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분의 여행가방을 챙기며

by 햇살정아

드디어...

아니 벌써 그날이 왔다.


아이들과 떠나는 첫 해외여행, 사실 두 번째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사카에 갔을 때니 기억이 없는 아이들에게 오늘이 그들의 첫 해외여행인 셈이다.




20대 어느 날, 나 홀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부모님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없음에 큰 불만이었던 시절, 나는 인생의 첫 즐거운 일탈이자 귀여운 반항으로 배낭여행을 선택하였다.

일상에서 벗어나 모든 걸 내려놓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달콤한 행복인가.


억압받았던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희열이 느껴졌다. 오로지 설렘만으로 여행 계획을 짰다. 그 시절 두려움이란 내 사전엔 없었다. 나라별 숙소를 예약하며 기차표를 끊고 여행 준비를 차곡차곡 준비해 가는 나의 용기를 스스로 대견해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 시절의 호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쫄보엄마가 되어 걱정만 한가득 쌓여만 간다.


20대의 나는 혼자여서 즐거웠고 혼자여서 외로웠다면, 40대의 나는 함께여서 즐겁고 함께라서 바짝 긴장이 된다. 남편 없이 아이 둘만 데리고 떠나는 해외여행! 동경하던 일이었지만 막상 떠나려 보니 고작 3박 4일이 마치 한달처럼 느껴진다.


'다 큰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낯선 타국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면 어쩌지? 이 아이들 데리고 여기저기 잘 찾아다닐 수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패키지로 갈걸 그랬나? 아님 제주도로 정했어야 했나? 지금 오사카에도 비가 온다고 하던데...'


쓸데없는 기우로 마음은 분주해진다.


사느라 노는 것을 잊어버렸는지 짐 싸는 과정이 어렵고 귀찮게만 느껴졌다. 3인분의 가방을 챙기다 말고 갑자기 옷장정리는 시작된다. 딸의 작아진 옷, 아들의 뒤죽박죽 된 서랍 정리, 문득 혼자 있을 남편밥이 걱정되어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쳐간다. 쌀을 씻고, 김치찌개라도 끓여 놓아야 안심이 되겠다는 생각에 행동은 점점 빨라진다.


20년 전 홀가분히 떠날 수 있었던 나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


내가 짐어지고 가는 인생의 무게가 언제 이렇게 늘었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그저 어설프기만 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모습을 '칙칙칙' 밥짓는 소리에 기대어 본다.



나의 여행 스타일이 바뀌었을까? 예전에 나라면 '이왕이면' 라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 바빴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하나라도 제대로 보고 느끼며 한가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천천히 나의 마음을 내어주고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아이들과의 여행이라 희망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꿈꾸며, 비행기에 오른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워 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_나짐 히크메트(터키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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