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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정 Oct 22. 2017

퇴사 후 밴쿠버로 떠난 이유

퇴사일기, 아홉 번째 : 40일간의 캐나다 일기(1)

사표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캐나다행 비행기표를 끊는 것이었다. 그리고 2017년 10월 22일, 어느덧 여행의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 이후 장기 여행을 떠난다. 백수가 아니고서야 오랫동안 시간을 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40일간의 캐나다 여행을 결정했다. 밴쿠버에서의 한 달을 꿈꿨다. 여행을 하는 동안 스스로 또 만나는 사람들마다 끊임없이 묻는다. 왜? 밴쿠버? 굳이 한 달? 워킹홀리데이 아니고 그냥 여행?     


처음 내가 한 달 여행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그저 한가로이 카페나 공원 벤치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삶을 구경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규칙적인 삶을 살기 위해 어학원도 2주 정도 등록했고, 여행의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친구와 록키투어, 빅토리아 여행도 다녀왔다. 한국에서는 한 달 그냥 밴쿠버에 있겠다고 했을 때 다들 잘 쉬다오라고 말을 들었는데 여기서 만난 한국인은 또 ‘왜’라는 질문을 한다.

     

나 역시도 여행에 대한 걱정은 있었다. 이왕 가는 한 달인데 조금 더 다양한 곳에서 여러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카페에 앉아 있는 건 우리나라에서도 할 수 있잖아, 그냥 사치 아닐까 등등. 야심차게 한 달 살이를 선언했지만, 주변의 의아한 시선에 흔들렸다. 그냥 내가 좋아서 결정한 건데 내가 너무 효율적이지 않게 여행을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친구와의 여행이 끝나고 혼자 밴쿠버에 남은 이후 해변에서 매일 선셋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가만히 앉아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아, 그랬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도 '여행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하고 있었구나.


오래 있다 보니 나만의 여행이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다 보니 캐나다 사람과도 대화할 기회가 생겼고, 한 달 렌트한 집에서 만난 룸메이트들 덕분에 캐나다판 ‘청춘시대’도 찍고 있다. 이왕 간 김에 ‘도깨비’ 촬영지는 보고 오라는 주변의 성화에 결국 캐나다 동부 일주일 여행도 짰다.


여행 전 걱정은 기우가 됐다. 워킹홀리데이나 시민권자가 아닌 여행자로서 한 달은 분명 다른 사람과 다르다. 행복할 수밖에 없다. 일을 하지도 않고, 매일 같은 나를 누르던 압박감도 없으니까. 그냥 맛있는 거 먹고, 멋있는 풍경을 보고, 내일에 대한 생각 없이 오늘을 즐기는 찬란한 백수의 삶이다. 한국에서 매일 일에 쫓기고, 스스로에 쫓겼던 나는 여행에서만큼은 물 흘러가듯이 나를 내려놓고 싶었나보다. 이제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법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아마 서울로 돌아갈 때가 되면 아쉬움은 클 것이다. 여행의 끝은 아쉽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 거창한 계획이나 준비 없이도 삶은 그 자체로 빛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배우고 있다.


이제는 왜냐고 묻는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다. "그냥 제가 좋아서요." 찬란한 백수의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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