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짐으로써 타인의 비난을 감수하느냐, 혹은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면서 다수의 의견을 따르느냐.
이 갈림길에서 난 언제나 다수의 의견을 따랐다.
다수의 비난이나 비판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겠지 생각했다. 내 생각이 과연 맞는 것일까? 어쩌면 정말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 오히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하였다. 소외당할까 두려워 입 꾹 다물며 안전을 택했다.
이렇게 삶을 살아오다 3년 전쯤 새 식구, 올케를 맞이하였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이란 시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것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녀의 과거, 현재, 미래, 즉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일이었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올케는 분명하게 나와는 달랐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의견을 시부모님과 가족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부모님은 사사건건 어른한테 지지 않고 말대꾸한다고 며느리 뒤에서 불만을 토로하셨지만, 나는 올케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실, 많이 부러웠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내가 바라는 모습을 올케는 가지고 있었다. 남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 이것이 나에겐 용기이지만 올케는 숨 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솔직함, 이 솔직함은 신랄한 평가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잊게 만들었다. 올케의 솔직함은 선한 의지에서 나오는 일리 있는 이야기들이었기에 나름대로의 납득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수동적이었고, 소수보단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평화주의자다.” 지난날 나의 모습을 ‘그래,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언하며 스스로 선을 긋는 행위로 자기 합리화 같은 변명은 그만 두어야 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솔직해지고 싶다.
자연스럽게 솔직해지기 위해선, 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더 나아지기 위한 애쓰는 나를 애뜻하게 더 많이 끌어안을 수 있도록 내가 나의 팬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