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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03. 2020

괜찮지 않아: 보건교사 안은영

2020, 이경미

태어난 대로 살아야지 누굴 탓하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자주 나오는 대사이다. 안은영은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한다. 안은영과 비슷한 능력이 있는 '언니'도 그런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이상 평범할 수 없다. 젤리가 보이는데 어떻게 일반인과 같다고 하겠는가? 젤리를 없앨 수 있는데 어떻게 일반인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처음에 이 대사가 나왔을 때 펑펑 울었다. 남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내게는 실존할 때의 공포를 드라마는 잘 짚어낸다. 나의 환시는 그것이 이질적이어서도, 무섭게 생겨서도 아니고 단지 '남들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포스럽다. 남들에게는 없는 무엇이 내게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고립된 느낌을 준다. 나와 그들 사이에 선을 긋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태어난 대로 살아야지 누굴 탓하나. 이렇게 태어난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환청이 들리고 환시를 본다고 해도 어쨌든 삶은 다 똑같은 삶인데. 내 세상에 남들의 세상에 없는 부분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래도 아무튼 우리의 삶의 흐름은 같이 흘러간다. 기름과 물이 한 컵에 들어있는 것과 같다. 같은 컵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층을 보고 살아간다. 하지만 아무튼 같은 컵이다. 그래서 섞이고 싶어 진다. 서로 다른 층의 사람이어도 괜찮으니 누군가와 섞이고 싶다.


어떻게 아냐고? 나는 살고 싶으니까, 맨날. 평범하게 살고 싶으니까.

혜민이의 수술 장면에서 '언니'와 안은영의 태도는 명백히 다르게 나타난다. 언니는 또 그 말을 한다. '태어난 대로 살아야지 누굴 탓하니.' 안은영은 반발한다. 태어난 대로만 살아가지 않겠다고, 그 애는 살고 싶을 거라고, 5.38km 밖으로 벗어나 보고 싶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도라지의 소개로 찾아간 첫 수술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난다.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횟집이다. 횟집은 갇혀있는 죽음의 상징 그 자체이다. 그 안에는 삶이 없다. 싱싱하거나 낡은 죽음만이 가득하다. 수술을 한다는 여자는 생선의 대가리를 자르면서 안은영과 대화를 나눈다. 혜민이의 생도 그래 왔을 것이다. 죽음이 가득했을 테다. 혜민이의 생 어디에도 삶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안은영이 혜민이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자신의 욕심을 혜민이에게서 찾아내는 것도 혜민과 자신 사이에 차이를 못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안은영도 횟집 수조 속의 물고기이다. 그는 혜민이와 다르게 사람이지만, 늘 묶여있는 것들을 본다. 안은영은 그것들을 보지 않으면 행복해진다고 믿는 것 같다. 평범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사실 혜민이는 정말로 행복해진다. 처음으로 5.38km 밖으로 벗어나 보고, 여자 친구가 생기고, 더는 옴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 '특별함'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혜민이의 생은 이제 삶으로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때는 그게 너무 무서웠어.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게.

20대 때, 환시와 환청에 지쳤을 때 나도 매일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사라진다면 좋겠지만 과연 사라지기는 할까? 나는 거의 평생에 걸쳐 환각을 겪었다. 10살쯤부터 이미 증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지쳐갔다. 남들은 내 층의 광경을 모른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내가 본 것들을 고백하면 그저 '미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이 두려웠다. 매일 용기가 꺾였다. 아마도 20대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계속 살기에는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씩씩해지지 말고. 무슨 일이 생겨도.
알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을 어쩌겠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할 때, 그때 사람은 진정 미련해진다. 그것은 '포기'나 '기권'이 아니고 '오만'이다. 기름과 물이 섞이지 않는 사실만을 두고 절망하게 된다면 평생 둘이 같은 컵 안에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 다시 말하건대, 명백히 다른 층에 있지만 둘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만해지지 않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좌절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인정하자. 물과 기름의 층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 당연히 물에게도 기름에게도 괜찮지 않은 사실이다. 서로 알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수에게든 소수에게든 충격적이다. 그렇지만 그냥 인정하자. 그리고 절대 힘내지 말자. 섞이기 위해 애쓰지 말자. 섞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도망치려고 애쓰지 말자. 그냥 살자.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자리에서 살아가자. 삶을 살자.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원래 삶은 그런 것이다. 영원히 괜찮다면 그것은 결코 삶이 아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참 따뜻한 이야기이다. 나는 1화에서 안은영이 한문의 손을 잡았을 때 내가 처음 사랑했던 존재를 떠올렸다. 모두에게 그런 구원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없더라도 괜찮다. 안은영이 구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된다. 내게 구원이 없더라도 나는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달라도, 내가 겪는 것을 당신이 영원히 모를 수 있어도, 애써봤자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어도, 그래서 아무것도 절대로 괜찮지 않은 순간이 오더라도,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우리들에게 이야기한다. 씩씩하지 말라. 괜찮으려고 하지도 말라. 애쓰며 필사적으로 살 필요 없다. 하지만 도망쳐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일이 당신의 운명이라면 피할 필요 없다. 사실, 피할 수조차 없다. 이제 그런 순간이 온다면 안은영의 대사를 되뇌게 될 것 같다. '알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을 어쩌겠어.'


젤리가 없는 세상은 완벽했다.
나를 계획한 누군가는 없겠지만 혹시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왜 내게 숨겼나요?

요즘 나는 약을 먹으며 병에 많은 차도가 있었다. 이제 더는 환각을 자주 겪지 않는다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남들은 이렇게 조용한 세상에서 살아왔구나. 안은영의 말처럼, 색들이 모두 똑바르고 사물이 모두 정확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은 이런 세상을 살아오고 있었으므로 남과 나는 그렇게까지 다를 수밖에 없었구나. 하지만 안은영의 젤리는 결국 돌아온다. 나의 병도 악화되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나는 안은영이 왜 힘을 낼 수 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한 번 본다면 보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한 번 엿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세상.

안은영의 세상도 나의 삶도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무수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때로는 또 포기하고 싶어 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비록 보는 세상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삶을 살아가는 태도만큼은 같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힘을 얻는다. 피할 수 없으니까, 괜찮지 않으니까 그래도 살자는 메시지는 괜찮다는 가짜 토닥임보다 더욱 강한 전달력을 가지고 있다.

안은영도 다시금 자신의 말을 곱씹어 삼킨 것 같다. 태어난 대로 살아보겠다는 기운 찬 목소리가 다음 이야기로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나는 설령 마지막에 안은영이 평범함을 선택한다고 해도 박수를 치며 작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 번 엿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나고 삐뚤어진 이야기, 그런데도 충분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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