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열 번째 : 40일간의 캐나다 일기(2)
밴쿠버 여행 중 대학 시절 알았던 동생을 만났다. 그는 초등학생 때 캐나다로 이민 와서 현재 캐나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와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나 “록키투어 때 만난 여행 가이드가 이런 말을 했어. 캐나다는 복지가 너무 잘되어 있고, 돈을 많이 벌수록 세금을 많이 내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 필요를 못 느끼고, 게으르다고.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한국 청년들도 열심히 일해서 기회를 잡으라고. 그런데 한국 청년들은 한국의 그 열심히 일만 하는 문화가 싫어서 캐나다에 왔을 텐데 캐나다에서도 열심히 일하라는 건 결국 또 한국처럼 살라는 거 아닐까? 나는 좀 그렇더라.”
그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긴 열심히 일한 만큼 인정해줘서 그런 게 아닐까?”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한 만큼 인정해준다.’ 맞다. 내가 원한 것도 그것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일하면서 나는 화가 많은 사람이 됐다. 매일 같이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화를 냈던 건, 왜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느냐는 것이 아니었다. 일한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기자 시절, 추가 수당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뉴스는 주말 없이 쏟아지는데 기자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정해도 그건 월급에 포함된 근무라는 답이 돌아왔다. 특히 내가 마지막에 있던 회사가 심했다. 공휴일은 교대로 일하고, 근로자의 날과 명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대체 휴일이나 추가 수당에 대한 질문에는 "미안하다"로 끝났다. 그리고 “기자한테 낮밤이 어디 있냐. 24시간 살아있어야지”란 잔소리가 되돌아왔다. "내가 젊을 때는", "월급 꼬박 나오면 됐지"도 포함해서.
내가 원했던 건, 정해진 근무 시간 외에 추가 근무를 시키는 것에 대해서 대체 휴일이나 추가 수당을 받는 것이었고, 당일 야근 통보에 대한 시스템 개선이었다. 또한, 일하지 않는 자에 대한 적절한 징계 또는 훈육, 꼼수로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찾아내 시정을 하는 상관의 모습을 원했다. 경력도 능력도 없는데 직원들 사이의 이간질과 정치질을 근절하고, 상사를 향한 아부를 하는 자와 정직히 일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 열심히 일한 자를 발굴하고 격려하는 것. 그뿐이었다.
내가 화를 냈던 건 나만 원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었다. 법으로든 도의적이든 사회적이든. 그러나 회사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돈이 아닌 일을 더 주고, 아부를 잘하는 사람에겐 일이 아닌 혜택을 줬다. 여기에 언론사의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일들까지...
일한 만큼 인정해 주는 세상, 그것이 그렇게 힘들까. 그랬다면, 난 지금도 열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