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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ec 30. 2022

꿈일기

이제는 사라진 것들의 이야기

기록 - 20221930


나는 커다란 백화점에 있다. 그곳은 벽면이 전부 얼음처럼 하얗고 유리처럼 투명하다. 정문 쪽에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이 있다. 하지만 계단 위의 문은 늘 잠가두었기 때문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안으로 들어가면 옷이 없는 마네킹들이 쭉 줄지어 서 있다. 한 섹션마다 특징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9번 섹션은 야생 동물들이 사는 곳이라 사자가 늘 어슬렁댄다. 나를 공격하지는 않지만 나는 사자의 산책 시간을 방해하기 싫어서 그곳 근처에는 잘 가지 않았다.

섹션의 뒤편은 비품 창고로 이어진다. 비품 창고에는 보통 아무것도 없다. 잘 정리된 흰 벽이 전부이다. 하지만 딱 한 곳, 계단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문은 우주로 통한다. 무언가 정리가 필요하거나 이상함을 느끼면 나는 우주로 들어가 꿈을 샅샅이 뒤진다. 무엇이 문제인지, 바뀐 점이 무엇인지 조사한다. 

비상구의 계단 중 하나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어려지고 위로 올라올수록 늙어지는 신기한 계단이다. 그곳 꼭대기 중턱에는 노파 한 명이 산다.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분주하게 젊어졌다가 늙어졌다가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다. 

가끔, 아주 가끔 백화점에 나 말고 다른 손님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 사자를 풀어 그들을 죽였다. 

이 백화점은 나만의 흰 궁전이었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완전무결하게 고독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꿈을 사랑했다. 환청도 환시도 없고, 타인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꿈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꿈이 사라졌을 때 정말 슬펐다. 아마 내 무자각 어딘가에는 이 흰 궁전도 아직 남아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한번 그 빈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타인을 대하는 일은 늘 피로를 동반한다. 백화점 속의 우주 안에서 나는 갓 태어난 것처럼 행복했고 이따금은 영영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런 편안함은 아직까지는 다시 느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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