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라는 말은 누가 정하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정상’이라는 말이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말이었는데, 그 말이 갑자기 멀어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가도 조금만 다가가면 다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평소처럼 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약속을 잡고, 계획을 세웠다.
나는 그 평범한 하루에 더 이상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없었다.
몸은 계속 신호를 보냈다.
괜찮은 날과 괜찮지 않은 날의 경계가 흐려졌고,
어제 가능했던 일이 오늘은 갑자기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게 정상인가’라는 질문을 혼자서 수없이 되뇌었다.
정상이라는 말은 항상 보이지 않는 기준을 데리고 왔다.
남들만큼 해내는지, 참아낼 수 있는지, 뒤처지지 않는지.
그 기준에 나를 세워볼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때의 나는 정상과 비정상을 너무 분명하게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의 바깥에 내가 서 있다고 믿었다.
숨이 가빠지고, 하루를 버거워하는 나를 보며
‘나는 이미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혼자서 판결을 내려버렸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아픈 것도 힘들었지만, 정상이 아닌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나를 더 깊이 흔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고쳐야 할 상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상이라는 말은 사실 아주 개인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사회가 먼저 정해둔 기준에 가깝다.
정해진 나이에 학교를 다니고, 정해진 속도로 따라가며, 아프더라도 쉬지 않고 버텨내는 것.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이 자연스럽게 ‘정상’으로 불렸다.
나는 그 기준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고, 나 역시 그 안에 있을 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그 흐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자 나는 곧바로 정상이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마치 정해진 궤도에서 이탈한 것처럼,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아픈 나 자신보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나를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누군가는 멀쩡히 다니는 학교가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공간일 수 있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온 힘을 다해야 버틸 수 있는 하루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걸 하나의 기준으로만 재단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 꽉 막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정상’이 있다고
너무 쉽게 믿어버린 건 아닐까.
그 당시의 나는 이 질문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만 매달려 있었다.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감각은 나를 계속 조급하게 만들었다.
“다들 이 정도는 겪잖아.”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 말들은
나를 다시 정상의 선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말 같았다.
나는 그 말들을 붙잡고 나 자신을 더 세게 밀어붙였다.
정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에게 회복할 틈을 주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아픈 상태였을 뿐인데,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아픔과 비정상을 같은 말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멀어졌던 이유는
내가 그 단어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말 하나로 나를 규정하고, 재촉하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상이라는 말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정상인지 아닌지를 따지기보다 지금의 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묻기로 했다.
불안은 여전히 있었고 나는 여전히 흔들렸다.
하지만 더 이상 정상이라는 말 하나로 나를 재단하지는 않았다.
그 질문이 그때의 나를 아주 조금 숨 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