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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정 Sep 20. 2017

연예부 기자, 퇴사하였습니다

퇴사일기, 첫 번째

기자 생활을 하며 받은 사인 CD, 보람을 준 메시지도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연예부 기자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냐"였다. 2013년 입사, 서울대 졸업, 국사학과, 당시 25세.............. 일간지, 대기업, 방송국 등 그럴듯한 곳에 도전할 수 있음에도 나는 박봉의 인터넷 연예지에 들어섰다. 

그럴 때마다 난 예능PD가 되고 싶었고, 5년 전의 텐아시아를 설명했고, 하다보니 재미있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변명이자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1~2년은 정말로 행복하고 뿌듯했다. 실제로 텐에 입사했을 때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예전의 텐아시아는 사라졌지만, 대신 좋아하는 편집장님과 선배들을 만나서 정말 재미있게 일했다. 객기도 함께 커졌다. 모니터링, 의미없는 스트레이트를 보며 "이게 기사냐"라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고,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블로그 하냐"라고 해도 꼰대의 말이라 치부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4년이 흐르는 동안 언론 환경은 더욱 열악해져가고, 하고 싶은 것만으론 결코 먹고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언제부턴가 포털사이트와 트래픽만 바라보게 됐다. 기자가 무엇인가, 어떤 기사가 가치 있나 등등 질문은 연예 바닥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저 조금 더 클릭수를 높이기 위한 '어그로' 기사를 관련 기사에 배치하고, 네이버 메인에 걸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스타의 SNS를 먼저 발견하는 것이 단독이 되고, "메인에 걸렸다!"가 자랑이 된다. 이 상황에서 아무리 공들여 쓴 기사라도 네이버에 걸리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거고, 대충 쓴 기사가 걸리면 부끄러워하며 오탈자를 뒤늦게 점검하는 게 일상이 됐다. 

관계자들도 기사의 질에 상관없이 오로지 네이버 메인에만 걸리면 장땡이니, 참으로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씁쓸했다. 어찌보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당연한 건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큰 괴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경리든 인스타 담당 내근직이든 트래픽만 잘 내면 데스크가 되는 회사에서 바닥을 보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안 힘든 곳이 어디있겠지만, 무언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

그럼에도 잘 만든 콘텐츠로 인정을 받는 크리에이터나 여러 콘텐츠 플랫폼을 보면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보며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동시에 아무 능력도 없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난 4년간의 생활 동안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난 환경을 탓하며 사라진 열정에 괴로워했고, 우울증은 심해졌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일단은 떠나기로. 누군가는 나를 소위 '짬밥'도 차지 않은 애송이의 건방짐으로 볼 수 있고, 누군가는 아직 어리니 잘 결정했다는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언젠가 돌아오라는 격려도 주신다. 

물론 즐겁지 않은 일만 있던 건 아니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인정을 받기도 했고, 누군가의 전문가로 불리기도 했다. 내 글을 보기 위해 나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고, 쓰고 싶고, 어서 선배들을 따라잡고 싶어서 안달났던 때도 있었다. 선배들과 연차의 벽을 실감하면서도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자고 노력하던 때도 있었다. 세월호 뉴스 비교, 무한도전 다카시마 공양탑 방문 등 지금도 자랑하고 싶은 글도 남겼다. 이렇게 계속 보람을 찾다보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꼼수를 쓰던 나는, 29살이 돼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책 없이 그만뒀지만, 20대를 찬란하게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할 원동력을 얻을 차례다. 찬란한 20대, 아직 늦지 않았다. 인생은 서른부터.

헛되이 보내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밝힌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젠 노래를 좋아하고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보는 문화소비자로 활동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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