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살림에 게을러졌다. 나름 글 쓰는 척, 책 읽는 척하다 보니 살림이 자연스레 뒷전이 되었다. 때마침 아들의 다이어트 덕분에 저녁은 거의 양상추샐러드를 기본으로 토핑만 바꿔주며 한 달을 보냈다.
오리고기나 닭가슴살을 구워주던가, 목살을 구워주면 끝~! 다른 반찬은 필요치 않았다.
남편도 회사에서 삼시 세끼를 해결하고 오기 때문에 나는 아들을 핑계 삼아 정말 대충대충 원푸드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마트에 가면 의도치 않은 제품들을 사 온다. 계획에 없던 1+1 제품, 신상품 과자, 방금 나온 따끈한 호떡 같은 간식등을 사 와 냉장고를 채운다. 하지만 인터넷 장보기는 지극히 머릿속에 생각한 것들만 클릭하게 되니... 창의적이지 못한 나는 항상 똑같다.
두부, 콩나물, 어묵, 우유, 계란.
이러니 아이들은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아우성이지...
점점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바닥나고, 대충 때우는 음식이 나 역시도 너무 지겹다.
오늘은 맘을 굳게 다잡는다.
그래봤자 늘 하던 반찬들의 도돌이표이긴 하지만 숙주나물, 어묵볶음, 우엉볶음, 김치볶음.
오랜만에 느껴보는 주부 9단 코스프레, 후다닥 나의 손놀림은 빨라진다.
식탁 위에 줄지어진 반찬통을 보니...
갑자기 부자가 된 듯 마음이 벅차오른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집안에서 풍겨지는 음식냄새에 코를 실룩거리며 기대만발이다.
제발 맛있게 먹어줘야 할 텐데....
맛평가에 진심인 아이들은 언제나 냉철하고 정확하다.
짜다, 싱겁다, 맹탕이다...
맛이 없으면 절대 먹지 않는 아들의 입맛 덕분에 음식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남편한테도 이리 신경 안 쓰는데 자식이 뭐라고 나는 긴장이 된다.
어차피 시작한 것, '마음먹었을 때 다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냉장고를 다시 뒤적 거린다.
중간 사이즈 묵은 멸치가 보인다. 원래 아이들의 취향은 잔멸치볶음이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 큰 것, 작은 거 따질 때가 아니다.
그런데, 한입 맛을 보니 멸치볶음에서 비린내가 난다.
냉장고에 오래 보관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중멸치라 그런가?
앗! 마음이 바쁘다 보니 프라이팬에 기름 없이 볶다가 비린내를 날려 보내야 하는데 과정을 깜박했다.
반찬하나에도 정성이 필요하다. '대충 빨리' 태도가 이렇게 금새 티가 난다.
냉동실에 얼려둔 청양고추를 한 주먹 넣고 다시 버무린다. 이번엔 너무 맵다. 아직 매운 것에 익숙지 않은 딸아이가 걱정이 되어 꿀을 프라이팬에 담긴 멸치를 향해 열 바퀴쯤 빙빙 두른다. 와우~ 윤기가 자르르...
역시 예상대로 꿀맛이다.
듣도 보도 못한 '단짠 매운맛 멸치볶음'이 내 입맛엔 그럴싸했다. 아이들 안 먹으면 나라도 먹고 뼈 튼튼, 칼슘이나 실컷 보충해야지.... 아님 맥주안주로도 손색이 없었기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아이들은 은근슬쩍 왔다 갔다 하면서 손으로 하나씩 집어먹는 반찬맛을 즐긴다.
멸치가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의 마음은 두근두근. 과연 미식가 아이들의 반응은 어떨지, 은근 신경이 쓰인다.
아이들은 엄지 척,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몇 번을 주워 먹는다.
그리곤 한 마디.
"엄마, 이거 멸치 탕후루네. 달콤하고 바삭바삭하고 너무 맛있어~~~"
"건강식 탕후루야!"
여태까지 먹어본 멸치 볶음 중에 가장 맛있다는 아이들의 피드백에 '휴~' 한숨 내려앉는다.
꿀을 너무 많이 둘러서 과자처럼 바삭바삭, 달콤한 멸치과자가 되었지만 그 맛은 말해 뭐 해!
너무 맛있다.
몸에 좋은 멸치 탕후루,
완전 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