모습은 꽤 신비로웠다.
차가운 발들은 흰돌이 남긴 답변을 지구를 떠나면서 알려주기로 했다.
그들이 흰돌에게 질문을 할 때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장장 10시간의 인터뷰 동안 희는 무소음의 공간에서 적막하게 앉아 있었다. 흰돌은 평소처럼 아주 귀여웠다. 인터뷰 도중에는 우아하게 턱을 긁기도 했고, 잠시 화장실도 다녀왔으며, 물도 마셨다.
5시간째에 희는 살짝 졸았고, 9시간째에는 그냥 흰돌만 케이지에 태워 비행기로 보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했으며, 10시간째에는 흰돌에게 영양제를 먹일 시간이 다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발들과 흰돌의 대담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토크쇼의 진행자도 희와 같은 신세였다. 그토록 고요한 토크쇼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10시간 동안 전 세계의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침묵을 엿듣고 있었다.
"대화가 끝났습니다."
마침내 차가운 발들이 말했다.
“우리는 흰돌을 통해 원하는 대답을 충분히 얻었습니다.”
그들은 희에게 다시 흰돌을 넘겨주었다.
“당신들의 악의에 경탄할 수밖에 없더군요.”
희는 흰돌을 꽉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들이 보이는 무한한 사랑은 진실이군요. 우리에게는 당신들의 죽음보다 그들의 사랑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곳을 떠날 것이며, 향후 언제라도 다시 들릴 예정이 없음을 알립니다. 여러분은 연합에 초대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토록 잔인하고 무식한 종은 처음입니다. 라이카의 노래가 왜 슬펐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토크쇼의 진행자가 ‘연합’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흰돌과 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한참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차가운 발들은 다시 비행접시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비행접시는 며칠 뉴욕 상공에 떠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나중에 비디오 테이프로 녹음된 인터뷰의 전문이 희의 집에 배송됐다. 차가운 발들은 텔레파시를 사용하지 못하는 희를 배려하여 전문을 낭독하여 녹음했다.
***
이하는 흰돌이 그들에게 내놓은 다섯 가지 대답이다.
1. 그에 대해서는 깊은 조의를 표한다. 당신들이 그렇듯이 우리들도 라이카를 생각할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2. 나는 명상과 시를 즐긴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그럴 시간이 충분히 많다. 최근에는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 구절은 떠올랐는데 뒷부분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번 비 오면 씻겨갈 여름, 무엇이 서럽다고.'
3. 원이다. 삶은 시작이 아니요, 죽음도 끝이 아니다. 둘 모두 그저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의 고리 안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고 죽을 것이다. 그것에 서러워하거나 두려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 받아들이라. 깊게 호흡하라. 치밀하게 생각하라. 오늘에게는 작은 한 발이지만, 내일에게는 큰 도약이 될 것이다.
4. 그들은 강으로 간다.
답변을 받고 희는 흰돌을 돌아보았다. 날씨가 추워져 작은 스웨터를 입은 흰돌은 졸린 눈을 하고서 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카? 죽음? 삶? 원? 시? 명상? 흰돌이 눈을 귀엽게 찡그렸다. 흰돌은 어딘가 아프거나 불만이 있으면 항상 그런 표정을 지었다. 희는 심장이 얼얼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흰돌은 이름처럼 하얀 개였다. 눈이 동그랬고, 보드라웠고, 2.8kg밖에 나가지 않았으며, 9살이었고, 녹내장 가능성이 높은 눈을 타고 났으며, 순혈이어서 관절도 좋지 않았다. 배변은 반드시 잔디밭 위에서만 봤고 하루 두 번 산책하지 않으면 화를 냈다. 고양이와 싸워도 이기지 못했고, 요즘 들어 늦잠을 꽤 자주 잤다. 취미는 명상과 시 짓기였다. 죽음과 삶을 관통해서 볼 줄 알았고 라이카에 대한 노래를 알고 있었다. 흰돌은 심지어 닐 암스트롱을 인용할 줄도 알았다.
13살, 흰돌은 다행히 녹내장에 걸리지 않는다. 15살, 희가 매일 먹인 관절 보조제 덕분에 흰돌의 선천적인 기형 관절도 흰돌을 완전히 못 걷게 만들지는 못한다. 흰돌은 16살, 봄, 개나리가 필 무렵에 눈을 감는다.
흰돌은 삶과 죽음 사이로 쏘아져 지나간다. 관통 된다. 멀리, 멀리로 간다. 강물 속에 있다. 흘러간다. 바다로, 바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