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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18. 2023

꿈일기

이제는 사라진 것들의 이야기

기록 - 20230118


여우가 죽는 평야에 있다. 여우를 살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해봤는데도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여우는 건널목에서 신호를 무시했다가 차에 치인다. 

이곳에는 작은 활주로도 있다. 좀 더 큰 섬으로 가는 비행기가 존재한다. 이 평야의 관리인은 내가 떠나겠다고 하면 늘 비행장까지 와서 인사를 해줬다. 그 섬으로 가는 배 편도 있기는 했지만 그건 다른 꿈에 등장한다. 나는 여우를 죽게끔 뒀다는 찝찝하고 우울한 기분을 가진 채로 비행기에 탄다.

우리는 섬으로 간다.

섬은 꽤 커서 한 번도 전체를 둘러본 적이 없다. 큰 산이 섬의 가운데에 있다. 착륙장도 그곳이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면 무조건 섬의 병원에 찾아간다. 그곳에는 주치의 선생님이 있다. 처음에는 원하는 때면 늘 선생님을 불러서 불만을 토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주치의 선생님은 잘 나타나지 않게 됐다. 대신에 수간호사님이 전달 사항을 알려주고, 재방문 날짜를 잡아주었다. 나는 몇 번 이 병원에 입원도 했다. 병이 있는 우리는 모두 흰색 리넨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4개의 방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꼭 방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지루함을 풀었다. 그렇지만 때때로 불안해졌다. 선생님이 영원히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면? 나를 역기에 평생 가둬 둘 생각이라면? 내가 살리지 못했던 여우는 이 불안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꿈의 끝자락에서 나는 결국 퇴원한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채로. 꿈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다.  

마지막으로 평야에 갔을 때 나는 여우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늘 비행기 티켓만 주던 섬의 관리인이 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그 사람이 선생님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이미 병원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 안쪽의 모든 방과 구석과 천장과 계단을 뒤졌는데도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선생님은 내가 살린 여우와 함께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 꿈을 평생 다시 꿀 기회가 없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도 여우가 죽던 그 밀밭의 평야를 기억한다. 이 기억은 꽤 오래된 것이라 바쁘게 옮겨 적었다. 잊지 않고 싶다. 내가 여우를 마침내 살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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