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신정아다.
사실 처음부터 '신정아'는 아니었다. 2006년까지는 "신정화"였다.
한 끗 차이이지만 정화가 정아로 바뀌게 된 사연이 있다.
사주팔자를 맹신하는 엄마 덕분이다.
어느 날 딸의 미래가 궁금한 엄마는 점을 보러 가셨다. 그곳에서 하는 말이 이름에 '화'자가 들어가 팔자가 사납고, 영맛살이 끼었다는 둥, 시집을 늦게 간다는 둥. 화류계의 이름이라는 둥 꺼림칙한 많은 이야기를 한가득 담아 오셨다. 한 분의 이야기만 들어서 안될 것 같다며 작명소를 겸하는 철학원도 가보자고 나를 재촉하였다.
사실 나도 내 이름이 썩 맘에 들진 않았다.
늘 어디에서나 내 이름을 말할 때면 '신정화'를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마지막 단어 '화'에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ㅗ ㅏ'를 강조해야만 했다.
" 화예요, 화~~~!! "
엄마가 다른 곳을 알아보자는 말에 '얼씨구나, 이참에 이쁜 이름으로 개명해야지!' 룰루랄라 기대감에 신이 났다.
엄마는 엄마만의 강한 소신이 있는 분이시다.
"나쁜 것은 다 맡더라~~"
"내리는 비는 막을 수 없어도 피할 수는 있다."
내가 보기엔 분명 미신 같아 보이는데 엄마의 확고한 태도에 '아~그런가?' 바로 수긍하게 된다.
내 머리 위로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마치 우산이라도 사러 가듯 엄마와 나는 두 손 꼭 붙잡고 아줌마들에게 입소문이 난 철학원에 갔다.
박사님 같아 보이는 그분은 나의 생년월일, 태어난 시를 물어보시곤 찬찬히 알아보지 못하는 한문으로 적어 내려가셨다.
고욕한 적막 속에 오직 '똑딱똑딱' 초침 소리만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지나갔을까? 마침내 그분도 나와 '화'는 맞지 않기에 개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오호라~! 나는 이름을 바꿔야 할 운명이었구나^^'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내 이름을 기다렸다.
며칠 후,
나는 드디어 가장 좋은 이름이라고 적힌 종이를 받게 되었다.
아뿔싸!
"신. 부. 자. "
그때의 충격은....
아무리 그래도 아직 나는 20대 꽃다운 아가씨 아닌가...
예나, 지은, 지나, 라희, 지원, 지온, 예솔,.... 등등 셀 수 없이 이쁜 이름이 많은데 하필 '부자'가 뭘까?
부자는 좋아도 내 이름으로 '신부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TV에서 나오는 '강부자' 씨는 전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워 보였는데....
나의 '신부자'란 이름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정아'였다. 늘 내 이름을 '정아'로 오해받았던 일이 많아서 그런지 차리리 발음하기 좋고, 익숙한 '정아'가 나을 것 같았다. 한자 뜻도 예쁘다는, 예쁠 '아'가 아닌가?
이렇게 나는 부자대신 예쁨을 선택했다.
그때 만약 내가 신부자로 개명했다면, 지금쯤 그 유명한 시그니엘에서 살고 있었을까?
예쁠 '아'를 선택하여 예쁘게는 아니어도, 명랑한 집순이가 되어 어여쁜 글을 쓰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역시 이름이 나를 담는 그릇과도 같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신정아'로 선택한 후 때마침 터진 2007년도의 아주 핫한 '신정아스캔들'.
2007년 7월 당시 동국대 교수였던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의혹에서 시작된 사건으로, 이후 신 씨와 인연을 맺은 미술계·대학가·불교계 인사 등으로 여파가 확산되며 문제가 심화됐다. 여기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 등 정계로비 의혹도 불거졌다.
"그 유명한 신정아네~ 신정아 여기 있네!"
신입사원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던 첫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편안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색해질 뻔한 분위기에도 우리의 공통 화제 '신정아 씨' 덕분에 말을 쉽게 건네며 웃기도 하였다. 그분과 함께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때론 놀리듯 나를 불러대곤 했지만, 그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본심은 나를 향한 따뜻함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오랜만에 이름을 생각하다 나의 존재를 부각해 주신 '신정아 씨'가 생각이 난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