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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ec 03. 2023

아가미 없는 것들

극장의 불은 오래 켜져 있을수록 좋다

그러나 여자는 보고 싶은 영화표를 놓치고 말았다

아르바이트생이 아무 표나 한 장을 새로 준다

부디 이 영화가 당신을 멸시하지 않기를


그간 어떤 인도 영화였는데 주인공의 말을 번역하자니 너무 길어서 아무도, 단 한 명도 그 문장을 번역해주지 않은 거예요. 저는 가장 중요한 말을 놓치는 사람이 됐어요. 게다가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사람의 말을 할 수 없게 됐어요.

라 쿠 차 스나바 하마루 나는 극장에서 이런 말들을 했지요. 옆자리 N6번 사람은 너는 나를 사랑하냐고 물었다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듣고  따귀를 때렸어요


여자는 그래서 묘비 뒤로 숨었다

묘비와 묘비 사이에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무호흡 지대입니다.'

여자를 찾아온 N6은 아가미가 없었으므로 들어올 수 없었다


여자는 쪼그리고 앉아서 영화관을 쭉—본다

인도 영화가 재상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부분—여자가 말을 잃어버렸던 부분에서 안정적인 대사가 들린다


10월이오면뤼니아에게꽃을바치러갈생각이있는데그녀가좋아할까생전에도싫어했는데무덤에까지꽃을가지고가는건오히려예의없는짓이아닐까

하지만, 응, 꽃은 이미 샀다네.


N6은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린다

여자는 맨홀에 빠지지 않도록 바닥만 보며 걸으며 저주한다


"갈퀴 없는 자들 모두 죽으라

아가미가 없는 자들 모두가 죽으라"


사랑처럼 증오하는 것이다

무게를 잰다면 분명 몇 그램의 무게가 달아질 증오

빽빽한 밀도의 증오를 눈앞에 두고 인도 영화에서는 다른 대사가 나오고 있다


오, 그녀가 부활할 줄 누가 알았겠소! 좀처럼 비극적인 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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