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과 축농증이 심했던 나는 꽤 오랜 시간 '냄새 없는 세상'에 살았다. 항생제를 먹지 않으면 냄새나 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중증 환자였다. 음식물쓰레기 같은 지저분한 냄새에 해방되어 좋았지만 후각상실은 삶이 재미없어지는 슬픈 일이었다. 냄새를 느끼지 못하니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했다. 눈으로 먹고 머리로 그 맛을 기억하며 음식을 음미해야 했다. 남들이 '맛있다, 맛있어'를 연발할 때 애써 나도 맛있는 척 혹은 맛없는 척 연기해야 했다.
가끔씩 순간적이었지만 코가 살짝 뚫리기도 하였다. 마치 직진으로 액셀을 밟고 달리다가 저 멀리 보이는 노란불 신호 앞에서 멈춰야 되나 밟아야 되나, 고민할 때처럼... 잠시라도 코가 뚫렸을 때 무언가를 먹어야되나 말아야 되나 우왕좌왕했다. '맛을 느낄 수 있을 때 배불러도 무조건 먹고 보자!'가 어느새 내 신조가 되어버렸다. 그때 마셨던 캐러멜 마끼아또와 찹쌀떡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찌나 달고 고소하던지. 오랜만에 맛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 맛이 더욱 애절했나 보다.
무언가 잃어버리고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이 삶의 기적이고 감사라는 누군가의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집 나간 후각이 다시 돌아왔다. 약을 먹지 않아도, 고슴도치처럼 얼굴에 한의사의 침을 꽂지 않아도 냄새를 맡고 맛을 느꼈다.
그동안 부모님의 헌신적인 A/S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꾸준한 운동 덕분이었을까? 운동을 해서 축농증이 사라졌다는 과학적인 증명을 보일 수 없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운동 덕분이라고 우기고 싶다. 그동안 피땀 흘린 것에 대한 나만의 보상 심리일지도....
이렇게 나의 스토리는 세상 모든 냄새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사춘기를 목전에 둔 아들을 끌어안을 때마다 느껴지는 남성호르몬 냄새,
덕분에 아들방에 천연 디퓨저를 놓아두었더니 들어갈 때마다 "white flower"의 향기가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