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May 16. 2024

민물 인어

이 글에 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입을 보았기 때문에.

쩍 벌린 입, 달팽이의 식도처럼 무수한 이빨,

마지막 민물 인어는 우리 할아버지가 쏜 조총에 맞아 죽어버렸어

그때 죽은 닭이 깨버린 거야. 퍼드득 하고

그리고 우리 곁에 언제나 함께 있어준

고래 사체가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


민물은 결국 바다로 가기 마련인데

민물 인어는 거기서도 살 수 있을까

고래의 사체를 먹어본 사람이 말해줬다

민물 인어, 너를 사랑하지만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래에게서는 비린 맛이 났대


네가 다시 되살아나고 되죽어서 어느 새벽,

수탉이 우는 소리와 함께 여태 있어왔던

무수한 고래들처럼 해변으로 밀려오기를

우리는 비린 고래를 먹고

수탉의 목을 비틀어 죽일 테지

할아버지의 조총은 늘 초침이 6초 느린

궤종시계 앞에 세워져 있어


아─
저기를 봐,

벌써 수탉이 부활한다.

딸깍, 조총에서 그런 소리가 나고


이 글에 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의 입을 보았기 때문에.

쩍 벌린 입, 달팽이의 식도처럼 무수한 이빨,

사랑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너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머리를 물어뜯는 상상을 수없이 많이 했다

내 축축한 머리가 네 이빨에 촘촘히 스며들어

함께 비린내가 났으면 했어


나도 이제는 밀려온 고래의 사체를 파먹는 사람

고래 지느러미는 미끄럽고 퍼덕인다

어느 밤 어느 집 어느 수탉인가 소리를 내어 울고

조총의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이제는 내게 오지 않는 너를 상상한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네가 해변으로 밀려든다

작가의 이전글 아가미 없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