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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정아 Mar 02. 2023

할머니표 만두

할머니를 추억하는 방식.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날이면 할머니는 광(시골 살림살이를 보관했던 곳)에 맛난 것들로 그득히 채워놓고 기다리셨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딱히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분이셨다.


다만 늘 먹는 것으로 사랑을 내어 주셨고, 우리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만 내비치던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의 보물창고에 없었던 딱 한 가지 음식이 있었다.


우리 집 대표음식이자 식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만 두!!





© jijiali, 출처 Unsplash




만두만은 온 가족이 꼭 함께 빚어야 한다는 할머니만의 철학(?)으로  남겨두신 것 같다.



친가는 고정적으로 1년에 4번,

연례행사처럼 만두를 빚었다.



구정, 추석, 한여름, 한겨울.



명절은 명절이라서,

한여름은 여름 불볕더위를 품은 탐스러운 호박들을 처리하기 위해 호박만두를,

한겨울엔 1년 넘은 묵은지 맛이 깊은 맛을 자랑할땐 김치만두를.


각각의 이유들은 만두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만두소를 준비하는 과정은 정말 고된일이다.



재료마다 데치고 물기 짜고 버무리는 과정을 거치며 손목은 무리가 간다. 조금만 방심하고 꾹꾹 눌러 짜지 않으면 금세 물이 생겨 만두가 쉽게 터지기 때문에 힘들어도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천하장사 같은 할머니의 투박한 손으로 대가족의 만두소를 푸짐하게 준비하는 동안,



전날에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밀가루 반죽을 꺼내어 딱딱했던 밀가루가 부드러워지기 만을 기다린다.



살짝 말랑해지면 가래떡 모양으로 만든 후 만두피 하나 분량만큼 잘라 준다. 그리고 소주 병으로 얇게 하나씩 밀어주는 동안 만두소는 어느새 마무리가 된다.



스텐 대야에 가득 담긴 만두소에는 여러 개의 숟가락이 꽂혀있다.
누군가는 열심히 만두피를 조달하고, 

나머지 식구들은 옹기종기 동그랗게 모여 앉아 만두를 야무지게 빚는다.






© matt_j, 출처 Unsplash






마치 환한 보름달처럼,



오래간만에 만난 친척들은 오순도순 둘러앉아 웃음꽃이 피어나고,

어색해질 뻔했던 관계도 만두 덕분에 훈훈해지는 시간이 된다.



나는 열 살 무렵부터 식구들과 만두를 빚었다.



소꿉장난처럼 재미 삼아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기 시작한 나는 해가 지날수록 점점 실력이 향상되었다. 

지금은 눈 감고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자칭 만두 박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속을 적게 넣어 흐물흐물 헐거워져 터지고,

어쩔 땐 속을 넘치도록 가득 담아 터지기도 했다.

각자의 개성대로 만드는 만두들은 제멋대로 들쑥날쑥해졌다.



보다 못한 할머니는 식구들에게 한마디씩 거든다.



이쁘게 빚어야 이쁜 딸 낳는다~



어린 나는 덜컥 그 말만을 믿고 못생긴 딸을 낳을까 정성을 다하여 만두를 빚었다.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았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이쁜 딸을 낳았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시끌벅적 만두를 빚고

몇 시간 우려낸 사골 육수에 끓인 뜨끈한 한 그릇은 가족의 사랑이었고 감동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들보들한 만두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그 꿀맛이란!




할머니는 이유가 있었구나.
왜 만두는 다 같이 만들어야 되는지.



할머니가 이제 우리 곁에 계시진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만두를 빚는다.



일 년에 딱 두 번.

절기음식처럼 여름의 호박만두와 겨울의 김치만두.



친정아버지가 만두 만드는 날을 예고하실 때면

내 말이 묻힐 것이란 것을 뻔히 알지만 어김없이 묻는다.



그냥 사서 먹어요.

저 이제 이쁜 딸 낳았어요~



비결인 듯 비결 아닌 비결 같은 만두소 레시피는 이젠 엄마의 손끝과 머릿속으로 전수되었나보다.


그때 먹었던 그 만둣국의 맛이 그대로 재연되는 것을 보니.


번거롭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음식이지만 계속해서 우리는 만두를 만들 것이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안부를 묻게 될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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