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식 아파트의 기쁨'을 아시나요?

by 햇살정아

전업주부의 삶은 뚜렷한 경계가 없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집이 나의 일터이자 쉼터이기에......


신혼집이었던 자그마한 집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웠다. 그리고 본격적인 인생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한참 아장아장 걸음마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이 신비로울 시절, 우리는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이 지지고 볶으며 아옹다옹 추억을 쌓아갔다. 오히려 새 집이 아니었기에, 자가가 아니었기에 더욱 맘 편히 살았던 것 같다. (집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주방과 거실이 이어진 원룸 같은 곳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놀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 주었고, 무엇이든 탐색할 수 있도록 위험한 것들은 모두 정리했다. 우리는 서로의 경계 안에서 안심하였고, 각자의 일을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시절에는 '좋은 것이 좋은 줄 모르고'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랐다. 이제야 '그때 그 시절이 좋았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하루하루 고된 육아로 손바닥만 한 집에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항상 장난감과 책으로 정신없이 어질러진 집을 보면 속에서 울화가 터져 나왔다. '마음을 내려놓자'라고 수십 번을 다짐했지만 사실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다. '어질러진 공간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은 더욱 향상된다'는 육아서의 어느 작가의 말을 되새기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인가 보다. 그 와중에 나만의 비법, 힐링하는 법을 찾아냈으니...

우리 집은 다름 아닌 '복도식아파트'였다. 출입문을 여는 순간, 또 다른 세계가 나에게 펼쳐진 듯 숨통이 확 트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살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였던 장면은 벚꽃이 만개한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어느 날이었다. 분홍색으로 피어오른 벚꽃님을 보는고 있노라면 '엄마'에서 '소녀'가 된 듯한 핑크빛 설렘이 샘솟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분홍비가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을 보는 것도 마음을 몰캉하게 만들었다. 겨울에도 복도식 아파트 출입문 밖은 좋았다. 화와 열로 달구어진 마음을 식히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차디찬 공기가 내 뼛속까지 스며들며 순식간에 마음을 식혀주었다. 상쾌했다. 복도식아파트였기에 느낄 수 있었던 나만의 소소한 기쁨이었다.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현생과 전생 혹은 신세계를 넘나드는 느낌이었다. 나만의 힐링 포인트였다.



집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으로 에너지를 얻었고 나를 다독일 수 있었다. 옷으로 가득 찬 방에 억지로 책상과 컴퓨터를 끼어넣고 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방송대 교육학과로 편입하여 아이들이 잠든 시간을 이용하여 교육학을 공부하는 성장의 시간이 달콤했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나를 위한 집중의 시간을 챙겼던 것이다. '평생교육사'란 자격을 따놓고 써먹지 못하고 있을 지언정, 성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여전히 배움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나'가 된것 같다.




아이를 낳고 직업을 잃었지만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직장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안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온통 육아뿐인 일상에서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무언가라도 손에 쥐고 열정을 불태웠던 지난날의 나의 시간들이 있었다.

겹겹이 축적된 시간들 덕분에 지금 여기서 '나'를 알아가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나의 미래를 꿈꾸는 내가 되어간다.


이제서야 나는 '나의 존재 의미'를 깨달아 간다.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을 덜어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전업주부에 더해진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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