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병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처음에는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이유를 찾았다.
잠을 못 자서 그런 걸 거라고,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거라고,
잠깐 무리했을 뿐이라고.
누구나 한 번쯤은 숨이 막히는 순간이 있지 않나,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는 날도 있지 않나.
나는 그날을 그렇게 넘기고 싶었다.
‘조금 예민해진 하루’ 정도로 정리해두고,
내일이 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몸은 내 바람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다시 숨이 가빠졌고,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먼저 조여 왔다.
생각은 늘 그 다음이었다.
몸이 먼저 흔들리고 나서야 ‘왜 이런 걸까’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여전히 병이라는 단어는 피했다.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병이라는 말에는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왜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나는 아직 그 질문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나를 의심했다.
내가 너무 약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겁이 많은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다 버티는데
왜 나만 이렇게 흔들릴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그래서 불안이 와도
나는 끝까지 참아보려고 했다.
숨이 막히는 순간에도
‘이 정도는 견뎌야지’라고 생각했다.
그게 문제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어느 날은 아무 일도 없는 오후에
갑자기 숨이 어려워졌다.
기다릴 이유도, 긴장할 이유도 없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에야 나는 처음으로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무서웠다.
내가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이건 도대체 무엇이 될까.
병이라는 가능성이 그때부터 조심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끝까지 밀어냈다.
병이 아니라면, 나는 아직 정상일 수 있었으니까.
정상이라는 단어는 그 무렵 나에게 유난히 중요했다.
정상이어야 할 것 같았고, 정상에서 벗어나면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괜찮아야 한다는 말과 괜찮지 않은 몸 사이에서
나는 점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은 내가 외면할수록 더 정확하게 찾아왔다.
마치 나에게 “이제는 나를(불안)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처럼.
병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마음속에서 꺼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울지 않았다.
대신 멍해졌다.
머릿속이 조용해지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는 아픈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아직은 부정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 서 있었다.
인정한다는 건 곧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 같았다.
도움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계속 혼자 버틸 것인지.
그날 나는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건 참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는 이미 꽤 오래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것.
병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이 상황을 넘기지는 못했다.
불안은 이미 내 삶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