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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물멍을 담는다.
by
햇살정아
Oct 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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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길었지만 시댁은 가지 않았다.
어머님의 병원 입원 때문이었다.
어머님은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 독사에 엉덩이를 물렸다. 독을 빼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셨고, 안정이 필요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집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어머님이 편찮으신 것은 걱정은 되었지만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음...
말해 뭐 해~ 너무 행복했다. 이 정도면 독사에게 감사해야 하나? (죄송합니다 어머님^^;)
바로 기나긴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될지 아이들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박물관, 미술관 이런 교육적인 곳을 가자 하고,
아이들은 놀이동산, 맛집 투어, 만화방, 보드카페, 방탈출을 가자 하고...
좁혀지지 않던 우리의 팽팽했던 의견들은 무색하게도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침에 눈을 뜨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곳으로 출동!
"과천과학관, 보스턴 1947(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영화), 온천, 봉녕사(절) 그리고 바닷가!"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의외로 많이 돌아다녔구나...)
그중 제일은 바닷가에서 만든 추억이다.
바다멍, 물멍, 노을, 바람 그리고 길가에서 먹었던 라면!
남편의 발 빠른 검색력으로 궁평항 근처
'매향항'
이란 곳에서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소문대로 부둣가에 낚시하는 사람들로 빼곡히 줄지어 낚싯대를 던지고 있었다.
우리도 기분 내자며 준비해 간 낚싯대를 바닷물에 퐁당~
물고기에 대한 예의도 없이 지렁이나 떡밥도 준비 없이 계속해서 던져대기만 하니. 물고기가 오나? 우연찮게 걸려든 건 아기 밤게 혹은 쓰레기뿐이었다. 애써 우리는 물고기가 아닌 추억을 낚으러 왔을 뿐이라고 자위했다.
짐 챙기고 집에 가시는 아저씨의 툭 던진 한 마디, "에잇~! 물멍만 실컷 하고 가네~~"
아저씨가 버리고 간 그 '물멍'이란 단어를 내 마음으로 얼른 주워 담았다.
물! 멍!
어떤 물고기보다 이 단어를 낚은 것이 나에게 더 큰 수확이었다.
어차피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매 한 가지인데,
이왕이면 낭만적인 그릇에 나의 행위를 담는 것이 더 근사하게 느껴졌다.
'나도 실컷 물멍하고 가야지~'
하염없이 바라보는 바다, 점점 부둣가에 차오르는 바닷물이 무섭기도 하면서 답답했던 내 마음을 뻥 뚫리게 만들어주어 시원했다.
방학 때도 쉼 없이 가는 학원도 추석이란 공식적인 연휴로 문을 닫은 덕분에 아이들은 아주 당당하게 푹 쉬고 놀았다. 나 역시도.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 있기만 했다.
습관처럼 SNS를 열었고, 손가락으로 쭉쭉 밀어대면서 다른 이들의 삶을 흘려보면서 솔직히 불안했다.
나만 뒤처지는 느낌, 무언가 해야 될 것만 같은 강박이 자꾸 내 가슴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나를 닦달하는 것 아닐까?
잠시 쉬어가도 괜찮은데,
그래봤자 일주일 쉬는 건데 그것을 못 견뎌하는 내가 참.. 딱해 보였다.
놀 때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고, 일할 땐 일하자!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 딱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바닷물에 나의 그런 마음들을 던져 버린다.
찰싹찰싹 부둣가에 부딪히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듯
힘을 빼자고, 다시 한번 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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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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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며 매일 단단해져 갑니다> <취향대로 삽니다> <감정치유글쓰기> 출간작가입니다. <진격의로봇> 챗gpt로 동화전자책 출간 작가입니다. 오늘도 읽고 쓰며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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