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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Nov 10. 2020

<아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롱 광 롱

2017년 전주 영화제

영화는 핸드헬드 방식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진행된다. 영화의 배경은 츠주 시이다. 네 명의 어린 남매가 그곳에서 자살했다. 주인공이자 영화 속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죽은 아이들의 소식을 듣자 '견딜 수 없어져' 츠주 시로 향하게 된다. 주인공 역시 아버지이자, 자살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면서 동시에 거의 모든 씬을 불분명한 덩어리와 새카만 노이즈로 처리한다. 이런 씬들 뒤로는 짐승들의 울음이나 자동차의 소음, 사람의 숨소리가 배경으로 들려온다. 매 장면은 롱테이크로 호흡이 길지만 실제적으로 화면에서 변하는 것은 별로 없다. 오로지 소음과 주인공의 물음만이 계속된다. 왜 아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아이들을 돌보던 사람은 없었는가? 이웃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공무원은? 부모는? 아이들의 아버지는 무기징역, 어머니는 28년 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한 가정이 통째로 사라졌다. 이 비극은 대체 왜 시작된 것인가?
주인공은 츠주로, 반복해서, 매번 더 깊이 들어간다. 츠주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이자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아이이다. 그러면서 그는 네 남매의 자살을 점점 내면화한다. 타인의 자살은 점점 그의 죽음이 되어간다. 그 역시 동반 자살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끝부분에서는 총을 머리에 대고 쏘는 남자가 나온다. 그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영화 초반부터 꾸준히 나오는 옥수수밭에 숨어 일을 하는 아이들처럼, 그들은 익명성을 띈 채 죽고 노동한다. 죽은 남자는 결국 그 아이들이다. 그의 자살은 왜 일어났는가? 그의 가족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는 왜 죽어야만 했는가.

주인공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존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름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의 카메라에 담긴다. 세금을 내지 못해 정부에 호적 등록을 하지 못한 아이들이다. 주인공은 그들을 향해 "아이들은 감자처럼 자란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렇다. 한 무더기의 감자를 찍은 씬처럼 영화 속 아이들도 굴러다니며 자란다. 그들은 혼자 노동하고, 일찍 담배를 피우고, 서로를 학대한다. 왜? 누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다큐멘터리에서 어른은 모두 낯선 자들이다. 그들은 쌍두룡으로 상징되는 사악한 모습을 띠고 있다. 심지어 주인공은 자기 자신조차도 불분명한 타자의 모습으로 찍어낸다. 다큐멘터리 속에는 주인공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남자도 등장한다. 주인공은 그를 두고 '어른이 된 나'라고 칭한다. 그는 다른 어른들과 다르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그들을 재우며, 자는 모습을 촬영한다. 주인공은 그가 괜찮은 아버지라고 말한다. 네 남매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더라면 누구도 자살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인공이 선연한 증오를 드러내며 쏘아붙인 말, 아이들이 버릇이 좀 없다면 어떻단 말인가! 에서 관객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인형극에 등장했듯 어쩌면 쌍두룡과 악어(나쁜 어른들)에게서 판다와 원숭이(순수하고 바보 같은 아이들)를 보호해줄 경찰(부패하지 않은)이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고, 부모는 잡혀가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이 기르던 돼지 두 마리가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츠주를 떠나 다시 주인공의 집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촬영한 아이들을 보고 있다. 흑백 사진 속의 아이들은 역시 형체가 불분명하다. 어떤 사진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질문해야 한다. 누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답은 줄곧 주인공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의 다큐멘터리, 그의 카메라가 곧 질문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다.


2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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